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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팔레스타인 총선에 이어 이스라엘 총선까지 마무리됨에 따라 이-팔 문제의 향후 전망에 관심이 높다. 이제 이-팔 문제는 어떻게 진행되어 갈까.
양 진영의 선거 결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팔레스타인 총선 결과는 당혹스러움 그 자체였다. 테러 조직 하마스의 집권은 이-팔 문제 해결에 짙은 먹구름을 드리웠다.
이-팔 평화라는 꼭지점에서만 보자면 그동안 그나마 협상에 부응해 온 PLO 혹은 파타당이 재집권하는 것이 유리한 국면을 창출하는 길이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 또는 ‘이스라엘과의 협상’을 인정하지 않았고, 무력 항전과 테러 공격을 포기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입장에서는 실로 참을 수 없는 불안감이자 공포였다.
이제 공은 이스라엘로 넘어 왔다. 하마스의 집권은 이스라엘 내부에 강경 기류를 자극했다. 어느 단위에서든 강경 집단은 외부의 ‘의식 대상’과 공생 관계에 놓이기 마련이다. 만일 팔레스타인의 하마스에 맞서 이스라엘에서마저 강경 집단이 집권하게 된다면 이는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이 긴장된 기류 속에서 2개월이 흘러갔다.
이스라엘의 실용 카디마당-팔레스타인의 강경 하마스
그리고 이스라엘 총선까지 종결된 지금, 결과는 ‘안도감’이다. 이로써 팔레스타인 총선이 안겨준 그 극단적 당혹감은 조금 숨통을 돌리게 되었다. 이스라엘 총선은 카디마당의 승리였으며 이는 유권자들의 신중하고도 냉정한 선택이었음을 확인시켜 준다.
한마디로 유권자들은 ‘안전’을 택했다. 더 이상 생명을 건 모험을 할 수 없기에 감정에 휘둘려 강경 집단에 편승하는 우를 범하진 않았다. 그러면서도 어정쩡한 상태의 지속이 아닌 ‘분명한’ 안전을 담보할 세력을 선택했다. 그 집단이 신생 카디마당이었다.
잠시 카디마당의 길지 않은 궤적을 따라가 보자. 이는 이-팔 문제의 현황을 살피고 전망하는데 아주 유용한 정보와 맥락을 줄 수 있다. 카디마당의 생명은 불과 5개월이다. 2005년 11월 샤론 총리는 30년 전통 보수 정당 리쿠드당을 박차고 나와 신당을 출범했다.
샤론은 2005년 8월, 약속한대로 팔레스타인 영내에 자리한 유대인 정착촌 철수를 전격적으로 강행했다. 이 사건을 기화로 사람들은 샤론을 불도저라 불렀다. 정착촌 철수는 기대와 달리 양 진영의 강경파에게 힘을 실어주는 결과를 낳았다. 하마스는 이 과실이 협상의 산물이 아니라 하마스 자신들의 투쟁의 성과임을 과시했다. 리쿠드당의 강경파는 샤론의 양보를 통해 얻은 것이라고는 하마스의 입지가 강화된 사실뿐이라며 노골적인 반기를 들었다. 이에 샤론은 당을 박차고 나오는 무리수를 결행했다.
‘샤론의 건강악화, 하마스 집권’ 두 가지 복병 이겨낸 카디마당
총선을 향해 오는 동안 카디마당은 두 가지 복병과 먼저 싸워야 했다. 그것은 샤론의 뇌졸중이었으며 다른 하나가 팔레스타인에서 하마스가 집권에 성공한 사건이었다. 이 두 사건은 거의 한 달 간격으로 발생하였다. 신당 창당을 결행한 지 한 달만인 12월 샤론이 쓰러졌다.
사실 카디마당에 대한 지지는 불도저 샤론 총리에 대한 지지였다. 샤론의 위상과 정치력은 카디마당의 운명과 동일시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샤론이 쓰러졌으니 여론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신예의 인물로 부상한 부총리 에후드 올메르트는 빠른 적응력과 민첩한 지도력으로 당의 중심을 잡아 나갔다.
한 달이 지난 즈음 이번에는 외부로부터 파장이 밀려왔다. 팔레스타인에서 강경 하마스가 집권한 사건이다. 이스라엘은 충격과 불안에 휩싸였다. 그러나 결과가 보여주듯 이스라엘 유권자들은 궁극적으로 그 충격파에 그다지 흔들리지 않은 셈이다. 카디마당은 두 가지 복병에 적절히 대처했다. 샤론에 대한 계승을 분명히 내세움으로써 샤론이라는 인물로 대변된 정책적 지지를 손실하지 않았다. 또한 국경 구획의 청사진을 통해 팔레스타인 강경 상황을 공히 응대하면서도 이스라엘의 안전에 대한 분명한 믿음을 주었던 것이다.
양대 선거가 마무리된 지금,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은 어떤 식으로든 부딪혀야 한다. 하마스는 강경 인물들로 내각 구성을 완료했다. 현재 하마스는 곤경에 처해 있다. 팔레스타인에 지원되던 재정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재정 지원은 팔레스타인의 전체 재정의 약 3분의 1을 차지한다. 미국과 EU 등 국제사회도 재정을 끊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국제사회가 하마스에 요구하는 것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이스라엘을 인정할 것. 둘째, 무장 투쟁 및 테러를 포기할 것. 셋째, 그동안 파타당과 진행해 온 협약들을 인정할 것. 하마스는 이러한 요구들을 일축하고 있다.
카디마당은 하마스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해 이미 가닥을 잡은 듯하다. 에후드 올메르트는 선거 기간 내내 ‘2010년까지 국경 구획을 마무리하겠다’고 주장하며, 힘을 실어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하마스는 이를 ‘선전 포고’로 규정했으며 반발하고 있다. 에후드 올메르트는 어느 정도의 시간을 줄 수는 있으나 협상에 나오지 않는 하마스를 무작정 기다릴 수만은 없다며 향후 4년 안에 이스라엘의 영구적인 국경을 확정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국제지원 끊긴 하마스, 대화 나설 수밖에 없다
이러한 대치 국면에서 날아든 반가운 소식은 지난 4일 하마스가 코피아난 유엔 사무총장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이스라엘과 평화롭게 살기를 원한다는 의사를 피력한 사실이다. 그것이 의례적 제스처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근본적 정책 노선의 수정인지 아직은 판단이 이르다. 그러나 긍정적 선회의 작은 신호가 될 수는 있다. 팔레스타인 정부는 외부 원조가 없으면 파산 상태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하마스로서는 재정적 위기를 어떻게든 타개해야 한다. 이란을 비롯한 중동 국가들에 원조를 요청하고 있으나 쉽지는 않다.
결국 미국과 EU, 이스라엘의 도움이 없이는 어려움을 극복할 수 없는 하마스는 대화에 나설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설령 하마스가 협상에 나오더라도 당장 큰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특히 작은 부분에서 어떤 진전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예루살렘 귀속 문제는 이-팔 문제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로서 여전히 그 해답이 요원하다.
뿐만아니라 팔레스타인 난민 귀환 문제도 마찬가지다. 하마스의 ‘변화’와 카디마당의 ‘합리적 선택’이 상생적 방향으로 나아갈지 아니면 결국 다시 원점에서 충돌할지 아직은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위안이 없지는 않다. 주목할 사실은 이-팔 양 진영은 이미 큰 흐름으로서 변화의 레일 위에 올라 서 있다는 것이다. 과거로의 무분별한 회귀는 누구에게나 죽음이다. 비록 ‘평화’는 요원하지만 ‘노력’은 쌓이고 있다는 긍정 위에서 이-팔 문제는 새 국면을 준비하고 진전시켜 나가야 할 것 같다. 양 진영의 새 정부에 또 다른 희망을 걸어 본다.
이종철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