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한국 가요나 드라마를 단순히 시청하는데 그치지 않고 우리 패션잡지를 들여와 여기에 소개된 옷을 제작해 입고 있다고 내부소식통이 8일 알려왔다. 북한 내 한류가 단순히 보는데 그치지 않고 생활문화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평안남도 소식통은 8일 데일리NK와 통화에서 “개인 재봉사들이 중국을 왕래하는 무역일꾼 등을 통해 남조선 패션잡지를 가져달라고 부탁하는 일이 늘었다”면서 “이 잡지를 참고해 옷을 제작해 간부나 부잣집 사람들에게 판매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식통은 “여성들뿐만 아니라 남성들도 검은색이나 짙은 갈색 잠바나 인민복만 입고 지내다가 최근에는 색깔이 고운 양복을 입고 있다”면서 “한류가 유행하다 보니 젊은이들이 한국 드라마를 보고 재봉사를 찾아와 ‘이렇게 제작해달라’고 말할 정도”라고 말했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북한에서 패션은 일부 문화 예술계 종사자들만 이해하는 개념이었다. 북한 의류는 그동안 공장에서 단체 생산해왔기 때문에 개인적인 특색을 찾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이후 시장이 활성화되고 중국제 의류가 밀려들어 오면서 주민들의 옷차림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재일조선인총연합(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2008년 3월 북한 20∼30대 남성들 사이에서 늘씬한 몸매를 강조하는 ‘슬림룩’ 양복이 유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최근 들어서는 한류가 유행하면서 주민들의 눈높이를 크게 끌어 올려놨다.
한국식 옷을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재봉사들은 주로 의류공장에서 일하다 나온 경력직 재봉사들이다. 이들은 수년 전부터 집에 재봉기를 몇 대 들여 놓고 직접 인력을 구해 가르치면서 옷을 제작해왔다. 화폐개혁 이후 의류 시장이 전반적으로 불황에 빠져들자 한국식 패션 카드를 꺼내 든 것으로 보인다.
북한 ○○시에서 장사하는 화교 김 모 씨는 통화에서 “한국의 패션디자인을 알아보기 위해 개인 재봉사들이 한국 패션잡지를 요구하고 있다”며 “한류에 대한 통제가 심한 조건에서도 책을 구입하고 있다. ‘너무 예뻐 꼭 한번 입고 싶은 영화 속 옷 만들기’ 등 책 이름까지 알고 있다”고 말했다.
옷 제작에 필요한 소재도 대부분 중국에서 들여온다. 이렇게 제작된 옷들은 다른 북한 의류보다 비싸지만 수요가 꽤 많다고 한다. 최근 TV에 나온 북한 퍼스트레이디 리설주의 화려한 패션도 북한 여성들에게 큰 용기를 부여했다는 후문이다.
소식통은 “한 때 인기를 끌었던 한국 중고 옷은 통제가 심해 안으로 들어오기가 어렵다”면서 “이제 한국식 옷을 직접 제작해도 조선(북한)에서 생산한 것이기 때문에 단속이 돼도 반발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