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권력은 김정일에게서 시작된다

김정일과 관련하여 국내에서 출판된 책은 여럿 있다. 김정일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하는 내용의 책도 있고, 가까이에서 접해본 사람이 일화를 바탕으로 증언한 책도 있고, 북한에서 발행된 공식문서를 철저히 분석하여 김정일을 논한 책도 있다.

각기 나름의 한계가 존재한다. 일단 김정일은 조선노동당 총비서이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장이고 조선인민군 총사령관으로 북한 내에 실질적 권력을 행사하는 ‘정치인’이다. 물론 정치인의 사생활이나 개인적인 성격이 그의 정치적 판단과정이나 미래를 예측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은 되겠지만 정치인은 그의 정치적 행보와 결과로서 평가받아야 한다. 전자는 참고사항일 뿐이다. 그의 예술적 취향이나 음주습관, 급한 성격, 밤에 주요업무를 처리하는 특이한 활동방식, 기쁨조, 비밀파티 같은 것을 크게 다루다 보면 황색잡지 수준이 되고 만다.

『김정일리포트』- 무엇이 다른가

북한의 공식문서를 중심으로 김정일을 조명하려는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이러한 연구자는 박정희 전(前)대통령을 연구한다면서 박 대통령이 공식행사에서 행한 경축사나 국무회의 회의록 같은 것만 잔뜩 뒤져서 ‘박정희의 모든 것’이라고 내놓는 경우와 다름없다. 특히 북한처럼 같은 신문을 내외부용으로 따로 만들고, 우상화 선전활동을 치밀하게 연구하는 부서를 만들어놓고 하루 종일 그런 것만 써내는 작가가 존재하는 사회를 대상으로 할 때는, 그러한 연구방식은 작가들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닌 수준밖에는 안 된다.

김정일을 가까이에서 보았던 사람의 증언을 정리한 책들도 있다. 자신이 직접 쓴 경우가 있고, 그를 집중적으로 인터뷰한 사람이 따로 정리한 경우도 있다. 김정일에 대한 정보가 지극히 부족한 형편에서 이러한 1인 증언은 대단한 가치를 갖는다. 1인 증언이라고 해서 신뢰성을 낮게 봐서는 안 된다.

아무리 꾸미려 해도 책 한 권을 통째로 거짓말만 해대는 위대한 작가는 드물다. 대개는 진실에 골격을 두고 있으며, 그에 약간씩 주관적인 편견이나 오해, 과장이 있다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런 책은 분명히 ‘1인 증언’임을 명심해야 한다. 저자는 그것을 김정일의 모든 것으로 포장해서는 안 되며, 독자들도 이것을 이해하고 읽어야 한다. 그러나 간혹 김정일을 곁에서 보았던 1인 증언을 김정일의 모든 것처럼 이야기하면서 심지어 다른 이들의 주장이나 학계의 공인된 사실까지 폄훼하는 경우가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이 책은 김정일을 만나보았던, 혹은 그에 대한 정보를 접할 수 있었던 사람들의 구체적인 증언과 자료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저자는 김정일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을 띤 머리말에서 그 수를 “줄잡아 50명은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책을 살펴보면 50명이 훨씬 넘는 탈북자들의 증언이 다양하게 담겨 있다. 그래서 이 책에는 책상머리에서 수북한 자료에 밑줄을 그어가면서 작성한 ‘잉크냄새’가 아니라 증언자들을 만나러 뛰어다닌 ‘땀냄새’와 그들과 격정적으로 토론하며 함께 고민한 ‘담배냄새’가 느껴진다. 이것이 우선 이 책에서 가장 돋보이는 점이다.

『김정일리포트』- 이 책에는 무엇이 담겨 있나

책은 크게 4개의 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1장은 ‘김정일 다큐멘터리’로, 김정일의 출생부터 6자회담 테이블에 앉은 현재까지를 다루고 있다. 2장은 ‘김정일의 군대와 핵전략’으로, 김정일의 정치적 성장과정 중 ‘어떻게 해서 군부를 장악할 수 있었나’ 하는 측면을 중점적으로 해부하고 있으며, 3장은 ‘김정일의 통치술’을 선전능력, 조직장악력, 용인술, 대인관계 등에서 살펴본다. 이렇게 공인(公人)으로서의 김정일을 전반적으로 살펴본 후 마지막 4장에서 김정일의 여자, 취미, 건강 등 사적인 부분을 ‘김정일의 프라이버시’라는 제목으로 담고 있다.

이 책의 읽을거리 가운데 하나는 매 장과 장 사이에 끼어있는 ‘해설’ 형태의 글들이다. 저자는 책의 꺾어지는 부분마다 ‘중·소 이데올로기 논쟁’, ‘김일성의 대숙청’, ‘주체사상의 형성과 변질’, ‘북한의 초헌법 10대 원칙’, ‘남북정상회담의 명암’ 등의 제목으로 북한현대사에서 일어났던 일들 중 깊이 있게 알아두어야 할 내용을 따로 심층적으로 해설해 주고 있다. 또 책의 맨 뒷장에는 ‘김정일 핵심측근 프로필’을 부록으로 싣고 있는데, 저자가 만났던 탈북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공식적인 직책뿐 아니라 남한의 독자들은 쉽게 알 수 없었던 북한 고위관료들의 개인적인 성격까지 적어두고 있다. 아무튼 이래저래 볼 것이 많은 책이다.

『김정일리포트』- 왜 이 책을 읽어야 하나

북한에 대한 책은 많다. 인터넷 서점에서 ‘북한학개론’을 검색창에 입력하면 수십 권의 책이 펼쳐진다.

대개 북한의 역사로부터 출발하여 북한 권력기구의 체계, 특징, 통일방안 등을 논하는 천편일률적인 서술방식을 취하고 있다. 내용을 구체적으로 보자면 북한의 몇 차 당대회는 몇 년에 열려서 어떤 것을 결정했다거나, 내각 각 부서의 역할,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의 임기 및 회기(會期) 등을 다루고 있다. 미로(迷路) 같은 체계표와 연표도 빠지지 않는다. 만약 한국을 알고자 하는 외국인이 한국에서 헌법개정이 이루어진 연도와 그 변동사항, 행정 각 부의 역할, 국회의 회기 등을 외우면서 ‘한국을 배운다’고 하는 것은 ‘장님 코끼리 만지기’에 불과하다. 그런 것은 한국인도 잘 모른다.

‘다른 나라는 중요한 문제가 아닐지 몰라도 북한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이런 것이 중요하다’고 반론을 던질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다르긴 하다. 북한처럼 모든 사회체제가 ‘형식’으로만 존재하는 나라도 없을 것이다. 북한에서 자주성을 갖는 존재는 오직 김정일뿐이고, 결정권을 갖는 조직도 통틀어 김정일 개인뿐이다. 따라서 김정일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북한체제를 이해하는 관문이고, 어쩌면 유일한 길이다. 당대회 결정사항 같은 것을 아무리 외워봤자 별 도움이 안 된다. 이런 의미에서 『김정일 리포트』는 북한을 알고자 하는 초보자들에게 ‘북한학개론’ 열 권보다 더 권하고 싶은 책이다. 대학 강의에서 부교재로 활용하기에 가장 적절한 책이라 판단된다.

이 책은 제목은 『김정일 리포트』를 달고 있지만 사실은 김정일을 중심으로 하여 북한현대사, 주민들의 생활모습, 고위층의 사고방식, 사회경제적 수준, 그리고 북한체제의 미래전망까지 폭넓게 담고 있다. 오히려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다 보니 처음부터 과식(過食)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지만, 담고 있는 정보의 양에 비해서는 그리 지루하지 않다.

북한에 대한 책은 많다. 그러나 잘 팔리는 책은 별로 없다. 잘 팔린다고 꼭 좋은 책이 아니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잘 안 팔리는 책 중에 꼭 필요하고 소중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들이 많다.

북한과 관련한 책들이 그러하다. 북한문제가 향후 한반도의 운명을 최소한 10년 이상 좌우할 중요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정작 북한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몇 해 전 이웃나라 일본에서 만화로 된 ‘김정일 입문’이라는 책이 전(全)일본 베스트셀러 10위권 안에 몇 주째 머물며 수십 만 권이 팔려나가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만화 ‘김정일 입문’은 한국의 만화가 이우정 씨가 그렸으며, 그 원본이 된 책은 『김정일 리포트』의 구판인 『다큐멘터리 김정일』이다. 아무튼 한국 사람들은 세계 어느 나라 사람보다 북한에 대해 가장 잘 알아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으며, 북한을 공부하기에 가장 좋은 조건에 있다. 북한을 알자면 김정일을 알아야 하며, 그런 의미에서 이 책 『김정일 리포트』를 권한다.

The DailyNK 기획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