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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평양 시민들이 중국에서 밀수입한 고성능 안테나와 일제 TV를 통해 한국의 KBS 1TV 를 은밀히 시청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 당국은 그동안 남한 방송 시청을 엄격히 금지해왔다. 외부 방송 전파가 북한 내부에 수신되는 것을 막기 위해 방해전파까지 내보내고 있다. 그러나 당국의 이러한 단속에도 불구하고 평양과 인근지역에서는 9시 뉴스를 포함해 KBS 1TV 프로그램을 비밀리에 시청하는 현상이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30일 친척방문을 위해 중국을 방문한 평양 출신 김진호(가명•42)씨는 “중국에서 밀수입 되거나 화물트럭을 통해 몰래 들여온 안테나가 장마당에서 중국 인민폐 120원∼150원(조선 돈 45,000원∼56,000원)에 팔리고 있다”면서 “평양에서는 제법 많은 집에서 한국방송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주위 눈치를 보고 잠깐씩 보기 때문에 드라마를 계속 보기는 어렵고 보통 9시 보도(뉴스)를 통해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고 싶어한다”면서 “가족이나 친한 사람들끼리는 보도를 보고 나서 바깥 세상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한국방송을 수신하는 안테나는 조립형으로 3m 높이에 양날이 생선뼈처럼 돋아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 안테나를 밤에만 높이 세워 시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가 설명한 안테나는 ‘야기 안테나’로 보통 지상파 수신용으로 쓰인다. 남한의 7,80년대에 사용되던 야기 안테나는 위성수신이 불가능한 점을 볼 때 휴전선을 넘어 월경한 KBS 방송전파를 수신한 것으로 보인다.
평남 평성 출신 박기창(가명•34) 씨도 “이제 조선(북한)에서도 바깥 세상물정 모르면 대화에 끼어들기도 어렵다”면서 공화국(북한)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남한 TV를 보고 먼저 알게 된다”고 했다. 그러나 박씨는 북한 당국의 감시가 삼엄하기 때문에 경계심을 늦추기 어렵다고 말했다.
박씨는 “평양을 방문했다가 친척이 KBS 방송을 시청하는 것을 보고 장마당에서 안테나를 사서 시청하고 있다”면서 “화질이 아주 깨끗하고 좋다. 이제 안 보고는 답답해서 견디기 힘들다”고 말했다.
북한은 TV전파 송출방식이 국내 방송규격인 NTSC(National Television System Committee)와 다른 PAL(Phase Alternating Line) 방식이기 때문에 북한 TV로 한국방송을 시청하는 것은 여전히 불가능하다. 한국방송 시청은 일본이나 중국에서 수입한 TV를 통해 시청한다. 일본은 전파송출방식이 NTSC이다.
또한 최근에는 중국이나 일본을 통해 PAL과 NTSC 겸용으로 수신이 가능한 TV가 수입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80년대 이후 주로 일본의 히타치 회사 TV를 대량 주문해 수입했었다. 일부에서는 일제 중고TV를 내부를 수리해 북한 전파 수신용으로 교체한 뒤 북한으로 들여가는 경우도 많았다.
KBS 전파 송출 관계자는 “휴전선 근방에 있는 무인중계소나 송신소에서 보내는 전파가 그곳까지 도달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북한을 향해 TV전파를 내보내지 않는데도 평양에서 수신을 하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고 말했다.
정보통신부 산하 전파연구소의 한 연구사는 “상식적으로 서울지역을 대상으로 송출되는 전파도 천안에서 시청이 가능하고, 당진까지 도달한다”면서 “전파의 특성상 북한에서 한국방송을 수신해 시청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북한방송 PD인 탈북자 출신 김기혁 씨는 “평안남도 회천에서는 종종 남한 TV가 잡혀 과거 황장엽 씨 망명 보도와 자동차 광고 등을 순간적으로 본 기억이 있다”면서 “비가 오면 전파가 더 잘 잡히는 것이 신기했다”고 말했다.
영상전문회사 비디오랩 관계자는 “TV가 PAL 방식이면 일반적으로 화면이 검게 변해 시청 자체가 불가능하지만, 어떤 경우는 빗살무늬로 화면이 씹히는 현상이 있다가 순간적으로 정상화면이 수신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정보당국 관계자도 “북한 주민들 중에 한국 TV방송을 시청한다는 소식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짧게 언급했다.
그 동안 북한 주민들은 한국의 사회교육방송이나 미국의 RFA 방송 같은 라디오 방송을 통해 외부 소식을 들어왔다. 이러한 라디오 방송에 이어 알판(VCD 영상)과 TV방송까지 접근이 확대되면서 북한 주민은 과거처럼 정보의 완전한 고립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중국 단둥(丹東) = 권정현 특파원 kjh@dailynk.com
신주현 기자 shin@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