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정권을 ‘불량정권’으로 부르는 진짜 이유

▲재스퍼 베커 지음(2005.기파랑刊)

‘불량하다’의 사전적 개념은 「성질이나 개념이 나쁘다」이다. 대개 말이나 행동거지가 올바르지 못하거나 타인을 속이려고 하는 사람을 가리켜 「불량하다」는 말을 붙인다. 그런데 이 ‘불량’이라는 수식어가 딱 어울리는 국가가 있다. 바로 북한이다. 혹자는 북한 체제를 가리켜 ‘마피아 정권’으로 부르기도 한다.

한국 사회는 북한을 애써 두둔하지 않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면 반북(反北)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경향이 있다. 영국의 가디언, BBC,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등의 베이징(北京)특파원을 지낸 재스퍼 베커는 대표적인 반북 언론인으로 통한다. 그는 남한의 햇볕정책을 두고 노무현 정부와 갈등을 빚은 적도 있다.

베커는 북한을 파헤치기 위해 수 차례 북한을 방문했다. 북-중 국경 지역을 답사해 탈북자들을 수 없이 면담했다. 북한을 직접 방문한 NGO, 외교관 등과도 빈번하게 접촉했다. 그 노력의 결정판으로 2004년 초『불량정권』이 출판된다.

혹자들은 이 책을 미 네오콘의 반북교과서 정도로 취급한다. 이러한 비난을 하거나, 이런 흐름에 편승한 사람들은 이 책을 정독한 뒤 자신이 지성(知性)과 반(反)지성 중 어느 편에 서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길 권한다. 일방으로 휘어진 사회적 통념을 깨고 양심의 편에 서서 진실을 찾아나서는 한 저널리스트의 노력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 50년 동안 김일성이 구축한 북한의 세습적 통치체제는 대략 400만 명을 살해하거나 굶겨 죽이는 등 자국의 국민들을 짐승처럼 다루었다. 자신들에 대한 광신적 숭배를 강요하기 위해 귀중한 재원을 물 쓰듯 낭비하고 있다.”

주민들의 사상장악, 독재완성 결정적 계기

『불량정권』은 북한이 국제사회에 부각되기 시작한 식량난과 탈북자 문제로부터 출발한다. 넝마 옷에 찢어진 신발로 컴컴한 밤길을 내달리는 탈북자들. 그들을 통해 들은 식량난의 실태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베커는 북한의 역사를 파헤쳐본다. 일제 식민지로부터의 해방 그리고 분단과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조금의 실마리가 보인다.

한국전 패전 이후 전쟁발발에 대한 책임으로 입지가 약화된 김일성은 이를 무마하기 위해 대단위 숙청을 자행하고 북한주민들을 외부세계와 단절시킨다. 또한 황장엽의 주체철학에 봉건사회의 ‘충효’를 결합시킨 수령론을 탄생시켜 김일성-김정일은 생명체의 가장 중요한 뇌수이며 일반 대중은 절대 충성을 받칠 때에만 생명력을 갖게 된다며 주민들의 사상을 장악해간다. 이 시기 이루어진 김정일과 김영주의 후계자 경쟁은 독재를 완성하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그러나 아무리 주민들을 철저히 세뇌시켰다 해도 60년간 독재정권이 유지될 수 있을까? 베커는 북한의 역사에 이어 이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 정치범수용소 교도관이었던 안명철씨 등 정치범수용소를 경험한 탈북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강제수용소에 대한 실태와 당-사회안전부-국가보위부로 이어지는 국가 감시체계에 대해 기록한다.

기만과 폭력으로 유지된 독재사회는 결국 경제부터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사회주의 경제의 낮은 생산성으로는 독재자의 호화로운 생활과 엄청난 군사력을 감당해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경제가 점점 나락의 길로 떨어지고 있을 무렵 동구 사회주의국가들이 붕괴하였다. 김정일에게 비빌 언덕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국가배급체계가 엉망이 되어가고 2차례의 홍수피해를 입으면서 북한은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했다.

하지만 베커는 정권세습, 폭력과 감시, 그로 인해 비롯된 식량난의 책임으로 김정일정권을 ‘불량정권’이라 부르지 않는다. 김정일정권을 ‘불량정권’이라 불러야 하는 진짜 이유는 그 다음부터 전개된다.

300만이 굶어죽는데 김정일은 바닷가재 요리에 꼬냑

300만의 북한 주민들이 굶어 죽어간 시기 김정일은 바닷가재 요리에 최고급 코냑을 반주로 곁들였다. 긴급원조를 위해 유엔이 6억 달러를 세계 각국에 요청하고 있을 때, 김정일은 신형 S-500급 벤츠 리무진을 수입하는데 2,000만 달러를 소비했으며 죽은 아버지의 시신에만 9억 달러를 사용하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국제사회의 원조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시켜주는 군대와 보위부로 1차 분배하였다. 이러한 김정일의 행태는 자신의 실정으로 초래된 북한주민들의 죽음을 의도적으로 방치한 것이다. 이것은 학살이나 다름없다.

또한 김정일은 위태로운 정권의 목숨의 유일한 방어수단으로 핵무기와 대량살상무기에 매달리고 있다. 북한은 1994년 제네바 합의를 보기 좋게 어기고 NPT를 탈퇴하였으며 2005년 국제사회에 당당하게 핵 보유를 선언하였다. 곧 이어 단거리 미사일을 시험 삼아 발사하고 핵 실험의 가능성을 과시하기도 하였다.

이제 그는 핵무기로 한반도를 인질 삼아 국제사회를 위협하고 있으며 다른 불량국가, 불량조직에 대량살상무기를 밀매하고 있다. 이제 김정일의 존재는 분명하고도 상존하는 국제사회의 위협이 된 것이다.

베커는 묻는다. 우리는 ‘불량정권’을 어떻게 해야 될까? 중국과 남한의 정치 지도자들,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는 북한문제를 단순히 핵 확산 내지 경제복구문제로만 한정시키려 한다. 하지만 북한문제는 지도자에 의해 자국민이 학살된 윤리적인 문제이다. 안타깝게도 아직 국제사회는 이런 윤리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합의가 되어 있지 못하다. 이는 이라크전쟁에서 극명하게 들어났다.

국제사회가 불량국가 심판에 나서야

그는 이라크와 같은 상황이 재현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불량국가’ 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새로운 메커니즘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제법을 근원적으로 보완하고 이를 근거로 유엔 등 국제기구와 국제사법재판소를 현실에 맞게 개혁하고 합법적인 물리적 강제력의 사용이 보장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불량국가를 심판할 권리가 누구에게 있으며, 군사력을 사용할 주체가 누구인지 의문을 제기한다. 더러는 이런 논의가 곧바로 군사적 행동으로 연결될 것처럼 흥분하기도 한다. 하지만 차분히 다시 불량정권의 실태를 되돌아보자.

우리는 노예제나 신분제와 같은 구시대의 나쁜 제도와 악습을 제거하기 위해 오랜 시간에 걸쳐 노력하여 왔다. 그때의 노력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문명세계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문명사회의 혜택을 모든 국가와 국민으로 넓히고 테러로부터 세계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불량국가와 사악한 지도자는 세계가 책임질 수 있으며 책임져야 마땅하다.

이유미/대학생 웹진 바이트(www.new-leaders.com)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