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후세인처럼 김정은 독재정권 결국 붕괴될 것”

“분단 시절 동독 라디오·TV에서는 연일 현실과는 동떨어진 장밋빛 모습만을 보여줬다. 당국의 과장된 정책과 거짓된 프로파간다(선전)에 대항하기 위해 우리는 진실을 전달할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동독 출신인 반(反)체제 운동가로 활동했던 한 인사에게서 ‘동독 실상을 녹음이나 촬영해줄 수 있느냐’는 요청을 지인을 통해 받았다. 당연히 가능하다고 답했다. 동독의 실제 상황을 직접 촬영해 서독 라디오나 TV 방송국 측에 전달하는 역사적인 행보는 그렇게 시작됐다.”  

통독(統獨) 전 동독에서 민주화 운동가로 활동했던 지그베르트 셰프케(Siegbert Schefke) 중부독일방송(MDR) 기자가 독일 현지에서 데일리NK 기획취재팀에게 전한 그의 실화다. 그는 또 한 명의 당시 동독 출신 민주화 운동가이며, 현(現) 롤란트 얀(Roland Jahn) 슈타지 문서 보관소장과 협력하며 동독 당국의 독재에 맞서 싸웠다.

셰프케 기자는 “얀 소장과 개인적 친분은 있었던 건 아니었다. 비밀리에 암어(暗語)를 사용해서 매일 정해진 시간에 통화를 했던 게 전부였다”면서 “(다소 위험했지만) 나의 업무는 당시 매우 특별했다. 동독에서 서독으로 동독 상황을 담은 영상을 보내면, 서독에서 이를 다시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동독으로 보냈다”고 소회했다.



베를린에 위치한 눈물의 궁전(Tränenpalast)에 비치되어 있는 동독 민주화 운동가들이 사용했던 녹음기와 사진기의 모습. /사진=데일리NK

이렇게 동독 민주화 운동가에 의해 제작된 동독 현실을 담은 영상과 녹음 파일은 서독 미디어를 통해 동서독 전역에 송출됐고, 동독 주민들은 미디어에서 전한 정보를 통해 동독 당국에서 감춰왔던 현실과 동독 정권의 허구성을 절감하게 됐다. 현재 남한의 대북방송을 통해 북한의 실상을 전해 듣고 있는 북한 주민들의 상황과 같다.

이러한 서독 미디어를 통해 동독에 전달된 1989년 동독에서 일어났던 ‘평화혁명’ 시위 장면은 일반 동독 주민들에게 큰 용기를 북돋아줬고, 이는 독일 통일의 원동력이 됐다.

이에 대해 얀 소장은 “훗날 동독 주민들은 ‘시위에 나갈 수 있는 용기를 줬던 건 바로 그 화면이었다’고 입을 모았다”면서 “젊은 동독인들은 삶에 적응해가면서 역사의 아픔(분단)에 공감하기 어려운 세대일 수도 있는데, (이 같은 미디어를 통해) 많은 용기를 갖고 동독의 자유를 외쳤다”고 회고했다.

남한의 대북방송 관련 그는 “북한 정권이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상황을 이해하고, 이를 열기 위한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면서 “대북방송을 지속하면서 체제에 작은 균열이라도 일으키는 것 역시 한 방법이지만, 더 큰 (정보전달)구멍을 만드는 노력도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동독의 민주화에 지대한 역할을 담당했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 롤란트 얀 슈타지 문서보관소장(左)과 지그베르트 셰프케 중부독일방송 기자(右)의 모습. /사진=데일리NK

“끈질긴 정보 유입, 北 김정은 독재 무너뜨릴 것”

‘미디어를 통한 동독의 민주화’에 대한 신념으로 시작한 일은 종국에는 ‘통일’이라는 결실을 이뤘지만 그 과정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직접적으로 영상을 찍어야 할 쉐프케 기자는 카메라 등 기계를 제대로 다룰 수 없었고, 이에 따라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야만 했다.

특히 동독 정부의 감시와 통제를 피해야 했다. 동독 내에서 셰프케 기자와 같은 협조자가 있다는 것을 동독 슈타지(비밀경찰)에서 이미 파악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수감될 수 있다는, 또 모진 고문을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도 이들 활동의 걸림돌이었다.

당시 동독 형법에 따르면, 이 같은 행위는 최고 12년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는 범죄였다. 실제 슈타지의 감시망에 포착돼 이와 같은 처벌을 받은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어떤 억압과 탄압에도 그들의 혁명에 대한 희망과 통일에 대한 열망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얀 소장은 “서독 미디어를 눈엣가시처럼 여긴 동독 당국이 처벌을 통해 미디어의 파급력을 막아보려 했으나 이마저도 역부족이었다”면서 “수많은 젊은 동독인들이 위험을 감수해야 했던 이 일은 역사를 통해 그 가치가 증명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셰프케 기자는 “(위험 요소는 생각지 않고) 동독에서 정보를 어떻게 받을 수 있을지 그 경로만을 고민했다”면서 “서독의 인쇄물을 동독으로 들여오는 방법으로 라디오가 동독 주민들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것만 생각한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어떤 독재 정권이냐에 따라 다른 방법으로 싸워야 한다”면서 “모든 독재는 언젠가 반드시 종말하기 마련이다. 히틀러가 그랬고, 사담 후세인이 그랬다. 김정은의 독재도 언젠가 끝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드레스덴에 위치한 슈타지 감옥 모습. 현재는 박물관으로 탈바꿈되어, 당시 민주화 운동가들이 어떻게 고난을 당했는지에 대해 널리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사진=데일리NK

“생생한 北내부 소식 보도로 주민 신뢰 쌓으면 北민주화 가능”

때문에 동독 출신 민주화 운동가들은 북한 민주화를 위해 북한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소식을 다시 북으로 전하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다고 제언했다. 객관적인 사실 보도를 통해 대북 방송의 신뢰성을 확보하다 보면 북한 주민의 의식 변화를 꾀할 수 있다는 것.

또한 북한과 한국을 동시에 경험한 탈북 기자의 육성도 북한 주민을 움직일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셰프케 기자는 “탈북자들이 직접 라디오 방송을 녹음해 한국에서 북한으로 다시 보낸다면 훨씬 효과적일 것”이라면서 “북한에서 오는 리포트들을 다시 북한으로 전달할 수 있다면 (대북) 방송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신뢰도도 훨씬 높아질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삐라(전단)을 많이 날리기도 어렵고, 몇 만 개의 핸드폰을 건네주는 것도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라디오를 통해) 북한 주민들에게 정보를 전하려고 하는 건 저널리스트로서 중요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얀 소장도 “탈북자들이 한국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전해주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의 네트워크를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면서 “(탈북자들은) 지금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북한 주민에 무언가를 전해줄 수 있는) 작은 기회들을 잘 활용해주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본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 지원을 받아 작성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