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의 잠행(潛行), 이유는 뭘까

북한 김정은이 공개 활동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5일 한국 대북특사단이 방문한 이래 보름 이상 공개 활동을 중단하고 있는 것인데요, 21일 현재 김정은의 공개 활동은 예년의 3분의 1수준인 11회로, 집권 후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이에 대해선 크게 세 가지 정도 그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겠습니다.

첫째, 김정은의 건강 이상과 관련된 추정입니다. 지난해 11월에도 김정은은 다리를 절거나 식은땀을 흘리는 모습을 노출한 적이 있고, 고도비만으로 통풍, 당뇨, 심장병, 고혈압을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김정은이 건강이상으로 최근 보름 이상 공개 활동에 나서지 않고 있다는 내용에는 “왜 하필이면 지금이냐”라는 시의성의 문제가 대두합니다. 물론 김정은이 최근 남북정상회담이나 미북정상회담과 관련해서 지나친 스트레스를 받아 건강이 악화됐을 수도 있겠지만, 이 부분은 둘째와 셋째 이유로 이어집니다.

둘째, 김정은이 한국 특사단을 접견했을 당시 비핵화와 한미연합군사훈련에 대한 양해를 표한 데 대한 대(對)주민 설득 논리를 만들어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집권 이후 현재까지 김정은은 핵무기를 결코 포기할 수 없다고 주민들에게 선전해왔는데, 이제 그 같은 입장을 바꾸려면 주민들을 납득시킬 논리 개발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설사 그 같은 논리가 주민들을 설득시킬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되면 김정은은 통치의 정당성을 스스로 훼손하게 될 것입니다. 핵을 포기한다는 대주민 논리 개발은 그래서 쉽지 않은 숙제이고, 따라서 김정은의 건강이 더욱 악화됐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셋째, 김정은의 파격적인 셈법이 애초부터 잘못됐기 때문에 그것을 되돌리려는 구상을 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국제사회 ‘최대의 압박과 제재’를 타개하기 위해 김정은은 한국 및 미국과 관계를 회복하는 듯해서 경제제재를 완화시키려는 계산을 했을 수 있습니다. 특히 미국을 달래기 위해선 핵문제를 거론할 수밖에 없었고, 선언적 수준에서 비핵화 의지를 미국에 내비침으로써 파상적인 경제 제재를 일부 완화시켜 보려 했을 것입니다. 지난 19일 스웨덴에서 열린 스웨덴-북한 외무장관 회담에서는 미북정상회담 이전에 북한에 억류 중인 한국계 미국인 세 명을 석방하기로 논의했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의 정상회담 제의를 즉각 수용하고 내부적으로는 실무 준비에 들어갔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에 대한 압박과 제재의 고삐를 늦추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혔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이 시간만 끌려고 하면 회담장을 곧바로 떠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습니다.

미국이 예상한 반응을 보이지 않자 김정은은 당황했을 것입니다. 이번에도 보기 좋게 한국과 미국을 기만하고 핵무력 완성의 시간을 조금 더 벌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보기 좋게 빗나가자 김정은은 비핵화 발언을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을 짜내느라 깊은 고민에 들어갔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김정은의 건강 악화로 이어져서 보름 이상 공식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이유일 수도 있습니다.

김정은은 한국과 미국에 대해서는 비핵화 의지를 밝히고 조속한 정상회담 개최 여부를 타진하면서 평화공세를 펼치고 있지만, 당국에서는 주민들에게 여전히 “핵은 정의의 보검”이자 “핵 무장을 더욱 확고히 해야 한다”는 내용의 간부 교육 방침을 하달하는 등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어떠한 꼼수도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북한 주민과 당국이 살아나갈 길은 핵을 포기하고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돌아오는 길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