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은-김정일 합의, ‘윈-윈’ 할수 있나?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김정일과의 극적인 만남을 통해 대북관광 재개 등 5개 분야를 합의했다. 2박3일에서 7박8일로 체류일정을 연기하면서까지 끈질기게 김정일과의 면담을 고대했던 현 회장의 ‘배수진’이 일단 성과를 거둔 셈이다.

현대그룹으로선 금강산·개성관광 중단으로 막대한 매출 손실을 입고 있는 현대아산의 회생을 위해 북한의 절대 권력자 김정일의 ‘메시지’가 필요했다. 관광 재개를 위해선 정부와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명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결국 현 회장은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김정일의 입장에서도 이번 현 회장과의 면담을 통해 일정한 ‘실익’과 ‘명분’을 챙길 수 있게 됐다.

우선 남북관계를 급랭시켰던 지난해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과 일단 개성공단 및 관광에 대한 일방적인 차단 조치 등을 원상회복시킴으로써 김정일의 ‘통 큰’ 정치적 결단의 선전효과를 누리게 됐다.

또 장거리 로켓발사와 핵실험 등에 따른 제재로 고립이 심화되는 현 상황을 모면할 수 있는 일종의 돌파구’도 마련했다. 남북관계 개선의지를 보임으로써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의 예봉을 무디게 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북한은 ▲추석 이산가족 상봉 ▲남북간 육로통행 원상회복 ▲빠른 시일 내 금강산 관광재개 ▲개성관광 재개 ▲백두산 관광 실시 등 5개항의 교류 사업에 합의함에 따라 악화일로의 남북관계 개선의 ‘공’을 일단 남한 정부에 떠넘기게 됐다.

향후 남북 당국간 협의 등을 거쳐야 하겠지만 결과에 따라 경제적인 보상도 기대할 수 있다. 일각에선 현대그룹이 김정일의 ‘선물’에 따라 민간 대북지원 단체 등을 통해 ‘대가’를 약속했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이밖에 내부 체제결속과 경제상황 등에 따라 정치군사적으로는 긴장국면을 이어가고 경제적으로만 화해 조치를 취한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김연수 국방대학교 교수는 “지금 북한은 150일 전투가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는데 성과가 기대되지 않는 상황”이라며 “따라서 현대나 이명박 정부의 대북지원이 절실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어쨌든 앞으로 넘어야 할 산들이 많다. 먼저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해서는 고 박왕자씨 피살사건에 대한 남북간 입장차 해소가 필요하다. 우리 정부는 북측의 사과와 진상규명, 관광객 신변안전을 위한 제도적 보장이 이뤄져야 관광을 재개할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금강산관광 재개 문제는 전제조건들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논의해봐야 한다”면서 “원칙과 유연함 사이에서 논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추석을 맞아 금강산에서 이산가족 상봉을 진행하기로 한 것도 적십자 채널을 통한 남북 당국간 협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현재 남북 적십자 회담은 1년 반 넘게 중단된 상태다. 정부 내에서는 현대그룹이 합의할 수 있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개성관광과 남북간 육로통행 정상화는 북한이 의지를 가지고 있다면 당장에라도 실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다만 북측이 개성공업지구 사업을 활성화하겠다고 했지만 개성공단 임금과 토지임대료 문제 등에 대한 남북간 이견차가 워낙 커 추후 합의 과정이 요구된다.

때문에 정부도 현대와 북측의 합의사항에 대해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현정은 회장이 정부의 특사 자격이 아니라 개인 자격으로 방북한 것”이라며 “현 회장이 귀환해서 자세한 사항을 보고받은 뒤에 정부의 입장을 표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 일각에선 이번 합의로 남북 당국간 접촉이 재개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는 긍정적 평가도 나온다. 다만 장거리 로켓발사와 핵실험 이후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보조를 맞추고 있는 상황에서 남북관계의 급진전을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시각이 뒤따른다.

북한의 군사 도발에 따른 남북관계 악화, ‘800 연안호’ 억류 등으로 인한 좋지 않은 국민들의 대북인식도 고려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북한의 도발행위를 김정일이 현대그룹에 준 ‘선물’로 해소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정부 소식통은 “개성공단 근로자 유씨를 지난 13일 풀어준 데 이어 연안호 선원 송환 조치를 취한다고는 하지만 냉정히 보면 원상회복 수준에 불과한 것 아니냐”며 “북한의 나쁜 행동에 보상을 주는 건 생각하기 힘든 문제”라고 말했다.

대북 제재국면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의미다. 실제 정부가 이번 현 회장 방북을 ‘사업자’ 차원의 방북으로 당초 규정한 것도 이 같은 상황이 고려된 것으로 해석된다.

유호열 고려대 교수는 “현대그룹과 북측의 합의로 현대아산은 회생의 돌파구를 마련한 셈”이라면서도 “금강산 관광 재개나 이산가족 상봉 등 합의사항에 대한 북측의 추가 요구사항이 있는지 검토해야 될 것”이라며 정부의 신중한 접근을 촉구했다.

유 교수는 “김정일의 건강, 후계 문제 등에 직면한 북한으로서는 핵실험 등에 따른 제재국면의 돌파구가 필요했다”며 “북한의 핵보유 의도가 분명한 이상 남북관계를 일부 개선해 제재강도를 희석시키려는 책략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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