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신혼부부가 독수공방?…“집 때문에”

▲ 북한의 신혼부부 ⓒ데일리NK

◆ “우리 그냥 같이 살게 해주세요.”

함경남도 함흥에 사는 최일남(가명.25)씨는 지난 봄 이웃 마을에 살던 참한 아가씨와 결혼식을 올렸다. 친지들과 친구들의 도움으로 결혼식도 보기 좋게 올리고 나니 앞으로 새색시와 아웅다웅 살 일만 남았다 싶었다.

그러나 최 씨에게는 결혼 이후 날벼락 같은 일이 생겼다. 북한에서도 남한처럼 결혼을 할 경우 남자가 집을 마련하고 여자는 살림살이를 장만하는 것이 보통이다. 부모와 같이 사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 분가를 한다.

그러나 요즘에는 매년 뛰어오르는 집 가격 때문에 분가할 집을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또 집을 어렵게 구했다 하더라도 검찰소(경찰서), 보안서, 인민위원회 도시경영과에서 개인이 마음대로 집을 사고 팔았다면서 몰수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렇게 몰수된 집은 군관이나 제대군인에게 넘긴다고 한다. 최 씨 또한 집이 몰수 돼 순식간에 오갈 데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그는 억울한 마음에 보안서에 쫓아가 “그럼 우리는 어떻게 살라는 말이냐”고 따져 물었다. 그러자 “부모와 함께 살면 되지 않느냐”며 건물 밖으로 내쫓았다.

최씨는 이미 집을 사기 위해 빚을 지고 있는 상태다. 부모와 동생들도 하루하루 근근이 먹고 사는 형편이기 때문에 집을 다시 사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하는 수 없이 이제 막 결혼한 신혼부부는 각자의 집에서 따로따로 생활해야 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자신과 같이 봉변을 당해 하루아침에 헤어져 살아야 하는 신혼집들이 많다고 한다.

◆ 北에도 부실공사가?…용천의 기막힌 사연

평안북도 용천에서 사는 김금녀(가명. 55)씨는 요즘 깊은 잠을 들지 못한다. 네 식구가 사는 작은 아파트가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지난 2004년 용천역 폭발사고로 집을 잃은 김 씨는 가족들을 데리고 몇 달간 천막살이를 해야했다. 아는 집에 얹혀사는 일이 반복된 다음에야 나라에서 새로 살 집을 번듯이 지어줬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게 됐다. 그러나 기쁜 마음도 잠시, 집은 겉만 멀쩡할 뿐 속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모래성과 같았다.

이웃들은 용천역 폭발사고로 새로 지어진 집들이 부실 공사로 인해 붕괴위험에 있다는 얘기들을 하기 시작했다. 새로 지은 집들은 부실한 자재와 빠른 공사 일정으로 온돌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고, 전기 시설도 형편없어 제때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집도 많았다. 벽에는 금이 가는 등 붕괴의 위험도 컸다.

옆 집 누구 얘길 듣자니 용천 사고 당시 지원된 여러 건설자재와 식료품들은 용천 주민들에게 전달되기 전에 간부들에 의해 다른 도·시·군으로 팔려나갔다고 한다. 또 실제 복구 작업에 사용된 자재는 형편없는 것들 뿐이고, 빠른 시간 내에 공사를 마무리하는 지시에 의해 날림공사가 진행되었다고도 한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집에 사는 김 씨에게 있어 나라와 장군님은 더 이상 고마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 “증명사진 찍고 가세요. 한 장에 단 돈 2천원”

함경북도 청진에 사는 황철용(가명. 20)씨의 아버지는 중국하고 무역을 하며 돈을 꽤 모은 무역업자다. 돈 잘 버는 아버지 덕분에 황 씨는 직장에 이름만 걸어놓고 친구들과 놀러 다니기 일쑤다. 그의 집에는 주변 친구들에게는 없는 외제 물품이 많았다.

그 중에 특히 황 씨가 아끼는 건 일제산 디지털 카메라다. 카메라를 들고 거리를 누비고 다니면 젊은 아가씨들이 선망의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것 같아 목에 힘이 들어간다.

청진에만도 자신과 같이 디지털카메라를 갖고 다니는 사람들이 꽤 된다. 디지털카메라의 사용은 3~4년 전부터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 사람들을 대상으로 전문적으로 사진을 인화해주는 장사치들도 생겨났다. 증명사진 한 장은 2000원에 인화해준다.

회령에 사는 친구 말을 들으니 거기서는 한 장 당 500원을 받고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준다고 한다. 일정 수량이 채워지면 청진으로 보내져 현상과 인화를 하는데 보통 5일정도 시간이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