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점보는 사람 늘고 있다

▲ 미신숭배도 노농단련형에 처해진다

최근 북한에서는 ‘미신 숭배’가 유행하면서 돈을 받고 관상(觀想), 족상(足相) 등을 봐주거나 귀신 쫓는 액땜 굿을 대신해주는 ‘점쟁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들 점쟁이들은 북한 돈 100원에서 300원까지 받으며 관상이나 족상을 봐주고, 최고 1천 원을 넘는 ‘복채’를 챙기는 ‘액땜 굿’까지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환자들에게 ‘침’이나 ‘뜸’을 놔주는 일도 점쟁이들의 ‘주요영역’ 이라고 한다.

귀신 쫓는 제사 지내다가 노동단련대에 끌려가

중국 옌지(延吉)에서 만난 탈북자 박성순(가명. 64세. 함경남도 함흥) 씨는 탈북 직전 함흥시 00마을의 ‘최고 점쟁이’였다. 2003년 11월 무렵 ‘귀신 쫓는 액땜 제사’를 벌였다는 이유로 노동단련대에 끌려갔다. 죽도록 고생했던 노동단련대에서 나오자마자 탈북, 현재 연길시 외곽에 살고 있다.

당시 박씨가 살던 동네의 인민반장은 ‘1천 원’의 복채를 약속하고 밤마다 꿈에 나타난다는 귀신을 쫓아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인민반장은 8백 원이 넘는 돈을 들여 제사상을 차려 올렸지만 악몽은 없어지지 않았고 박씨에게 쌀값과 제삿상 차리는 값을 합쳐서 1천 8백 원을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놨다. 박씨가 돈을 돌려주지 않자, 이에 앙심을 품은 인민반장이 동네 보안서에 신고, 박씨는 ‘귀신 사상을 전파하고 민심을 어지럽힌 罪’로 5개월의 노동단련형을 받았다는 것이다.

“지금 조선 사람들 사는 모습이 어떤가? 몸이 아파도 쓸 약도 없지, 사는 것이 아무런 보람도 없지 하니까, 그저 가난하고, 몸 아프고, 마음 약한 사람들을 달래주고 위로 하는 것이다. 나는 처녀 때 친정아버지로부터 침이랑 뜸 놓는 방법을 배웠다. 그래서 그냥 얼마씩 받고 침도 놔주고, 안타까운 사연이 있으면 대신 액막이 해준다고 용기도 주고 그런 것이다. 그 인민반장은 평판도 안 좋고 돈은 많으니까 내가 작정하고 한번 덤빈 것이다. 결국 나만 혼쭐이 났지……”

나이 숫자만큼의 음식과 동전을 차리고 동쪽을 향해 절 세 번

박씨에게 당시의 상황을 물었다.

“그 인민반장 나이가 51살이었는데, 돼지고기에, 떡, 전, 생쌀을 포함하여 자기 나이 숫자만큼 음식을 차리라고 했다. 제사를 지내러 가서보니까 알옥수수에 중국제 사탕, 담배까지 해서 아무튼 입에 들어가는 것으로 51가지를 차렸더라. 나도 내심 놀랐다”

“먼저 내가 동쪽을 향해 절을 세 번하면서 ‘오방지은 대감님, 이 사람에게 붙은 귀신을 떨어버리고, 다가오는 죽음을 막아주십시오’라고 한 다음, 인민반장에게 술을 들고 집 기둥 4곳에 부으라고 시켰다. 그리고 명주천에 각 음식을 조금씩 담고, 그 사람의 손톱, 발톱, 동전 5원 10전을 싸서 묶은 다음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가에 놓고 오라고 시켰다. ‘그 명주뭉치 주워가는 사람이 당신의 액운을 가져갈 것이다’고 말했더니, 냉큼 밖에 나가 버리더라”

인민반장은 박씨가 시키는 대로 아침 동이 틀 무렵 명주뭉치를 동네 네거리에 가져다 놨다. 날이 밝아오자 하나 둘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이때 지나가던 젊은 아가씨가 그 주머니를 들고 쏜살같이 도망쳤다. 그 아가씨는 아마 ‘오늘 횡재했다’고 좋아했을 것이란다.

김정일 유일독재에서는 미신도 처벌대상

박씨의 말에 따르면 요즘 북한에는 자칭 ‘점쟁이’들이 아주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이름도 없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신을 만났다’, ‘간밤에 흰 할아버지가 내려와서 계시를 주고 갔다’며 저마다 돈벌이에 열을 올린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당연히 ‘미신행위’는 북한 당국의 검열대상에 포함되었다. 김정일은 ‘미신행위는 제국주의자들이 사회주의를 와해시키기 위한 사상문화적 침투’라고 하면서 국경지대와 주민들 속에서 외부로부터의 문화침투를 막으라고 여러 차례 지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안전원, 보위원들은 사복을 입고 점쟁이들을 찾아내어 병을 고치거나 관상을 보는 척하면서 현장에서 붙잡아 노동단련대로 보낸다.

박씨는 보안서 요원들이 자신을 ‘미제의 간첩’으로 내몰며 고문했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잠을 이룰 수 없다고 했다.

“보안서 사람들이 나보고 ‘왜 귀신을 전파했는지 이유를 말하라’며 학대를 하는데 지금도 생각하면 몸이 떨린다. ‘어디서 그런 귀신 사상을 배웠냐?’고 따지더니 나중에는 ‘미제의 간첩 아닌가?’ 하며 기세를 올리는데……. 조선에서는 ‘간첩’이 되면 온 가족이 끝장나는 것이다. 내가 간첩이 아니라고 끝까지 버티니까 ‘귀신 찾다 끌려왔으니 너가 여기서 감옥귀신이 되어보라’며 끝까지 추궁했다. 그때 ‘아 내가 조선에서 더 이상 못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북한에서는 일반 종교와 마찬가지로 미신 행위들도 탄압의 대상이다. 미신을 믿으면 사람들이 ‘수령님’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 당국은 ‘종교는 인민대중의 자주의식을 좀먹는 아편과 같다’고 수십 년간 사상 투쟁을 벌여왔다.

미신을 믿고 제사를 지내는 사람들은 대부분 간부층

북한 주민들은 80년대 중반까지는 북한이 비교적 안정된 사회였다고 말한다. 김일성이 인민들에게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해주었다는 것이다. 이를 반증하는 사회적인 시책들이 무료교육과 무상치료였다. 이런 환경 속에서 북한 주민들은 ‘세상에 없는 신’이 아니라 ‘살아있는 신’으로써 김일성을 숭배해왔다.

그러나 김일성이 죽자, 북한 주민들의 사상에서 방황이 생겨났다. 대량 아사사태 이후 찌들린 생활 속에서 주민들은 더 이상 김정일을 믿지 않는다. 이때부터 각지에서 ‘신의 계시를 받은 사람’들이 줄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박씨에 따르면 미신을 믿는 것도 간부들과 일반 주민들 사이에 차이가 있다고 한다. 점쟁이들은 일부러 자기가 잘 고친다는 소문을 내고 간부들을 끌어당기기 시작한다. 밤이 되면 용하다는 점쟁이들을 자기 차로 모셔다가 굿을 받고 제사를 지내는 사람들은 거의 ‘간부’들이라는 것이다.

인터뷰 끝에 박씨는 이렇게 말했다.

“간부들조차 믿고 의지 할 데가 없는 마당에, 일반 백성들은 어떻겠나? 살지도 못하고 죽지도 못하고, 그게 지금 조선 사람들의 현실이다”

중국 = 김영진 특파원 kyj@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