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4월 방북, ‘태양절 축하사절단’ 중 한명으로 전락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4월 방북과 관련해 그 방문시점을 놓고 시비가 분분하다.

김 전 대통령 측은 ‘따뜻한 4월에 방북 하겠다’는 DJ의 ‘소신’에 따라 4월 중ㆍ하순으로 가닥을 잡았고, 북한당국도 4월에 올 것을 요구하는 메시지를 보내오고 있다.

이에 대해 남한 정치권에서는 논란이 한창이다. 일각에서는 DJ의 방북시점인 4월 중ㆍ하순이 김일성의 생일인 4월15일 무렵이어서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민주당 측에서도 ‘지방선거 이후로 미뤄졌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의견은 대체로 DJ의 방북이 남한의 정치지형에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를 떠나 북한이 민족최대의 명절로 쇠는 ‘태양절’만은 피해가는 것이 정치인의 지체 있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DJ 4월 방북, 北 선전에 휘말릴 것

가장 큰 우려는 북한당국이 DJ 방북을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려 한다는 것이다.

지난 4박 5일 동안 북한을 방문했던 열린당 임채정 의원을 비롯한 남측 의원들은 “북한이 4월에 김 전 대통령이 방북할 것을 희망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말은 DJ의 방북을 북한당국이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하겠다는 뜻을 충분히 시사하고 있다.

북한당국은 DJ의 방북을 ‘남조선 전 대통령이 태양절을 축하하기 위해 장군님을 찾아 왔다’고 선전할 수 있다. 이렇게 단정할 수 있는 근거는 북한은 ‘우리민족끼리’와 ‘민족공조’를 ‘김일성 민족으로의 민족화합’이라는 구색에 맞추기 때문이다.

또 DJ가 4월에 북한을 방문하면 DJ는 남측에서 온 ‘귀빈 대접’을 받는 것이 아니라, 김일성 생일을 축하하러 온 이른바 전세계 ‘태양절 축하사절단 중 한 명’으로 격하된다. 이것은 북한당국이 늘 해오던 남조선 깎아내리기 수법이다.

북한 특유의 외국 국가원수 환영행사도 이 시기만은 소원해진다. 2000년 6월처럼 주민들이 연도에 나오지 못할 것은 물론, 누가 온다고 알리는 현수막 하나 붙일 자리가 없을 만큼 거리가 김일성 찬양일색이 되는 시기가 4월이다. 이렇게 되면 DJ는 시쳇말로 ‘태양절 축하사절단’에 ‘꼽사리’끼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4월에 ‘태양절’ 정치행사 집중

북한주민들은 해마다 4월 초부터 곳곳에 김일성을 찬양하는 구호와 현수막을 내걸고 김일성 동상에 올릴 꽃을 가꾸고, ‘만경대상 체육경기’ ‘충성의 편지 이어달리기’ 등 정치행사에 몰입한다.

4월 중순에는 노동당, 중앙기관, 지방의 공장조차 ‘위대한 수령님의 탄생 94돌 기념보고회’가 열리고, 명절 당일에는 주민들이 만수대동상과 금수산기념궁전의 김일성을 참배하기 위해 몰려간다. 또 15일이 지나면 충성을 다짐하는 행사가 이어진다.

지난 6.15정상회담 때도 김 전 대통령에게 김일성 시신 참배를 권유했던 북한이 이번이라고 참배를 권유하지 않는다는 담보는 없다. 만일 DJ가 북한측의 의견을 따라 금수산 궁전에 참배를 간다면 북한당국의 입장에서는 최고의 선전효과를 얻는다.

또 반대로 남한을 의식해 참배를 거절한다면 ‘민족의 태양’에게 절도 하지 않고 자리도 빛내주지 않는 ‘늙은 손님’ 정도로 냉대받을 수 있다.

물론 북한당국이 행사분위기 반전을 위해 DJ를 큰 행사에 초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94년 김일성이 사망한 이후에도 캄보디아의 시하누크는 거의 매년 빠짐없이 2.16(김정일 생일)과 4.15(김일성 생일)에 북한을 찾곤 했다. 그때마다 북한은 시하누크 국왕을 김정일이 참석한 행사장 주석단에 배석시키고, 예술공연 관람 등 VIP 대우를 해주었다.

그러나 시하누크는 북한을 방문할 때마다 북한당국이 안내하는대로 김일성 동상에 꽃도 드리고 절도 했다. 한마디로 명절 구색에 맞춰줘야 주인이 손님을 반긴다는 소리다.

DJ-北 공동합작, 4월 방북

북한이 4월에 DJ방북을 추진하는 배경에는 대략 두 가지의 목적이 있다고 볼 수 있다.

6.15공동선언의 주역인 DJ를 불러들여 ‘우리민족끼리’가 잘 되고 있다는 사실을 남북 주민들에게 인식시키고, 향후 남한에서 있을 선거에서 현 정권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한 것이다.

또 열차를 타고 가는 DJ를 보며 ‘경의선이 뚫리고, 진정한 민족화해와 민족공조의 시대가 열렸다’고 선전하는 것, 이것이 DJ측과 북한의 공동합작품인 ‘4월 방북’이 갖는 의미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4월에 방북하는 DJ는 자신도 모르는새 북한당국의 선전에 철저히 이용될 가능성이 높다.

한영진 기자(평양출신 2002년 입국) hyj@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