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개인경작 식량도 국가에서 몰수중”

▲ 함북 무산의 뙈기밭 전경

북한당국이 가을 추수기를 맞아 개인경작지 수확물까지 걷어가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주목된다. 북한은 올초 개인경작지 수확물은 개인이 처리하도록 결정한 바 있으나, 추수기를 맞아 ‘국영농장 수확물’로 넘기며 개인수확을 통제하고 있는 것.

9월 24일 중국 싼허(三合)에서 만난 김미순(가명. 39세. 함북 부령군)씨는 함경북도 농촌지역의 가을수확 실태를 설명하면서 이같이 말하고, “이런 식으로 정책을 뒤집어 사람들을 우롱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봄에는 국가에서 배급을 못 주니까 비경작지에 각자 옥수수를 심어 먹고 살라고 하더니, 이제와서 국영농장에 바친다며 수확을 못하게 통제하고 있다. 회령에서는 자기가 농사지은 땅에서 옥수수 6개를 뜯었다고 한 세대가 추방당했고, 부령에서는 옥수수 한대를 베었다고 노동단련대로 끌려간 사람도 있다”

중국을 왕래하며 옷장사를 하고 있는 김씨는 9월 19일 회령세관을 통해 중국에 건너왔다고 했다.

김씨에 따르면 북한당국은 올초 “농사를 잘 지어 먹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3월부터 연령보장대상자들과 사회보장대상자 가족들에게 비경작지를 개간하라고 지시하고, 개간한 땅에 농사를 지으면 모두 농사 지은 사람들 몫으로 허락한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9월이 되자 갑자기 ‘국가의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옥수수 수확을 통제한다’는 지시가 내려오고, 지금은 자기가 농사지은 땅에 얼씬도 못하게 한다는 것.

이같은 북한당국의 정책변경은 지난 9월 이후 ‘배급제 재개’ 논란 및 식량의 국가수매 방침과 맞물려 주목되고 있다. 국영농장은 물론 개인 경작지 수확물까지 통제하면서 북한의 전체 수확물을 국가에서 완전 독점관리하는 체제로 돌입하는 게 아니냐는 의문을 낳고 있는 것. 북한은 과거 김일성 시대에도 뙈기밭 등 개인 수확물은 개인이 처분하는 정책을 견지해왔다.

또 최근 북한당국이 WFP 등 국제지원단체의 철수를 요구한 배경도 내부 정보의 유출을 원천차단하고 식량의 국가독점 통제를 강화하려는 일환으로 해석되고 있어 더욱 주목된다.

안전부 요원에 농장원까지 이중감시

김씨에 따르면 함경북도 농촌에서는 올 3월부터 배급을 받지 못하는 연령보장 및 사회보장 대상자들에게 비경작지를 개간하도록 지시받았다. 이들은 만 60세 이상의 노인과 군대 및 철도ㆍ항만 등 국가 기간산업에 종사하다 재해를 입은 사람들로서, 원래는 배급 대상자이지만 국가에서 배급을 주지 못하니까 개인 경작으로 먹고살라는 뜻.

“올해 봄 산림보호원이 땅 넓이를 측정해서 이들에게 개간지를 나눠주고 서류까지 꾸며줬다. 회령에 사는 우리 친정엄마의 경우, 전쟁에 참가한 ‘공로자’이기 때문에 하루에 700g씩 식량배급을 받게 되어 있다. 그러니까 한 달이면 3일을 제외하고 27일분의 식량 19kg를 받는 것이 원칙이다. 이런 식으로 계산해서 ‘이 정도 땅이면 배급받아야 할 1년치 옥수수를 수확할 수 있겠다’고 산림보호원이 판단해서 개간지를 나눠준 것이다. 땅을 지정해주면서 ‘여기에 농사를 심은 것은 모두 개인 몫’이라고 약속했다. 그리고 매달 찾아와 배급기표에 매달 19kg의 옥수수를 수령한 것처럼 기록도 했다”

그러나 9월 이후 당국의 방침이 갑자기 변했다.

“지금은 개간지의 옥수수 한 자루도 못 베게 한다. 주민 총회에서 듣기로는 몽땅 국영농장에 귀속된다고 했다. ‘옥수수 한대만 없어져도 책임을 지우겠다’며 집단농장의 농장원들을 뽑아 옥수수밭을 지키고 있다. 옥수수 밭에 콩도 같이 심는데, 콩만 걷어올 수 있다. 밭에 들어갔다 나오면 주머니까지 뒤진다. 마을 입구에서는 안전원들이 검사한다. 본보기를 보인다면서 부령군에서는 한 사람을 노동단련대에 보냈고, 친정엄마가 사는 회령에서는 한 세대를 추방했다고 들었다.”

다음은 김씨와의 일문일답.

-이번 방침은 중앙당 지시인가, 함경북도 도당의 방침인가?

“그건 자세히 모르겠다. 하지만 부령군, 회령시, 온성군에서 모두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

-자기 수확물을 빼앗긴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나?

“속으로 욕할 뿐이지 모두 체념하고 있다. 수확물을 빼앗긴 사람들은 모두 노인이나 남자가 세대주 역할을 못하는 집의 여성과 아이들이다. 우리 친정 엄마는 원래 나랑 오빠들이 식량과 생활을 도와주고 있었다. 사실 그거(수확물) 있으나 없으나 형편은 매한가지다. 그러나 노인네가 자기 손으로 자기 먹을 거라도 마련한다며 한여름 내내 산에 올라가 고생했던 것을 생각하면 분통이 터진다”

-농촌지역 분위기는 어떤가?

“아주 엄격하다. 여름까지도 100년만에 농사가 잘됐다고 모두들 좋아했는데, 9월부터 이렇게 긴장감이 조성되니까 농촌 사람들의 실망이 아주 크다”

-개간지 농작물은 누가 통제하나?

“농촌 당조직이 권한을 갖고 있다. 안전부 사람들도 감시에 나서고 집단농장에서 사람을 뽑아 산간 밭을 지킨다. 밭마다 중간중간에 감시 초소를 만들었다. 언제, 누가 걷어갈지는 아직 모른다”

장마당 식량값 떨어져 옥수수 200원까지

-장마당에서 쌀 판매를 통제한다는 소식을 알고 있나?

“공식적인 발표는 듣지 못했다. 그런데 장마당의 식량 장사꾼들 사이에서는 그런 소문이 있다. 하지만 아직 변화는 없다”

-장마당의 식량가격은 어떤가?

“내가 중국에 넘어오기 전에 회령시장에 가봤는데 쌀값이 많이 떨어졌다. 추석 직전에 한국쌀이 1kg에 800원이었다. 중국쌀이 700원쯤 했다. 옥수수 값이 엄청 싸져 무척 놀랐다. 옥수수 1kg에 200원이었다. 경제조치(2002년 7.1경제조치) 이후 가장 싼 가격인 것 같다. 8월 말에는 160원까지 떨어진 적도 있었다고 들었다”

-식량가격이 갑자기 떨어진 이유는 무엇인가?

“원래 9월이면 1년중 옥수수 가격이 가장 비싼 시기다. 사람들이 보관해놓은 식량을 다 먹고 새로 추수할 식량만 기다리고 있는 시기다. 그래서 식량장사꾼들은 7월부터 식량을 사재기 해서 모아 두었다가 9월 중순부터 장마당에 비싼 가격에 내 놓는다. 식량장사꾼들이 돈을 버는 때가 바로 9월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올해는 옥수수 값이 폭락해서 식량장사꾼들이 큰 손해를 봤다. 식량장사꾼들도 이해 못하는 괴상한 현상이다. 장마당에서는 ‘국가에서 지난번 한국에서 받은 쌀을 풀지 않고 보관하고 있다가, 식량가격이 가장 비싼 9월에 장마당에 풀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올해 9월에 식량 장사로 가장 큰 재미를 본 것은 국가’라는 이야기가 나돌고 있다”

-10월부터 공장노동자들과 부양가족에게 배급을 재개한다는 소식을 알고 있나?

“알고 있다. 내가 부령에서 출발하기 전에 들었다. 하지만 그건 지켜봐야 한다. 기대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 지금 조선(북한)에는 공장, 기업소의 70%가 가동을 하지 않고 있다. 생산을 하는 기업소야 700g씩 배급을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생산도 하지 않는 기업소에서 700g씩 배급을 줄 리가 있나? 대부분 사람들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어떻게 중국에 오게 되었나?

“두만강의 교두(국경 세관을 일컫는 말-편집자 주)를 왕래하면서 옷 장사를 한다. 이번에 통행증을 받아 회령을 거쳐 중국에 왔다”

한국제품 최고인기, 청바지는 단속 대상

-옷장사는 어떻게 하나?

“두만강의 교두에 나와 도매상들에게 옷을 산다. 1년에 2-3회씩 중국에 직접 나와서 옷을 사서 들어가기도 한다”

-어떤 옷들이 인기가 있나?

“제일 비싼 것은 한국, 미국 제품이다. 그 다음이 중국제품이다. 한국, 미국제품은 교두에서 다 상표를 뗀다. 그러나 개인들이 장마당에서 팔고 살 때는 상표를 다 본다. 물건의 질이 다르고 모양새도 다르기 때문이다. 상표 붙은 옷이 비싼 편이다. 입던 옷(중고)도 조선돈으로 3만원이 넘는다. 교두에서 상표를 떼고 나서 조선에 들어가면 상표 만드는 사람들에게 상표를 다시 붙여서 판다. 청진, 원산, 회령 등의 대도시 옷 소매상들은 국경에 나와서 한국, 미국 옷만 골라서 사가는 경우도 많다. 보통사람들은 중국 옷을 많이 사 입는다”

-옷 가격은 어느 정도인가?

“양말의 경우 제일 비싼 것이 한 켤레 1천2백원에 팔린다. 보통 양말은 6백-7백원, 아주 싼 양말은 3백원도 한다. 팬티는 제일 좋은 것이 3천원이 넘는다. 한국제품이다. 중국 팬티는 1천 2백원 정도 한다. 잠바는 제일 좋은 것, 상표가 붙은 것이 3만원 정도 하고 보통 중국제품이 2만원, 조선 생산품은 1만-1만5천원 정도다. 봄가을에 입는 바지는 좋은 것은 2만-2만5천 수준이다. 보통 중국제품은 1만 5천원이다. 조선 바지는 8천원 짜리도 있고 아주 싼 것은 3천원 짜리도 있다”

-사람들에게 알려진 유명한 상표가 있나?

“그런 것은 모른다. 특별한 상표를 알아보는 것은 아니고, 상표에 영어가 있으면 한국이나 미국 옷, 일어가 있으면 일본 옷, 중국어는 중국 옷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좋은 옷을 보면 다 상표가 붙어 있다. 젊은 사람들은 상표를 보고 산다.”

=젊은 사람들 중에 청바지를 입는 사람들이 있나?

“젊은 사람들은 청바지를 많이 좋아한다. 하지만 단속을 해서 못 입는다. 청바지는 미국것 아닌가? 큰 도시에서는 단속을 한다. 그런데 중소도시나 노동자구, 혹은 교두가 있는 국경도시에서는 청바지를 조금씩 입는다. 행사복이나 여행복으로는 입지 못하고 집에서 일할 때나 장마당에 다닐 때에 입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청바지를 자주 입는다. 나는 다리도 길어서 모양이 예쁘다”

평양시민 생활, 연변과 비슷

-평양에 가본 적 있나? 평양과 지방의 옷차림은 차이가 많나?

“올해 6월에 평양에 다녀왔는데 평양사람들은 연변사람들과 수준이 비슷하다. 조선에서는 외국에 나가는 사람의 60%를 평양에서 뽑는다. 평양 사람들의 생활 수준을 높이라고 ‘장군님’이 지시했다. 지방에서 뽑히는 사람들은 모두 노동력을 수출하는 사람들이다. 평양과 지방의 수준 차이를 보고 나도 깜짝 놀랐다”

-함경북도에 살면 평양에 가는 것이 어렵지 않나? 평양에 친척이 있나?

“함경북도처럼 먼 거리에 사는 사람은 평양에 사는 친척들이 동의서를 보내줘야 갈 수 있다. 평양에 가려면 증명서를 떼서 가야 하는데 통행증명서에 평양시의 승인번호가 필요하다. 시간도 많이 걸린다. 나처럼 친척이 없는 사람이 평양에 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돈을 주고 승인번호를 사서 내 이름을 올리는 것이다.

두 번째는 사리원, 순천, 평성 등 평양을 지나는 지역의 통행증을 끊어 기차를 탄 다음 평양역에서 내리는 것이다. 평양을 지나는 철길은 내려가든 올라가든 하나밖에 없으니까 평양근방의 통행증을 갖고 있으면 기차가 평양에 들어갈 때 ‘평양수도보위대’의 검문을 통과할 수 있다. 그 다음 평양역에 내리는 것이다. 평양역을 빠져나갈 때 다시 군대가 검문을 하는데 이때 검문소를 통과시켜줄 수 있는 사람들에게 돈을 주고 연결해서 평양 시내에 들어간다. 일단 들어가면 평양에서 나오는 것은 검문하지 않는다. 그래서 인맥이 있거나 돈을 들이면 평양에 들어갈 수 있다”

중국 싼허(三合)=김영진 특파원 kyj@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