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당시 두 살이었던 아들, 하나만 물어보면 알 수 있어”

1951년 1.4후퇴 때 가족을 남겨두고 형님과 황해남도 옹진군에서 월남한 이기순(91) 씨는 67년 만에 아들과 손녀를 만나게 됐다.

헤어질 당시 갓난아기였지만 지금은 일흔을 훌쩍 넘기고 장성한 자녀를 둔 아들 리강선(75) 씨를 만나는 이 씨는 한 가지만 물어보면 아들인지 확인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이 씨는 “(본인) 부모님은 북한에 남아 계셨고 동네에 일가친척들이 모여 살았다”며 “(아들에게) 어디서 살았는지만 물어보면 진짜 아들이 맞는지 아닌지 확인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씨는 이어 “내 아들이면 할아버지 할머니가 어디서 어떻게 사셨는지 다 알 것이다”면서도 “직접 만나기전에는 모르지”라고 말끝을 흐렸다.

만약 아들이 맞는 것으로 확인하면 가장 먼저 무슨 말을 할 것이냐는 질문에 이 씨는 본인이 술을 좋아해 요즘에도 하루에 소주 한 병 반씩 반주로 먹는다며 “술 좋아하냐고 물어볼 것”이라고 웃으며 답했다.

그러면서 이 씨는 “북녘 아들은 아버지 없이 자란 셈이다”며 “전쟁통에 자식 떼어놓고 헤어지고 고생한 세월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다른 이산가족 상봉 행사 참가자는 개성공단에서 일하면서 만난 사람이 조카였을 가능성도 있다며 이번에 만나서 확인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동생과 함께 북측의 형수와 조카를 만나는 김종태(81) 씨는 “6~7년 전까지 동생(김종삼, 79)이 개성공단에서 북한 인부 15명 정도 데리고 목수로 일했다”며 “당시 50살 정도의 김학수(56) 씨가 그중에 있었는데 이번에 조카 명단 받아보니 이름이 같고, 나이도 비슷해서 놀랐다”고 말했다.

김 씨는 “더구나 개성공단에는 파주 인근 북쪽에서 오는 인부들이 많다”며 “(이번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서 만나) 반드시 확인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가자인 김춘식(60) 씨는 한 달이면 다시 만날 것으로 생각하고 피난을 왔다 헤어졌다고 말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김 씨는 “전쟁 때는 한달에도 두 번씩 인공기와 태극기가 번갈아 나부꼈다”며 “인민군이 올 때마다 피난을 몇 차례 갔었는데 마지막으로 피난을 나올 때도 ‘이번에도 인민군이 한 달이면 나가겠지’란 생각으로 부모님과 남동생이 함께 피난갔다”고 말했다.

김 씨는 “여동생 두 명은 조부모님 댁과 함께 고향에 남았다”며 “조그만 애들은 잡아가지 않으니까. 조부모님이 남았던 건 재산(땅)을 지키기 위해서, 언젠가 다시 돌아올 것이란 생각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김 씨는 “누나를 처음 보며 부모님이 피난 나와서 돌아가실 때까지 한 번도 누나들, 고향 얘기를 안 했다“며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마음이 아파서 차마 입을 못 뗀 게 아닌가 싶다”고 전했다.

한편, 오늘 금강산을 찾는 이산가족들은 오후 3시부터 금강산호텔에서 단체 상봉을 시작으로 68년 만에 헤어진 가족을 만난다. 이어 7시부터는 금강산호텔 연회장 북측이 주최하는 환영 만찬을 통해 다 같이 저녁 식사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