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음치들, 12월 24일까지 죽을 맛

▲ 김일성을 회고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는 북한음악회(연합)

남한 사람들은 12월이 몹시 바쁜 달이다. 각종 송년회와 모임이 많고 크리스마스절까지 끼어 있다. 경제가 좋지 않다고 하지만 북한에서 온 사람들 보기에는 행복에 젖은 들뜬 분위기다.

북한에서도 12월에는 바쁜 시간을 보낸다. 북한에 크리스마스는 없다. 대신 12월 24일 김정숙(김정일의 생모)의 생신을 축하하는 ‘충성의 노래 모임’을 당, 근로단체(직맹, 여맹, 농근맹, 청년동맹) 조직을 통해 대중적으로 진행한다.

‘충성의 노래모임’은 김일성, 김정일, 김정숙의 생신날을 맞으며 진행하는 김일성 가족 우상화 노래모임이다. 12월 초에 들어서면 중앙당 선전부의 지시 하에 기관, 기업소, 협동농장, 군인, 학생들을 포함하여 조직별로 공연 연습을 진행한다. 온 나라가 ‘충성의 노래모임’ 공연준비에 들떠 있다고 볼 수 있다.

음치는 12월 24일까지 죽을 맛

공연은 주로 합창, 중창, 기악중주, 춤, 시와 노래, 대화 시 등으로 짜인다. 모든 공연 내용은 김정숙이 김일성을 가장 가까이에 모시고 혁명활동을 하였다는 것, 김정일을 세계혁명의 지도자로 낳아 키웠다는 것이 주제가 되어야 한다. 공연연습은 하루 노동일과가 끝난 다음 틈틈이 진행한다.

모임에 빠지는 사람은 김정일에 대한 충실성이 부족한 사람으로 생활총화 때 비판받는다. 또 개인이 멋대로 공연 종목을 선택할 수 없다. 반드시 우상화 종목만을 선정해야 한다.

노래를 못하는 음치들은 12월 24일까지 죽을 맛이다. 울며 겨자 먹기로 따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한 것은 역시 배고픔과 굶주림이다.

하루 종일 배가 고파 맥이 없는데도 모아 놓고 연습을 시키니 짜증이 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불평을 할 수 없다. 노동당, 근로단체 간부들은 노래모임을 통해 주민들의 사상 상태를 검증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김정일에 대한 충성심을 놓고 숨바꼭질하는 어린이들의 놀음과 비슷한 것이다.

직장 망년회는 손꼽아 기다려

남한의 망년회는 학교 동창모임부터 직장, 군(軍) 동기 등 아주 다양하다. 외식문화가 발달하여 , 레스토랑, 음식점 등 장소도 많다.

북한도 직장별, 부서별로 망년회를 가진다. 망년회는 ‘충성의 노래모임’처럼 강제적이지는 않다. 이 때문에 모든 주민들은 망년회를 기다린다. 김일성 생일 같은 ‘민족 최대의 명절’보다 정치적으로 자유롭기 때문이다.

망년회의 음식은 술과 고기다. 이것을 구입하기 위해 여러 수법들이 등장한다. 공장, 기업소의 생산물 또는 공동재산을 요령껏 빼낸다. 특히 생산물(원료, 자재, 완제품)을 빼돌리는 것이 관례화 되어 있다. 용접 직장에서는 용접봉을 빼돌리고, 신발공장에서는 신발을 빼돌려 장마당에 팔아 술, 고기를 구입한다. 직장의 70~80%가 이렇게 해서 망년회를 조직한다.

회비도 어느 정도 걷어들인다. 100% 생산품 절취에 의존하면 망년회를 조직하는 행정간부가 죄를 뒤집어 쓸 수 있기 때문에 회비를 모아 진행하는 듯한 인상을 남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1년에 한번 하는 망년회 때도 배불리 먹지 못한다. 배불리 먹지 못하는 망년회는 행정 간부들이 체면을 세울 수 없다. 오히려 욕만 얻어먹는다.

음식 재료가 마련되면 직장 상사의 집에서 요리를 만든다. 망년회가 시작되면 음식을 먹고 춤도 추고 노래를 부르며 즐긴다. 일반 공장, 기업소의 망년회가 이같이 진행된다면 평양의 고려호텔, 옥류관, 지방 도시의 유명 음식점에서도 망년회가 열린다. 그러나 이런 망년회는 고위간부들의 놀이터이기 때문에 주민들은 관심도 없다.

북한사람들도 연말을 기다린다. 직장 망년회는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이다. ‘충성의 노래모임’이 없다면 북한의 12월은 기다려진다.

이주일 기자(2000년 입국, 평남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