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북핵위기’ 최고의 현장 기록

“전생(前生)이 궁금하면 금생(今生)을 보고, 금생을 어떻게 사는지 알면 내세(來世)가 보인다.”

이 말은 과거의 행적이 현재의 결과로 나타나고, 오늘을 어떻게 사는가에 따라 미래가 결정된다는 말이다. 즉, 과거의 결과로서의 현재를 제대로 분석하면 미래에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럼 점에서 오늘날의 ‘북핵문제’도, 2차 북핵위기를 풀기 위한 해법으로 1차 북핵위기부터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북핵위기의 전말-벼랑 끝의 북미협상>(모음북스 刊)은 ‘북핵의 전생을 통해 금생을 알고자 하는 사람에게’ 권할 만한 책이다.

1차 북핵위기 ‘최전방’ 전사들의 회고록

이 책은 일단 저자들의 면면부터 화려하다. 1993년~1994년간 제1차 북핵위기를 풀어낸 미북협상의 주연인 로버트 갈루치(Robert L. Gallucci) 당시 미국무부 정치군사담당차관보 겸 북핵전담대사, 당시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간부로 북핵문제를 전담한 대니얼 폰먼(Daniel B Poneman), 1994년 제네바 합의 이행책임을 졌던 국무부관리 조엘 위트(Joel S. Wit)가 공동 저자다.

저자들은 자신들의 경험과 메모뿐만 아니라 미국의 공식문서도 참고하고 또 많은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당시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아마 북핵문제와 관련해 이처럼 당시 미국 정가의 분위기를 상세하게 정리한 책은 없을 것이다.

‘최전방’에 서 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이기에, 구체적일뿐더러 흥미진진하다. 이 책은 1993년 3월부터 1995년 7월까지를 월별로 묶어 미국, 한국, 북한, 일본, 독일, 스위스 등을 넘나들며 펼치는 외교전을 마치 영화를 관람하듯이 볼 수 있다.

더구나 이 책은 북핵문제의 구조, 북한의 논리, 미국의 논리, 외교협상의 논리와 과정, 그것의 국내정치적 맥락 등에 관한 모든 것을 담고 있다. 현재의 위기에 대한 분석과 처방도 포함돼 있다.

미국 국내정치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1차 북핵위기

“강대국의 외교는 국내정치적 문제가 많은 영향을 미치고 약소국의 외교는 국제정치적 문제가 많은 영향을 미친다.”

이 책은 정치외교학의 이러한 상식이 북한과의 외교에서도 그대로 통용됨을 보여준다.

책을 통해 우리는 1차 북핵위기 당시에도 북한이 경수로를 고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 정부의 판단은 북한이 핵에너지 프로그램을 보유하는 한 확산의 위험이 상존할 것이고, 북한이 원하는 것은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값싸고 효율적인 방법이 아닌 ‘핵발전소 건설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모종의 정치적 이득’이란 것이었다.

미국은 이것을 알고 있었지만 결국 대북 경수로 지원을 골자로 하는 제네바 합의에 서명을 하게 된다. 왜 그랬을까?

1994년 6월 13일 북한이 IAEA 탈퇴를 선언하자 미국은 ▲‘오시라크 옵션’(기습공격) ▲신(新)교민소개작전 ▲주한미군증강 3대 방안 등을 계획했으나 지미 카터의 갑작스런 등장으로 극으로 치닫던 상황은 제네바 합의로 이어진다. 이 과정은 때론 손에 땀을 쥐게 하면서, 한편으론 너무 싱겁게(?) 끝난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돈키호테와 같은 지미 카터의 행동, 즉 국내정치적인 역학관계의 결과가 예상치 않은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평화적 핵이용 불가’의 이유도 알 수 있을 것

이 책은 특히 1차 북핵위기를 풀어낸 ‘제네바 합의’를 미국이 먼저 어겼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게도 조금이나마 해명이 될 듯싶다.

제네바 합의가 있은 다음달 미국에선 선거가 치러졌고 당시 야당인 공화당이 상하 양원을 차지함으로써 클린턴 정부는 지지기반이 약화됐다. 이 때문에 북한에 지원할 50만 톤의 중유공급을 위해 필요한 예산은 5천만 달러인데 의회에 3천만 달러만 요청하게 된다.

또한 한국이 대북 경수로의 형태를 ‘한국형’으로 명기할 것을 주장하는 바람에 경수로 공사의 진척을 더디게 만들었다.

한편 당시 한국정부가 미국에게 끌려 다녔다고 인식하는 이들에게도 이 책은 다른 측면을 보여준다. 미국이 한국을 위한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의 입장을 배제하거나 무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한국의 입김이 미국의 정책에 많은 변화를 준 사례를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미국이 한국의 입장을 반영하지 않은 것은 두 번뿐이었다. 1994년 10월 제네바 합의 막판에 한국은 특별사찰을 연기하는 문제에 반대했지만, 일단 ‘북한의 플로토늄 생산을 막는다’는 보다 긴급한 문제 때문에 미국은 그 반대를 무시했다. 또 1995년 경수로 공급협정 문안에 한국의 뜻대로 ‘한국형’을 명기하지 않은 것 등이다. 그 밖의 정책 결정 과정은 한국의 의중을 반영했다.

저자들은 미국이 대북정책을 수행함에 있어 한국의 지지가 필수적임을 강조하며 한미동맹 강화를 주장한다.

이들은 제네바 합의가 1차 북핵위기를 극복한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자평한다. 그래서 이 합의에 회의적인 사람들에게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최악의 상황인 제2차 한국전쟁으로 치닫게 됐을 것은 생각지 않는가’라고 반문한다. 제네바 합의에서 경수로를 건설해 주겠다던 미국이 왜 지금은 ‘평화적 핵이용’도 불허하겠다는 것인지도 이 책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9월 12일로 시작되는 주에 휴회중인 제4차 6자회담이 재개된다고 한다. 향후 북핵문제와 해결전망에 관심이 많은 이들에게 이 책을 적극 권한다.

강창서 대학생 인턴기자 kcs@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