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주재 북한 무역일꾼들이 동요하고 있다

해외에 주재하면서 수출입과 투자 유치 사업을 진행해온 북한 무역상사원들이 천안함 사태와 김정일 방중을 경과하면서 대외 여건 악화에 따른 실적 부진, 본국의 과도한 현금 송금 요구, 후계체제 불안 등으로 크게 동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0년대 초반부터 중국 선양(瀋陽)에 장기 체류하고 있는 북한 무역일꾼 정모 씨(50대). 그는 북한광물 수출 사업에 손을 대면서 북한 당국으로부터 실력을 인정 받아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그에게서 여유를 찾아보기 힘들다. 부쩍 담배가 늘었고 투자자에 대한 정보를 물어오는 일도 많아졌다. 과거 술자리에서 보여주던 ‘위대한 장군님이 가는 길은 승리뿐이다’라는 너스레도 떨지 않았다.


그는 최근 사업가로 신분을 소개한 기자를 만나자 마자 연거푸 “최근 (북중무역) 상황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김정은과 관련한 민감한 발언도 거침이 없었다.


정 씨는 “장군님이 중국을 방문하고 돌아갔지만 현물을 주고 받는 직접 거래를 제외하고는 중국의 지원이나 투자 약속이 시원치 않았다”면서 “이를 타개 하기 위해 무역사업소를 대상으로 투자유치나 상납금을 확대하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당국이 실적이 저조한 무역사업소를 통폐합하겠다는 엄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씨에 따르면 당장 몇 천불이라도 마련해 평양에 보내 분위기를 살피고 향후 큰 규모의 실적을 도모해야 할 형편이다. 그는 평양에 있는 간부에게 보낼 2천불을 먼저 마련하고 이달 내로 급히 평양을 다녀올 계획이다.


그는 작년 화폐개혁 실패가 북한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중국측 대방(무역업자)들이 북한 내부에 대해 불안감을 표출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도 작년에는 현상유지를 했지만 올해 들어서는 투자 유치 건수나 매출액 면에서 부진이 계속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정 씨는 “남조선에 수출하던 해산물 루트도 막히면서 이것을 중국에서 무조건 소화하라고 지시가 내려왔다. 품질은 좋지만 당장 판로를 만들어내려면 덤핑으로 가야 한다. 그러면 이전보다 이익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데 이걸 우리한테 보상하라고 하니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 씨는 북한으로 돌아갈 생각도 있지만 아내의 반대가 극심하다. 그의 아내는 우선 첫째 아들의 자식 교육을 위해서라도 무조건 중국에 남아야 한다고 말했다. 아직 평양에 남아 있는 둘째 딸을 불러낼 고민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짐을 싸서 북한으로 돌아가자는 말에 기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 씨는 “중국이나 해외에서 잔뼈가 굵고 생존력이 뛰어나다고 자부해온 무역일꾼 조차도 최근에는 충성자금 때문에 걱정이 많은 눈치”라면서 “실력이 안 되면 배경이 중요하기 때문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 핵심 라인을 찾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베이징에서 경공업품 수입 사업을 하고 있는 북한인 강모 씨(50대)도 평소 차분한 성격과 달리 뭔가에 쫓기는 모습이다. 그는 계열사 상사원을 만나고 오는 길에 잠시 선양에 들렀다. 그는 장사에 정도(正道)가 없다며 닥치는 대로 장사를 하면서 수완을 발휘했다. 


그는 만수대의사당에 에어컨설비와 군부에 직물 원단을 납품하고 꽤 많은 돈을 번 것으로 중국 주재 상사원 사이에 이름이 알려져 있다.  


그는 김정남 계열로 분류돼 비교적 안정적으로 사업을 유지해왔다. 그는 베이징에서 10년 넘게 사업을 해오면서 실적을 쌓아 현재는 조양공원 인근 고급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 주위에서는 그가 자식복도 있어 아들이 공부를 잘해 영국 유학도 다녀왔다고 부러워 한다. 


그런 강 씨도 “평양에서 충성자금을 늘려야 한다는 지시가 계속 내려오고 있다”면서 “해외에 거주하면서 돈을 벌기 위해서는 상급 기관의 보호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충성자금 명의로 그 실적을 보여줘야 하는데 최근에는 그 액수가 두 세배로 늘어나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고 말했다.


북한의 대외투자 창구인 조선대풍국제투자그룹(대풍그룹)은 2008년 1월부터 100억 달러 규모의 국립개발은행 자본금 유치계획을 세웠지만 유치 실적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불법활동 및 무기 판매 단속, 김정일 비자금 관련 계좌 감시가 강화 되면서 외화난이 가중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선양에 거주하는 북한 무역업자들 사이에서는 “해외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제 김정은이 생명줄이라는 말이 돌고 있다”면서 “사업소 책임자들이 평양에 들어가면 몇 천 달러씩 들고 눈에 띄지 않는 ‘보호자(김정은 측근)’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