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노란 봄철’…98년 식량난 비슷”

▲ 식량을 구해 중국에 왔다 돌아가는 북한주민

지금 북한은 최악의 춘궁기인 ‘노란 봄철’을 맞고 있다. ‘노란 봄철’은 북한 주민이 일년 중 가장 어려운 시기를 가리키는 말이다. 못 먹어서 하늘이 노랗게 보인다는 뜻이다.

지난 5월 15일 두만강을 건넌 무산 주민 이현수(46세)는 “하루 하루 살아가기가 정말 고통스럽다”고 호소했다.

4인 가족의 가장인 이씨는 “동네 사람들이 중국에 갔다, 남조선에 갔다는 소문이 돌지만, 나는 어떻게 하든 국경만은 넘지 않으려고 했는데, 굶주리는 가족 때문에 두만강을 건넜다”고 말했다. 이씨는 “’줄듯 말 듯 10리를 끌고 간다’고 국가가 배급을 준다고 해놓고 사기를 쳤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최근 두만강 지역에는 이씨처럼 가족의 생계를 이어갈 수 없게 된 북한주민들의 ‘강타기’(월경)가 또 시작됐다. 최근 기자가 만난 탈북자는 이씨를 포함해 5명이다. 이들은 중국 옌지(延吉)의 은신처에서 기자와 만나 최근 주민들이 겪고 있는 식량상황과 당국의 식량배급정책에 대해 강한 불만을 털어 놓았다.

주민 최영남(가명, 37세)씨는 “4월 1일부터 배급준다고 해서 기다렸는데, 봄철이면 쌀이 더 모자라는데, 어디서 나올 데가 있나? 사람을 속여도 분수가 있지……”라며 말끝을 흐린다. 최씨는 “1월과 2월에 부양가족과 노인들에게 보름에 2일, 3일분 쌀을 주었다. 그 다음엔 배급소에서 장마당 가격으로 사먹었다”고 말했다.

북한 배급소의 국정 쌀 가격은 45원, 강냉이 25원이다. 북한당국은 배급제를 공표하면서 장마당 쌀장사를 통제하고, 배급소에서 장마당 쌀값과 같은 가격인 쌀 950원, 강냉이 350원으로 주민들에게 팔았다. 최근 장마당 쌀값이 1300원을 넘어서자, 배급소 쌀값도 그에 따라 올라간다고 말한다.

“식량난 말기 98년 상황과 비슷한 느낌”

이들은 “당 기관, 보안서(경찰), 보위부 가족들은 1년치 배급량을 미리 챙겨놓고 저희들끼리 먹고, 5호 관리부(각 시도에 있는 노동당 39호실 산하 외화벌이 기관)와 군중외화벌이와 같이 힘있는 기관에 다니는 사람들은 배급을 타먹지만, 일반 직장들도 배급이 중단되었다”고 말한다.

2002년 7.1 경제관리조치 이후 각 기관이 자체로 벌어먹는 정책이 나와 괜찮은 직장은 자체로 먹고 살고, 영세한 공장들은 굶는다는 소리다. 주민들 사이에서도 다른 사람이야 먹든, 굶든 상관없다는 태도가 만연해졌다.

중국 화교로부터 물건을 넘겨받아 ‘되거리’ 장사를 했다는 박모씨는 “요즘 너도나도 장사하는 바람에 물건 값을 제대로 못받아 본전을 다 놓쳤다”고 말했다.

회령 철제공장에 적을 둔 박씨는 세 식구의 가장이다. 박씨는 갈수록 살기 힘들고 도무지 가망이 안보여 중국에 건너와 농사일이라도 해주고 돈을 벌 결심으로 두만강을 넘었다고 한다. 다음은 박씨의 말이다.

“지금은 식량난 시기 마지막인 98년 때와 사정이 비슷하다. 조금 있으면 중국으로 뛰는 사람들이 또 늘어날 것이다. 국경지대 사람들은 ‘중국 문세'(화교를 끼고 하는 각종 장사)를 해서 자기들이 왜 못사는지를 다 안다. 사람들이 이젠 악밖에 안 남았다.”

“풀뿌리와 죽으로 끼니, 노약자 병약자 굶어죽어”

한편 평안도와 황해도 지방으로 장사 다녔다는 현주훈(가명, 50세)씨는 “앞쪽 지대(평안도 지방) 사람들이 사는 형편이 국경지역보다 더 어렵다”고 말한다.

배급을 못받는 것은 국경지역과 같지만, 장사 밑천이 없는 지방 주민들은 풀뿌리와 죽으로 끼니를 때우는 경우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현씨는 “보름 동안 5일치만 받기 때문에 강냉이 죽을 먹었다”고 말했다. 현씨는 평남 순천, 덕천 지방에서 노약자와 병약자들이 굶어 죽는 모습을 보았다고 말했다.

현씨는 그 이유를 “북한당국이 지방마다 자체의 쌀로 배급을 주라고 지시해 그 지방 쌀이 다른 지방으로 흘러 나가는 것을 통제했기 때문에 지방마다 식량 격차가 벌어졌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가을 각 지방에서 군과 군, 시와 시를 연결하는 도로마다 군대와 규찰대를 조직해 식량유출을 통제한 바 있다.

이씨는 “앞쪽 사람들은 굶어 죽으면서도 제국주의자들의 경제봉쇄 때문에 못산다는 당국의 선전을 곧이곧대로 믿기 때문에 생각이 달라지기 전에는 아무런 반항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중국 옌지= 김영진 특파원hyj@dailynk.com
한영진 기자 (평양출신, 2002년 입국) hyj@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