[연재수기-평양24시] 대학생 잡는 혹독한 교도훈련

▲ 공동작업을하는 주민들 ⓒ연합

조선(북한)은 21세기 들어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 중 하나로 전락하고 말았다.

김일성이 국가 권력을 틀어쥐고 반세기 동안 ‘주체’를 외쳤건만 결국 남조선과 세계 각국에 손을 벌려야만 먹고 살수 있는 ‘국제 거지’가 된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우리 당이나 정부, 일반 백성들은 외국의 원조로 먹고 사는 것에 무척 익숙해졌다. 인간생활의 이치에서 따져볼 때, 어려울 때 잠깐 이웃의 도움을 받고 여유가 있을 때 이웃을 도와주는 것은 인간만이 갖고있는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항상 남에게 손을 벌려 먹고 사는 게 굳어지고, 이에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하는 ‘직업적 거지’로 전락하게 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우리 조선이 거지나라로 몰락하게 된 것은 국가를 국가답게 이끌어 갈 수 있는 인재들이 없기 때문이다. 남조선이나 외국 사람들은 조선 지식인들이 하나의 사상으로 획일화 돼있기 때문에 정치나 경제를 발전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틀린 지적은 아니다.

하지만 사상의 자유가 없다는 이유가 자연, 응용과학의 낙후성을 해명하지는 못한다. 사상은 사상이고 지식은 지식이니까 말이다.

대학생활 중 군사훈련만 6개월

조선 지식인들의 수준이 점점 떨어지는 이유는 대학시절에 자기 전공과목을 제대로 공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짧은 식견이지만 필자의 입장에서 볼 때 조선 대학생들은 세계에서 가장 바쁘고 고된 대학시절을 보내는 것 같다. 한국만 하더라도 일년의 절반만 강의가 있고 나머지는 다 개인적으로 보내는 시간이라고 들었다.

하지만 조선 대학생들은 군사훈련을 비롯해 농촌지원 전투, 국가에서 진행하는 행사 동원 때문에 전공과목을 공부할 시간마저 부족한 현실이다.

현재 조선의 대학교육 실태에 대해 살펴보자.

조선의 정식 대학과정은 4년 6개월이다. 소학교나 중학교에 배치되는 교원을 양성하는 교원대학들만 3년 과정이다. 그런데 이중 6개월은 교도훈련이라는 군사훈련 기간이다.

조선의 대학생들은 누구나 대학 2학년 때 교도훈련을 받아야 한다. 복장도 군대복장으로 갈아입고 장구류까지 착용하면서 교도중대에서 군인생활을 해야 한다.

교도중대는 대체로 시 외곽에 있다. 교도중대의 중대장과 정치지도원, 사관장은 현역군인들이다. 이것은 대학생들에게 군대생활을 실지로 경험시키기 위한 조치로 군사복무를 마친 제대군인 대학생들에게도 예외가 없다.

[연재수기-평양24시]

영재를 돌머리 만드는 金家 혁명사

“군대면 군대답게 도둑질도 배워라”

교도생활은 여름교도(4월~10월), 겨울교도(11월~3월)로 나뉘는데 6개월간의 교도생활을 마친 대학생들은 ‘예비역 소위’의 칭호를 받는다.

첫날부터 한달 동안은 집중 훈련기간이다. 이때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아야 한다. 특히 모포와 매트리스, 취침 시 머리 쪽에 정돈하는 군복에 ‘각’을 잡는 훈련이 반복된다.

정해진 시간 안에 제대로 해놓지 못하면 10번이고 20번이고 반복시키다. 밤새껏 반복할 때도 있다. 그래도 안 되면 새벽에 자기가 깔고 자는 매트리스를 등에 메고 산 위까지 뛰어와야 한다.

현역군인인 중대장이나 사관장은 대학생들의 인텔리 근성을 완전히 뿌리 뽑고 군대 물을 먹여야 한다며 훈련강도를 높인다. “우리가 땀에 절은 군복 입고 먼지 속을 달릴 때 너희들은 반반하게 차려 입고 공부나 했을 테니 이 혁명화 기간에 어디 한번 맛 좀 보라”는 식이다.

여름교도에 걸린 학생들은 농사일도 해야 한다. 각 교도중대는 자체 부업토지에 야채와 옥수수를 심어 가꾼다. 그런데 농사란 말뿐이고 수확이 얼마 없다. 밑거름도 없고 비료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식당근무도 대학생들이 떠맡는다. 재미있는 것은 여름교도의 경우 국을 끓이거나 반찬을 만들 채소나 부식물을 조달하는 것까지 식당근무 학생들에게 책임을 준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주위에 있는 농장 밭에 가서 알아서 훔쳐오라는 뜻이다. “군대면 군대답게 도적질도 배워야 한다”는 게 사관장들의 지침이다.

식당근무 학생들은 끼니때마다 3가지 이상의 반찬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음식 재료가 없으니 무 하나를 가지고 네모난 모양으로도 썰고, 둥근 모양으로도 썰고, 삼각형 모양으로도 썰어서 ‘3가지 반찬’이라며 만들어 놓는다. 기름도 없이 소금만 넣고 지지면 반찬이고, 물을 넣고 끓이면 국이 되는 것이다.

교도생활에서 가장 큰 고통은 뭐니뭐니해도 배고픔이다. 사관장이 중대에 나오는 쌀을 빼돌려 팔아먹는 일이 흔하니 학생들이 잡곡밥이라도 배불리 먹을 날이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교도훈련장 주변의 인가들에서는 교도생을 상대로 장사를 한다. 밀가루 빵도 만들어 팔고, 술도 팔고, 두부도 판다. 하지만 인가에 나가 음식을 사먹다 중대에 들키면 처벌근무를 서야한다. 그래서 야간점검이 끝나고 취침시간에 돌입하면 많은 학생들이 몰래 부대를 빠져 나와 주변 인가에서 인조고기밥이나 빵을 사먹는다.

석탄 1톤 바치면 한 달 동안 집에서 놀아

▲ 군인들이 하는 공동작업 ⓒ연합

하지만 그것도 돈이 조금이나 있는 집 자식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가난한 집 자식들은 그것도 사먹지 못하고 매일 밤 주린 배를 움켜쥐고 잠을 청해야 한다.

부잣집 자식들은 아예 교도생활에서 한달, 두달씩 제외된다. 교도생활이 워낙 힘들기로 소문이 나있으니 힘 있고 돈 있는 집 자식들은 교도중대 간부들에게 돈이나 물자를 뇌물로 바치고 그 기간 동안 집에서 노는 것이다.

실례로 석탄 1톤을 교도중대에 바치면 1달을 집에서 놀 수 있다. 그리고 1천5백원짜리 고양이 담배 1곽(갑)을 사관장에게 바치면 하루 외출을 허락해준다. 하루 이틀 정도는 사관장이 눈감아 줄 수 있지만 그 이상 훈련에 빠질 경우에는 중대장이나 정치지도원에게까지 인사차림을 해야 한다.

이렇게 돈 많은 학생들이 다 빠지고 나면 남아있는 학생들은 두 배로 고통스럽다. 인원이 부족해지면 남은 학생들의 근무시간이 그만큼 늘어나기 때문이다. 기본이 2시간씩 ‘진지근무’(참호근무)를 서는 것이지만 외출하거나 열외된 학생들이 있으면 근무시간이 더 늘어난다.

결국 명절이나 설날 같은 때에는 못사는 집 자식들만 8시간에서 10시간씩 혼자 진지근무를 서게 된다. 조선에서 없는 사람의 설움은 대학생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교도생활에 들어간 여학생들은 머리를 귀밑 아래로 기르지 못하며 화장품도 소지할 수 없다. 그러다보니 돈 있고 힘 있는 집의 여학생들은 교도기간 통째로 집에서 놀기도 한다.

아무리 교도기간이라도 강의는 이어진다. 그래도 대학생이기 때문이다. 교도기간의 기본강의 과목은 <조국통일사>와 <미일제국주의 침략사>이다. 여기에 전공과목 2~3개 강의가 추가된다.

농촌지원, 행사동원 때문에 강의시간도 축소

계산상으로 대학시절 동안 교도훈련기간을 제외하면 4년의 시간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 대학에서 강의를 듣는 날은 2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우선 해마다 봄철과 가을철에 농촌지원 전투가 있다. 대학생들의 농촌지원 전투는 봄 모내기철에 40일, 가을 수확기에 30~40일간이다. 또한 평양의 대학생들은 유명세를 누리는 대학일수록 국가동원행사에 많이 불려 다닌다.

행사 훈련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강의를 들을 수가 없다. 보통 2·16 김정일 생일이나 4·15 김일성 생일에 맞춰 진행되는 국가행사의 열병식 훈련기간(6~8개월)은 공부를 쉬게 만든다.

대학생 횃불행진 행사도 2~3달의 연습기간을 갖는다. 여기에 음력설이나 국경일에 평양의 대학생들을 모아놓고 김일성 광장에서 춤을 추도록 하는 경축무도회 행사 훈련도 2~3달씩 한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각 대학들이 갖고 있는 농장에 가도 일을 하는 대학부업농장동원도 몇 달씩 소요된다. 또 혁명사적지 및 전적지 답사를 떠나는 학생들도 몇 달씩 강의에 참석하지 못한다.

이렇다 보니 계획된 강의가 계속 밀리게 되고, 학기가 끝날 무렵에는 강의를 축소해버린다. 그러고도 수업일 수가 모자라면 일요일에도 강의를 하고, 하루에 다섯 강의씩 벼락치기로 끝내기도 한다. 한 강의시간에 두 강의 분 진도를 나가는 것은 이제 조선의 대학들에서 특별한 일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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