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야 원, 토끼가 또 사람 잡나?”

북한의 내각기관지 <민주조선>은 3월 10일자에서 “풀과 고기를 바꾸라는 것은 당의 일관된 방침”이라며 “토끼는 풀만 가지고 얼마든지 기를 수 있기 때문에 품을 얼마 들이지 않고서도 협동농장과 기관, 기업소, 학교와 가정에서 기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토끼에 각종 영양소가 풍부하고 몸에 좋은 성분이 가득하다는 말도 곁들였다. 북한 주민들 가운데, 협동농장이나 기관, 기업소, 가정에서 기른 토끼를 ‘몸보신’을 위해 먹을 수 있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북한의 선전매체는 이런 식으로 주민들의 가슴에, 요즘 10대들이 쓰는 용어를 빌자면 ‘염장 지르는’ 보도를 종종 한다. 2003년 8월 1일자 조선중앙통신의 보도내용을 보자.

“조선로동당 총비서이시며 … (중략) … 김정일 최고사령관께서는 조선인민군 제821군부대 직속 3대혁명붉은기중대와 ‘4월16일 염소목장’을 시찰하시었다. … (중략) … 목장에서는 해마다 많은 염소젖과 치즈, 빠다, 요그르트를 비롯한 젖가공 제품들을 생산함으로써 군인들의 식생활 향상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북한 주민들 가운데 군생활을 하면서 “염소젖과 치즈, 빠다, 요그르트”를 먹어본 사람은 또한 얼마나 될까. 사실 치즈, 버터, 요구르트라는 이름조차 처음 들어본 적 없는 주민들이 부지기수다.

남한에 정착한 어떤 탈북자는 우유를 땅에 쏟으며 시위를 하는 모습을 TV로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아마도 축산업자들이 우유값 폭락에 항의해 벌인 시위를 보았던 모양이다. 자기는 북한에서 나이 스물이 넘도록 우유라는 것을 먹어본 적이 없는데, 남한 사람들은 그걸 땅바닥에 쏟아 버리고 있으니 가히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시위를 통해 의사표현을 하는 것은 좋은데 굶주리는 북한 동포들을 생각해 제발 ‘먹는 것 가지고 장난하는 듯한’ 행동은 자제했으면 한다.

또 다시 등장한 ‘풀-고기’ 이론

화제를 돌려, 이번 <민주조선> 보도에서 다시 한번 “풀과 고기를 바꾸라”는 방침이 등장했다. 북한 당국이 아직도 이런 어처구니 없는 방침을 되뇌고 있다니, 한심하고 분개할 노릇이다.

북한은 ‘풀과 고기를 바꾼다’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초식동물을 키워서 그 고기로 인민들을 살찌운다는 뜻이다. 의미는 좋지만 현실에서는 전혀 실현되지 못했고, 오히려 ‘초식동물을 키우려다 인민이 목숨을 잃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졌다.

초식동물이라고 늘 잡풀만 먹고 자라는 것이 아니다. 토끼나 염소가 어떻게 풀만 먹고 살겠는가. 상추 같은 야채도 먹여야 하고 때로는 인공사료도 먹여야 한다. 맨날 풀만 먹이면 생존확률이 낮다.

그런데 ‘풀과 고기를 바꾸라’는 것이 수령의 교시이다 보니 ‘반드시 풀만 먹여’ 기르는 것이 철칙으로 되어버렸다. 수령의 교시를 관철하기 위해 풀만 먹인 초식동물들은 비실비실 약해지거나 병들어 죽고, 그래도 수령의 교시이니 축사(畜舍)에는 초식동물들이 가득 차게 만들어야 하고, 인민들이 돈을 바쳐 초식동물을 사들이고, 죽으면 다시 채워 넣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어떻게 토끼가 풀만 먹고 살 수 있느냐”고 의문을 제기하거나 항변이라고 하면, 수령의 명령에 따르지 않고 권위를 훼손하였다는 정치적 비판의 대상이 된다. 따라서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과 같이 잘못된 줄 알면서도 입을 딱 다물고 있는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지는 것이다.

북한이 이러한 정책을 펼친 것은 김일성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0년대에도 그랬지만 1962년 8월 평안북도 창성군에서 열린 ‘지방 당 및 경제일꾼 창성 연석회의’에서 김일성이 “풀 먹는 집짐승을 많이 길러 풀과 고기를 바꿔야 한다”고 발언하면서 ‘풀-고기 이론(?)’이 확고해진다.

이것이 지나쳐 심지어는 돼지까지 풀을 가공한 사료로 기르기에 이르렀다. 1970년대에 제작된 북한의 선전영화 <이 세상 끝까지>에는 김일성의 지시에 반발해 어느 군의 농산국장이 “돼지가 풀을 먹겠다고 합데?”라고 비아냥 거리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에서 농산국장은 반당(反黨) 종파분자로 비하되었지만 영화를 본 북한 주민들은 ‘맞는 말이구만’하고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김정일의 충동 지시에 주민만 죽어나

김정일은 김일성보다 한술 더 뜬다. 그는 1990년대 초부터 ‘뉴질랜드식 현대 풀판’을 조성하라고 북한 전역을 들어다 놓았다 하며 법석을 떨었다.

당시는 결과적으로 3백만 명이 굶어 죽은 식량난이 막 시작될 즈음인데, 주민들은 자기 먹을 식량을 구하기에도 바쁠 때에 토끼와 염소 먹일 풀판을 만들기 위한 풀씨를 구하느라 산으로 들로 헤매고 다녔다.

배급표를 받기 위해서는 풀씨를 바쳐야 했기 때문에 여문 풀씨, 안 여문 풀씨 가리지 않고 뜯었는데, 나중에 이런 잡초들은 김정일이 바라는 ‘뉴질랜드식 현대 풀판’은 커녕 가축사료로 이용할 수도 없었다. 한편 북한 전역을 나무는 물론 잡초도 보기 힘든 황무지로 만드는 한 요인이 되었다.

김정일이 갑작스레 ‘뉴질랜드식 현대 풀판’을 조성하라고 지시한 이유는 1989년 평양에서 열린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 때문이었다. 당시 축전이 끝나고 김정일은 외국 손님들에게 대접한 그 많은 고기를 다 어디서 수입해 왔는지 궁금해 했다. 그러자 간부들이 뉴질랜드에서 수입해왔다고 대답했는데, 김정일은 당장 그 비법을 배워오라고 지시했다.

김정일의 지시로 뉴질랜드에 간 북한 간부들의 눈에는 뉴질랜드와 양과 소가 모두 풀만 먹고 자라는 것으로 보였나 보다. 넓은 초원에 풀어놓고 여기저기 방목지만 옮겨다녀도 양들이 쑥쑥 자라는 것을 보니 ‘바로 이것이 인민의 살 길이다’라고 무릎을 탁 쳤을지도 모른다. 뉴질랜드와 북한의 확연히 다른 기후와 환경은 생각지도 않고 말이다.

이러한 무지는 수령절대주의와 결합해 결국 숱한 북한 인민들을 고생시키고 죽게 만들었다. 지금도 북한에는 김정일의 이런 허무맹랑한 지시를 관철하기 위해, 외부에서 사들인 채식동물로 축사를 채워넣고 있다. 인민들에게 잡곡만이라도 배불리 먹일 생각은 안하고 ‘고기를 먹이겠다’는 통크신 수령님의 덕택이다.

곽대중 기자 big@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