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올림픽유치와 개최

이번 시간에는 88서울올림픽 개최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88서울올림픽의 최초 구상은 박종규 대한체육회장으로부터 시작됩니다.
1978년 개최된 세계사격선수권대회는 당시 남한이 최초로 유치한 세계 구급 스포츠 대회였는데요. 변변한 경기장이 없었던 남한 체육계에 이 대회는 큰 자극제가 됩니다.

이후 1979년 2월 대한체육회장 겸 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으로 취임한 박종규는 스포츠 외교력을 강화하기 위해 대한올림픽위원회 내에 전문위원실을 설치, 올림픽유치에 대한 구상을 구체화하기 시작하면서 3월에는 제24회 올림픽 서울유치건의안을 문교부에 제출합니다.

당시 남한의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상황이 매우 불안했고, 분단국가라는 현실 또한 올림픽 유치에 불리한 상황이었는데요. 올림픽 유치건의안을 받은 문교부는 서울올림픽유치에 필요한 경기장과 숙박시설, 운송수단을 비롯하여 대회유치에 따른 특실 및 개최가능성 등에 대한 구체적인 보완자료를 제출하도록 대한올림픽위원회에 요구하는 한편, 경제기획원, 외무부 등 관계기관의 의견도 청취합니다.
이에 따라 국민체육진흥심의위원회는 1979년 9월 3일 서면결의로 제 24회 올림픽 서울 유치계획을 의결했고요. 9월 21일 박정희 대통령의 재가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18일 뒤 ‘10・26사태’가 일어나면서 올림픽 유치운동은 잠잠해집니다. 서울올림픽 유치의 결단을 내린 박정희 대통령이 타계했고 이어 후임인 최규하 내각은 올림픽 유치를 단념하겠다는 공식발표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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