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조치, 살인적 인플레…쌀값 58배 상승

2002년 7월 1일, 북한은 붕괴된 국가계획경제 회복, 암시장 극복 , 당국의 재정부담 경감 등을 목표로 ‘7·1 경제관리개선조치(이하 7·1조치)’를 전격 선포했다.

7·1조치는 임금과 국정가격의 현실화뿐만 아니라 공장․기업소의 인센티브제도와 독립채산제를 확대시켰으며, 북한사회가 밑바닥부터 ‘시장화’ 되는 결정적 단초를 제공했다.

하지만 정작 북한주민들 사이에서는 7·1조치 이후 북한내부의 변화에 대한 평가가 서로 엇갈리고 있다.

우선 지난 6년 동안 살인적인 인플레이션과 부정부패의 확산 때문에 북한경제는 더욱 어려워졌다는 지적이다.

중국 옌지(延吉)에서 만난 북한 여행자 장 모 씨는 “7·1조치 때 쌀 1kg 국정가격을 44원으로 인상했지만 지금(6월 초)은 쌀 1kg에 북한 돈 2천5백원”이라며 “갈수록 화폐가치가 계속 떨어져 먹고사는 것이 힘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단순 비교상 지난 6년간 북한의 시장 쌀 가격은 무려 58배나 인상된 셈이다. 옥수수 가격은 현재 1kg당 북한 돈 1천 5백원 전후로 2002년 국정가격 33원에서 45배 정도 폭등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장 씨는 “물가는 계속 오르고 있지만, 노동자들의 임금은 6년 전과 똑같다”며 “월급이랍시고 한 달에 2천원 받아야 쌀 1kg도 못 사지만 그나마 그 돈이라도 주는 공장은 형편이 아주 좋은 편”이라고 덧붙였다.

장 씨는 “돈 가치가 계속 하락하니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은 늘 생활이 힘들다”며 “부자들의 경우 돈이 생기면 달러나 인민폐로 바꿔 모아놓거나 식량 사재기를 한다”고 설명했다.

함경북도 청진에서 온 여행자 강 모 씨는 ‘7·1조치’ 이후 간부들의 부정부패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강 씨는 “예전에는 법관(보위부, 보안서, 검찰 일꾼)들이 죄지은 사람들만 쫒아 다니느라 국가배급만 갖고 먹고 살아야 했는데, 이제는 장사하는 사람들만 노리고 다니니 먹고 사는 일이 훨씬 쉬워졌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에서 예전에 비해 장사하는 것을 풀어주게 되니 이제는 법관들이 장사꾼들을 등쳐먹는 일이 많아졌다”며 “평백성들은 나라 법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니 법관들이 불법이라고 하면 불법인줄 알고 뇌물을 고해야 된다”고 말했다.

반면, 7·1조치 이후 주민들의 생존력이 높아졌고, 국제사회의 흐름을 이해하려는 간부들이 늘어났다는 평가도 뒤따른다.

중국 단둥(丹東)에서 만난 북한 B무역회사 파견 일꾼 최 모 씨는 “국가에서 물건 가격과 임금을 대폭 올리라고 지시하긴 했지만 정작 ‘공장을 어떻게 돌릴 것인가’에 대한 지침은 없었다”며 “국가에서는 ‘임금을 올려라, 배급을 더 줘라’고 지침을 내리지만 정작 공장들을 다시 돌리기 위한 원료나 자금은 하나도 내려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최 씨는 “지금 장마당에 나가면 진열되어 있는 공업품은 모두 중국제품”이라며 “중국에서 물건 들여와 팔려는 사람만 많으니 물가는 자꾸 오르고 생산은 계속 후퇴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최 씨는 “그래도 7·1조치 이후 무역일꾼들이 중국에 나오는 일도 상대적으로 쉬워졌고, 중국의 투자 대방(사업 파트너)을 잡는 일도 더 많아졌다”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자금’이지만 이제는 외부사회에 대한 ‘정보’와 ‘인맥’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할 만큼 북한 사람들도 머리가 텄다”고 강조했다.

평양에서 온 여행자 김 모 씨도 “이제 백성들은 스스로 먹고 사는 법을 다 깨우쳤다”며 “예전에는 출신성분이 나쁜 사람들은 국가배급이나 타 먹으면서 어떻게 하면 적게 일할까만 궁리했지만 이제는 한푼이라도 더 벌어 재산도 늘리고 자식들도 더 가르치려고 발버둥 친다”고 말했다.

김 씨는 “지금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할 게 없으면 나가서 협잡이라도 쳐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돈에 대한 집착이 강해졌다”며 “우리도 개방만 하면 중국 부럽지 않게 잘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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