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급700g 대상은 모두 직장 출근하라”

북한 당국이 12월 1일부터 각급 기업소 및 국가동원 노동자들(건설 돌격대 등)이 직장에 출근하지 않고 장마당에 나가 장사하는 행위를 엄격히 통제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내부 소식통은 6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1일부터 배급 700g 대상자들이 장마당 매대(판매대)에서 장사하는 행위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면서 “직장 사업소 일꾼과 종업원들은 모두 소속 직장으로 복귀해 국가적 생산력 확대에 적극 참여하라는 방침이 하달되었다”고 확인했다.

이번 방침에서 북한 당국이 명시한 배급 700g 대상은 현재 직장에 출근해 배급표를 받고 있는 노동자나 사무원, 국가일꾼뿐 아니라 배급을 주지 못하는 공장이나 무직 가장(세대주)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당국에서 언급한 700g 대상자는 각급 당위원회에서 파악하고 있는 명부에 이름만 올라있을 뿐 출근해도 실제 배급을 받는 사람들이 아니다. 지금 실제로 배급이 지급되는 대상자는 당간부나 보위원 같은 국가기관 근무자나 유명 기업소 노동자를 제외하고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즉 직장에서 배급을 줄 수 없는데도 당국이 출근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식 사회주의’를 지키기 위해 장사를 막겠다는 뜻이다.

이들 대부분은 공장가동 중단으로 장사와 밀무역, 뙈기밭과 각종 중개업에 일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이번 조치가 상당한 생계위협이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서 ‘배급 700g 대상자’란 통상 노동력을 보유한 만 17세 이상의 성인 남성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들은 중학교 졸업이나 만기 군사복무 후 의무적으로 직장에 배치되게 된다.

성인남성이 부양하는 가족은 ‘배급 300g 대상자’가 된다. 이 대상자는 부인과 미취학 아동, 정년 퇴직자 등의 부양가족과 신체장애나 중증 질환으로 출근할 수 없는 노동자 및 농민들이다. 북한에서는 세대주가 사망하거나 ‘배급 300g 대상자’로 분류되면, 배우자가 자동으로 ‘배급 700g 대상자’ 자격을 승계하여 소속 직장에 출근해야 하는 의무를 갖게 된다.

현재 배급표를 지급하는 극히 일부 직장도 700g이 아닌 534g을 기준으로 배급하고 있다.

다른 소식통도 “시장관리소에서는 매대를 분양 받은 상인들의 소속 직장 여부를 확인하여 배급 300g 대상자들에게만 장사를 허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번 조치는 11월 중순부터 무산시, 회령시, 온성군 등 함경북도 국경지역에 파견된 ‘중앙당 비사회주의 그루빠(검열단)’가 직접 검열을 시작했고, 시∙군별 인민위원회 노동부와 시장 관리소가 통제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배급 700g짜리는 매대에 앉을 수 없다”

이번 조치로 앞으로 시장 매대에서 장사를 하려면 세대주의 소속 직장에서 발급하는 식량배급 증명서류를 발급받아 본인이 ‘배급 300g 대상자’라는 시∙군 인민위원회 노동과에 비준을 받은 후 시장관리소에 증명서류를 제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직장 출근 의무를 갖고 있는 ‘배급 700g 대상자’들은 기존에 갖고 있던 매대 권리를 박탈당하게 생계위협에 직면하게 될 전망이다.

북한에서는 90년대 중반 식량난 시기 공장가동이 중단되고 배급체계가 대부분 붕괴되면서 노동자들이 스스로 먹고 살길을 찾아 나서게 됐다. 이른바 ‘배급중단→노동력 이탈→생산중단→배급중단’이라는 악순환이 계속돼 당국도 사실상 손을 놓은 상태였다.

이번 조치를 전해들은 탈북자 최영숙(가명. 39세. 함북 회령)씨는 “남편이 사망했거나 병 들어 여성이 가족을 부양하는 세대가 최대 피해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씨는 “기업소에 나가봐야 배급도 없고, 임금도 없는데 세대주 역할을 하는 여성들이 장사를 하지 못한다면 그 집안은 꼼짝없이 앉아서 굶어 죽어야 할 것”이라며 “국가가 이번 조치를 강력하게 통제할 경우 내년부터 중국으로 넘어오는 여자들이 훨씬 더 늘어날 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중국 옌지에서 탈북지 지원사업을 벌이고 있는 박기창(가명) 씨는 “배급도 안주면서 직장에 나오라는 것이 말이 되겠느냐”면서 “1년 전 소리만 요란했던 국가배급제 실시 마냥 그냥 공염불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박 씨는 “만약 김정일과 평양의 고위층이 지난해 발표한 ‘국가배급제 실시’가 지금까지 잘 돌아가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면서 “먹는 문제도 해결하고 있으니 이제 생산력 증대를 위해 노동력을 총 동원해야 한다는 착각에 빠져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