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정권, 최후의 보루

이 책은 국내에 6,000여 명이 넘는 탈북자들 중 최초로 보위부 지도원 출신인 윤대일 씨가 보위부 근무시절 경험했던 내용들을 담아 수기 형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저자 윤대일은 이 책의 집필 동기를 책 머리말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걱정되는 문제는 내가 북한의 실상을 알리고 세상에 고발하면 그나마 남아 있는 형제들에게 또 다른 피해가 가해질 것이라는 미안한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나 한 개인의 가족보다도 수천만 명의 북한 주민들을 위한 희생을 각오하고 북한의 심각한 인권문제와 실상을 사실대로 알려주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고 결론을 내렸고 미국에 가서도 그대로 하였습니다. (중략) 우리 북한 동포들을 위해 반드시 진실을 고발하리라 마음먹고 그야말로 3년 7개월의 은둔 생활에서 양지로 나오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실제로 그의 가족들은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졌고, 형님은 저자의 남한 행의 책임을 물어 처형당했다고 한다.

국가안전보위부 지도원 윤대일

윤대일은 북한에서 9년간 군복무를 마치고 함경북도 무산군에서 노동자로 일했다. 노동자로 일하던 중 국가보위부 요원으로 채용돼 정보활동을 위한 교육을 받고, 북·중 국경 접경지대인 함경북도 무산군 국가보위부 반탐과(反探課) 지도원으로 15년간 근무하다 1998년 탈북했다. 보위부 지도원을 하면서 중국에서 송환돼 오는 탈북자들을 심문하거나, 중국에 있는 탈북자들을 색출하고 체포하는 일을 직접 관할했다. 1998년 4월에 있은 국가안전보위부 일꾼들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 시 그 대상으로 지목되어 살아남지 못하게 되자 부득이 탈북을 결심했다고 한다.

북한에서 국가안전보위부의 권한과 지위를 놓고 봤을 때 국가안전보위부 지도원으로 15년간 복무한 저자의 경험은 북한 사회의 허와 실을 속속들이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정보를 제공할 것이다. 이는 달리 말해 남한 내에 존재하는 다른 탈북자들보다 북한의 본질적 문제를 구체적으로 증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붕괴되지 않는 사회에서 겪는 고통

이 책을 읽은 포인트는 크게 두 가지이다.

먼저, 하나는 김일성, 김정일이 자신의 세습체제를 유지하기 위하여 이용했던 ‘국가안전보위부의 실체’를 정리해 보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문제 많은 사회가 왜 무너지지 않는가”, “지식인들과 북한 주민들은 왜 그토록 철저히 복종하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하곤 한다. 이런 의문에 사로잡혀 있는 독자라면 이 책을 정독해 보기를 권한다.

상상을 초월하는 북한 사회의 폭압통치 구조를 알지 못하고서는 무너지지 않는 북한 사회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국가안전보위부와 인민보안성(경찰), 그리고 군대를 통해 주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북한 사회의 실상을 알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입소문으로만 전해지던 국가안전보위부의 실체와 김 부자의 세습체제 유지를 위해 어떤 일들을 자행하였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북한 사회를 이해하는 키워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세습체제 유지와 수령절대독재를 위한 야수적인 탄압 속에서 ‘북한 주민들이 겪는 고통과 삶의 모습’을 정리해 보는 것이다. 인류 역사상 상상하기 어려운 수령 독재의 칼날이 북한 주민들에게 어떤 고통과 아픔을 주었고, 현재에 와서 북한 사회가 어떠한 사회로 망가졌는지를 살펴보는 게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포인트이다.

인권청소부=국가안전보위부

저자는 국가안전보위부가 1945년 11월 19일 김일성이 평안남도 남포시 ‘보안 간부 훈련소’를 현지지도 했다고 하여 이날을 창설일로 기념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국내에 알려진 자료에는 국가안전보위부가 8·15광복 직후인 1947년 2월 북조선인민위원회 보안국으로 출발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다소 시기적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여하튼 정권유지의 도구로써 국가안전보위부가 출범했다고 볼 수 있다.

국가안전보위부는 김일성 부자의 세습독재체제를 유지하기 위하여 주민의 사상과 동향을 감시하면서 반체제사범의 색출과 김일성 부자에 대한 비방사건의 수사를 전담하고, 이와 관련된 죄목으로 체포된 정치범들을 수용하는 수용소의 관리를 맡고 있다. 그밖에 국가안전보위부는 반탐(反探), 즉 대간첩 업무와 해외정보의 수집, 해외공작 임무를 수행하며, 국경경비 및 출입국 관리업무도 맡고 있다. 한국의 대통령 경호실과 유사한 호위총국(護衛總局)과 협조하여 김정일을 비롯한 당과 정부의 고위간부를 경호하는 일도 한다.

국가안전보위부는 김 부자의 신변안전을 위해서 성분의 좋고 나쁨을 따져 아주 사소한 위험성만 보이더라도 주민들을 삶의 터전에서 쫓아내는 ‘인권청소부’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결국 ‘김 부자의 체제유지를 위한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 있다.

남한의 많은 사람들은 북한 내에 김정일을 반대하는 반체제조직이 존재하는가에 대해 궁금해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워낙 알려지지 않은 폐쇄적인 사회이기도 하지만 북한이 그렇게 문제가 많은 사회라면, 그곳도 사람이 살고 있는 사회인데 반체제 세력이 하나도 없겠냐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다.

북한에서 김정일을 반대하는 반체제 활동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목숨뿐 아닌 가족의 목숨을 담보로 하지 않으면 어렵다고 한다. 철두철미한 감시와 검거, 처형이 일상화 되어있는 사회이다 보니 반체제 활동을 한다는 게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북한 내에서 김정일을 반대하는 반체제 활동이라는 게 삐라를 뿌린다거나 낙서를 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는 것이다.

국가안전보위부의 활약(?)

『국가안전보위부의 내막』은 역대 보위부장들의 처참한 말로를 이채롭게 소개해 놓고 있다. ▲ 초대 보위부장인 김병하가 애매한 군중을 처형하여 당과 대중을 이탈시켰다는 이유로 처형된 사건과 ▲ 2대 보위부장 이진수가 지방 순시 도중 군 보위부 침실에서 잠을 자다 밤나무 가스에 중독 돼 사망하였다는 이야기 ▲ 3대 보위부 제1부부장 김영룡이 김정일에게 반당 반혁명종파분자로 낙인찍히자 처형을 예감하고 회의 휴식시간에 극약을 먹고 자살했다는 이야기 등을 소개하고 있다.

2대 보위부장 이진수의 가스중독 사망이나, 3대 보위부 제1부부장 김영룡의 자살이 김정일에 의한 직접적인 제거명령이 없었다 하더라도 체제유지를 위해 스스로 희생양을 자처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이는 김정일이 자신의 최고의 심복이라고 여겼던 국가안전보위부장까지도 자신의 세습체제 유지와 신변안전을 위해서는 철두철미하게 제거하고 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더불어 이 책에서는 국가안전보위부가 김 부자의 세습독재를 위해 대활약(?)을 벌인 김일성 사후의 몇 가지 중대사건들을 소개하고 있다. ▲ 1995년 6월경에 함경북도 청진시 나남구역에 위치하고 있는 인민군 제6군단사건과 그 여파로 1996년 1월과 4월 함경북도 당위원회 조직비서와 함경북도 안전보위부 부장의 처형사건 ▲ 1996년 12월 김일성의 시신이 안장되어 있는 금수산기념궁전 삐라 사건 ▲ 1997년 7월 중앙 사로청(지금의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사건 ▲ 1997년 9월경에 북한의 당중앙위원회 농업담당 비서 서관히 처형 사건 ▲ 1998년 4월 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 김영룡 제거사건 등이 있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6가지의 굵직한 사건들은 북한 주민들 내에서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는 사실이라고 한다.

정치범 수용소와 공개처형

북한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궁금해 할 만한 문제가 정치범 수용소와 공개처형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정치범 수용소는 워낙 비밀스럽게 위장 관리되고 있으며, 공개처형 문제도 탈북자들의 많은 증언이 있긴 하지만 사진이나 자기 눈으로 직접 보지 않고서는 믿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일본 언론사를 통해 정치범 수용소와 공개처형 동영상이 공개되어 사실임이 입증됐다.

저자의 증언에 의하면 현재 북한 내에 10여 개의 정치범 수용소가 있으며, 수용소에는 줄잡아 약 20여만 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살아나올 수 없는 운명에 놓여있다고 한다.

저자가 증언하는 정치범 수용소의 분포를 살펴보면 ▲ 함경북도 청진시 수성 제25호 ▲ 함경북도 회령시 사월리 제22호 ▲ 함경북도 화성군(명간) 제16호 ▲ 함경남도 요덕군 제15호 ▲ 함경남도 덕성군 리망지리 제23호 ▲ 함경남도 정평군 제00호 ▲ 평양시 승호리 제00호 ▲ 평안남도 개천군 피호산 제00호 ▲ 자강도 희천시 제00호 등이다. 각각의 수용소에 수감되는 죄수들의 죄목과 형량이 다르며 출소여부도 다르다고 한다. 이러한 정치범 수용소 실태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탈북자나 국내외 인권단체들의 증언과 일치한다.

북한에서는 반체제 내지 반인륜적 범죄를 중심으로 1995년 이전까지 간헐적으로 있어왔던 공개처형이 1995년부터 급속히 증가되었다고 한다. 1995년부터 북한 전역에서 범죄자에 대한 공개처형이 경쟁적으로 진행되어 주민들을 공포에 떨게 하고 감히 체제에 반항하지 못하도록 하였다는 것이다.

저자는 “1995년부터 1998년까지의 기간 300여만 명의 북한 주민들이 제대로 먹지 못하여 굶어 사망했으며, 공개처형이 진행되던 이 시기에 한 개 군에서 한 해 평균 10∼12명의 주민들이 공개처형 된 것을 계산해도 최소한 전국적으로 2,000여 명의 주민들이 공개처형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의 국가안전보위부는 정치범들인 경우 주민들에게 미칠 역효과를 고려하여 일반범죄자로 판결하여 처형하고 있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 또한 많은 탈북자들의 증언과 일치한다. 필자가 국내 탈북자들과 중국에 체류하고 있는 탈북자들을 직접 만나 듣게 된 증언에서도 이 같은 사실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저자는 공개처형의 방법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공개처형 방법도 이전 시기에 비해 더 엄격하고 무자비하게 진행되고 있는데 종전에는 사형수의 가슴을 조준하여 사형을 집행하던 것을 최근에는 머리를 직접 조준하여 처형하고 있으며 주민들에게 여러 가지로 자극을 줄 필요성을 감안해서인지 시체를 하루 동안 형장에 방치해 두는 경우도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왠지 서글퍼진다. 연좌제로 북한에 남아 있는 형제들에게 또 다른 피해가 가해질 것이라는 무거운 마음으로 이 글을 쓴 저자 윤대일의 현실과 아직도 진정한 자유와 행복의 가치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수령 독재에 의해 인간 이하의 삶을 강요당하는 북한 주민들의 삶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이러한 비극의 현실과 역사가 하루 빨리 끝났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또 북한 사회에 대한 우리의 올바른 인식과 이해가 닫힌 북한 사회를 여는 열쇠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The DailyNK 기획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