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함남 검덕광산 노동자 일가족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가”

소식통 “체포 과정에서 김부자 서예지 찢어져”

무산광산에서 석탄을 나르고 있는 트럭과 북한 주민을 태운 써비차(기사와 무관). /사진=데일리NK 자료사진

지난달 중순 함경남도 검덕광업연합기업소 노동자로 근무해온 남매(男妹) 등 일가족 4명이 체포돼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갔다고 내부 소식통이 2일 알려왔다.

함경남도 소식통은 이날 데일리NK와의 통화에서 “검덕광산에서 신호수로 일하는 딸과 미술원인 남동생, 그리고 부모인 노부부가 집에서 잠을 자고 있었는데, 새벽에 보위원들이 들이닥쳐 일가족 4명 모두를 관리소(정치범수용소)로 끌고갔다”고 말했다.

신호수는 갱도로 입출입하는 탄차와 인차 신호나 발파 신호를 기계 조작자에게 보내는 역할을 하고, 미술원은 연합기업소의 각종 선전 그림을 제작한다.

이 가족 4명은 평양 출신으로 7년 전 이곳에 추방돼 보위기관의 집중 감시를 받아왔으며, 여성은 이주 당시 이혼을 했고 남동생은 미혼이라고 소식통은 전했다.

소식통이 보위부 관계자들을 통해 파악한 사실에 따르면, 지난달 15일 새벽 2시 경에 국가보위성 소속 보위원 2명, 연합기업소 소속 보위원 2명, 그리고 짐을 나를 일꾼 2명이 집에 들이 닥쳤다.

집안으로 들어간 보위부원들은 위압적인 목소리로 가족들에게 즉시 외출복으로 갈아입되 가슴에 단 김부자(김일성·김정일) 초상휘장(배지)은 떼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한 줄로 무릎을 꿇게 한 다음 보위성에서 이 가족에 통보한 체포명령서를 읽었다.

소식통은 “딸이 먼저 옷을 입고 초상휘장까지 떼어놓고는 잠시 안방에 다녀온다고 한 후에 소동이 벌어졌다고 한다”면서 “본인이 자던 방에서 ‘장군님 식솔’ ‘장군님 따라 천만리’ ‘충성의 한길로’라고 붓글씨로 쓴 액자 서예지 3개를 들고 나와서 이걸 가져가겠다고 하자 보위원들이 저지했고, 이 과정에서 서예지가 훼손당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당황한 보위원들은 주먹과 발로 딸을 폭행하면서 “너희 집이 왜 이 지경이 됐는가. 바로 너 같은 xxxx 때문에 가족까지 떠나게 됐다”고 고함을 질렀다.

소식통에 따르면, 관리소로 끌려가더라도 세간 살이는 챙겨가도록 돼있는데 보위원들은 이 가족에게 일체의 짐을 배제하고 소량의 소금만 가져가도록 했다고 한다.

소식통은 “이 가족이 관리소에 간 이유는 지역 보위원들도 정확히 모르고 있다. 딸이 평양에서 추방된 사실에 대해 불평을 계속하고, 윗 사람들까지 비난하니까 그렇게 된 것으로 이곳 보위원들은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의 체포 사실은 가족을 수송할 트럭이 시동이 걸리지 않아 밤새 수리를 했고, 오전 8시 경에 떠나게 되면서 주변 이웃들에게 목격돼 소문이 순식간에 퍼졌다고 한다.

짐꾼으로 갔던 주민 2명은 차량이 떠나자 집안에 있던 식량과 부식물, 그리고 값이 나가는 물건들을 가지고 가버렸지만, 정치범 가족의 일이라 쉬쉬한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검덕광업연합기업소는 현재 3개의 선광장과 로은, 납풍, 길동, 탑골 등 독립광산 및 수 개의 분광산을 관할하는 대규모 광산기업소다. 연간 1420만t의 연과 아연 등 원광을 처리하며 소속 노동자와 종업원은 7000∼10,000명이다.

평양에서 추방된 세대나 혁명화를 당한 간부들이 검덕광산에 이주하는 경우가 많다.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 망명과 장성택 숙청 같은 대규모 정치적 사건이 발생할 때는 단순히 친척관계나 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집단 이주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