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국경세관 “뇌물없이 통과 없다”

▲ 국경다리를 건너 회령세관으로 들어가는 차량들

데일리NK는 지난해 10월 북한 회령세관이 친척방문에 나선 조선족에 대한 갈취행위를 독점 보도했다. 최근 친척방문을 하고 돌아온 조선족들은 한결 같이 “종전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덜 하지 않다”고 한다. 중국에 있는 북한 대사관과 중국 당국에 신소를 해도 별 변화가 없다.

최근 북한에 있는 친척을 방문하고 돌아온 조선족 이춘화(52, 여) 씨도 북한 회령세관의 횡포를 생각하면 아직도 분이 가시지 않는다고 말했다.

당장이라도 북한 세관원들에게 “네 놈들이 세관원이냐 도둑놈들이냐”고 욕이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북한에서 고생하는 친척들 생각하면서 꾹 참았다고 한다. 세관원들이 짐을 압수하고 입국을 거부해버리면 어디 하소연할 때도 없기 때문이다.

북한 세관의 극심한 갈취행위는 북한 내 만연한 비리와 부정부패 축소판이라 할 만하다. 북한 세관의 횡포는 주민들에게 전달돼야 할 식량과 의약품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다음은 이씨의 증언

지린성(吉林省〕룽징(龍井)시에 거주하는 이 씨는 지난해 12월 중순 북한 **시에 거주하는 친척을 방문하기 위해 통행증을 발급받았다. 북한과 접한 국경지대 주민들은 북한에서 온 편지로 친척 유무를 확인하고 신분증을 제출하면 쉽게 통행증을 발급 받을 수 있다. 유효기간은 한 달이다.

몇 년 만에 가는 친척 방문이라 식량이며, 옷가지, 의약품, 가전제품까지 생활에 요긴한 물건들을 두루두루 챙겼다. 대략 쌀과 밀가루, 술과 담배, 중고 칼라 텔레비전, 공책과 연필세트, 겨울 옷과 털장화, 먹는 항생제까지 마련했다. 짐은 북한 세관까지 트럭으로 운반한다.

당일 아침 트럭을 타고 회령세관으로 갔다. 먼저 중국 세관에서 짐 검사를 실시한다. 중국 세관은 이 씨의 짐을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북한에 있는 친척을 도우러 가는 길인데다 생필품 위주의 물건을 문제 삼을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단, 쌀만은 30%의 세금을 물려 사적인 유출에 제한을 가한다. 세금을 물고 나면 굳이 중국에서 사갈 필요가 없게 된다. 그러나 이것도 일반 짐 속에 분산해서 은닉하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세관 보위원, 입국도장 받는데 중국돈 200원 요구

중국 세관을 통과해 다리를 건너 북한으로 향하면 벌써부터 긴장이 된다. 무슨 트집을 잡아 횡포를 부릴지 알 수 없다. 질문에 조금이라도 우물우물 거리거나, 수상한 측면을 보이면 짐을 빼앗기고 바로 중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어디 하소연할 때도 없다.

이 씨는 세관검사실에 도착한 후 트럭에서 내려 검사실 안으로 짐을 옮겼다. 먼저 입국 여부를 심사하기 위해 정치검사를 실시한다. 정치검사를 실시하는 사무실에 들어가면 보위원이 앉아 있다. 독방에 책상을 두고 보위원과 마주 앉는다. 일종의 여권검사라고 보면 된다. 보위원은 여행의 목적과 대상, 친척이 있는가를 차례차례 묻는다.

입국 심사 규정은 알 수 없지만 그 판단은 전적으로 보위원이 알아서 하게 돼있기 때문에 말 그대로 보위원 말이 법이다. 무슨 전산망이 있거나 전화로 확인하는 것도 아니다. 보위원은 대충 통행증을 훑어 보더니 이 씨에게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북한에 있는 사람이 친척이라는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이 씨는 기가 찼다. 신분증과 친척이 보내온 편지를 보여줘도 소용이 없다. 보위원은 “친척도 없는데 무슨 일로 왔소. 돌아가오”라고 했다. 입국불가라는 것이다.

이 씨가 사정사정을 해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던 보위원은 방문 쪽을 한 번 바라보더니 큰 은혜나 베푸는 것처럼 벌금을 내면 보내주겠다고 했다. 벌금으로 중국돈 500원(한화 7만 5천원 정도)을 내라고 했다. 이 씨는 다시 하소연을 했다. 주위 사람들에게 빌려서 1000원을 들고 왔는데 절반을 내고 나면 어떻게 하냐고 통사정을 했다. 그럼 200원만 놓고 가라고 했다. 200원을 내주자 입국 도장을 찍어준다. 그 자리를 빠져 나오려 하자, 보위원이 “절대 이번 일을 내뱉지 말라”고 당부했다.

정치검사를 통과하고 다음은 가져온 짐을 검사한다. 몸검사 1명, 짐검사 1명, 가전이나 기계류 검사 1 명, 도합 3명이 함께 검사를 한다. 쌀 포대는 꼬챙이로 찔러보고, 짐이란 짐은 전부 다 풀러 보았다. 무슨 물건 구경에 신이 난 사람들 모양새다. 이 때 준비해온 술을 한 병씩 돌렸다. 분위기가 한층 좋아진다. 먼저 줘야 덜 뺏긴다는 것은 이 씨도 잘 알고 있다.

짐 검사를 하는 세관원들은 물건 도둑들이다. 별 트집을 잡아서 압수 품목이라고 가져가는 것도 있지만, 말하지 않고 슬쩍 호주머니에 담아가는 것도 꽤 있다. 이번에는 털 장화를 가져갔다. 이유가 가관이다. 털이 위생적으로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옷은 색깔이 문제가 있다고 했다. 황토색 잠바가 무슨 색깔에 문제가 있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그냥 넘겼다. 입만 아프고 상황만 복잡해진다.

항생제 약품 검사한다며 한 통씩 가져가

가져온 항생제도 한 통씩 가져갔다.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무슨 문제냐고 물어보니 ‘그건 알 바 없다’고 했다.

물건을 다 헤쳐 놓은 다음에 세금을 매긴다. 세금으로 중국돈 150원을 달라고 했다. 그리고 검사하는 도중에 마스크를 한 사람이 통 같은 것을 매고 들어와 이 씨와 물건에 약물을 몇 번 뿌리더니 위생 검사비라고 40원을 요구했다. 뭘 뿌리냐고 그랬더니 ‘닭병(조류독감)’이 문제라고 했다.

이때 주의해야 할 것은 백원을 내도 잔돈을 거슬러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냥 없다고 한다. 말도 하지 않다가 물어보면 잔돈이 없기 때문에 돌려줄 수 없다고 말한다. 짐 검사 할 때 10원짜리가 9장이 되지 않자 그냥 200원을 내니 역시 나머지를 돌려주지 않았다. 북한 세관을 통과할 때는 거스름 돈이 생기지 않도록 잔돈을 꼭 가지고 가야 한다.

여기서 사소한 것을 가지고 다툼을 벌이면 짐을 놔두고 북한으로 가야 한다. 서류를 꾸며서 돌려 보내면 그만이다. 세관원들에게 받치는 돈을 아끼려다 몇 년 동안 입국을 못할 수도 있다. 세관원들이 탐내는 것이 의약품과 옷가지다. 의약품은 가능하면 넉넉하게 준비해서 세관원들에게 줄 생각을 하고, 옷가지는 일시적으로 상태가 안 좋아 보이도록 해야 손을 대지 않는다.

이 씨는 정치검사와 짐검사를 마치고서야 밖에서 기다리는 친척을 만날 수가 있었다.

중국 옌지(延吉) = 김영진 특파원 kyj@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