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北核상황 혼동하지 말라

▲ 김정일 위원장과 만나는 정동영장관

한국 정부는 남북간 6.17 회담을 통해 마련된 ‘북핵 평화적 해결’ 분위기를 살려가는 것이 6자회담 재개의 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북한이 핵 보유국 대우를 고집하고 있는 상황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장단에 맞춰 춤을 출 때가 아니라고 경고한다.

참여정부 정책 결정자들은 6자회담 재개 신호탄이 터진 만큼 미국을 포함한 주변국이 모멘텀을 살려 북한을 회담장으로 복귀시키는 일만 남았다고 말한다.

즉, 한국이 판을 마련한 만큼 북한을 자극해 분위기를 깨지 말라는 것이다. 반기문(潘基文) 외교통상부 장관은 “사소한 언쟁이 분위기를 망치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외 전문가들은 이럴 때일수록 상황을 혼돈하지 말고 북핵문제에 대한 실질적 대처 방안을 가지고 움직여야 한다고 말한다. 북한의 행동을 규제할 수 있는 타임 스케줄(시간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북한의 명시적인 핵 포기 선언이 나오기 전까지는 김정일의 의도에 따라 한반도 상황은 언제든지 반전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위원장 발언, 대부분 미국 향한 노림수

6∙17 회담에서 김 위원장의 발언은 다분히 미국을 의식한 것이었다. ‘미국이 우리를 업수이 여긴다’는 말로 핵개발의 책임을 미국에 떠넘기고, ‘미국과 더 협의하겠다’며 뉴욕접촉에서 미국의 추가적인 양보를 요구하고 있다.

겉으로는 시원시원 해 보이는 갖가지 거짓말과 회유로 남한을 끌어들여 미국의 방패막이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분명해 보인다.

김정일은 정동영 장관과의 면담에서 한국 정부는 북핵 문제의 협상 대상이 아니며, 앞으로도 하지 않겠다는 뜻을 천명한 것이나 다름 없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주도적 역할’이 보장됐다고 본다. 북한은 한국의 역할을 미국을 상대로 대북 제재를 차단하는 용도로 생각하고 있다.

김 위원장이 ‘한반도 비핵화 유효’와 ‘6자회담 7월 복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미국의 위협만 없으면 핵무기를 가질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발언이 있기 일주일 전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은 미 A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현재 추가로 제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이야기다.

정 장관은 김 위원장을 시원시원하고 결단력 있는 지도자라고 말했다. 이것은 신뢰의 표현을 넘은 것이다. 정 장관이 김 위원장을 만나 느낀 정서적 감동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입증한다. 정서는 이성(理性)의 작용이 아니다.

6.17 회담은 6.15 정상회담 후속편

이러한 측면에서 이번 회담은 2000년 6.15 정상회담의 ‘후속편’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5년 전 백화원 초대소에서 진행된 정상회담 환송식은 마치 헤어진 가족이 다시 만난 감동의 자리였다고 한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기자들에 따르면, 김 전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손을 잡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불렀다. 참석자 모두 술을 돌리며 통일을 외치고 화해와 협력을 부르짖었다고 한다.

화해의 상징으로 김 위원장은 참석자들에게 야자상어 날개탕과 황구렁이 술을 대접했다.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과거 구 정치인이 한탄하고 후회하도록 합시다’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선전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김정일다운 선동이었다.

정상회담이 이뤄진 2000년에는 북한과 파키스탄의 핵 밀거래가 가장 왕성하게 이뤄지던 시기였다. 남측 관리들이 평양에서 화해와 통일의 술잔을 기울이며 들떠 있을 때 제네바 합의를 파기시킨 우라늄 농축 방식의 핵 개발이 차근차근 준비되고 있었다.

핵 기술 밀매를 스스로 시인한 파키스탄의 압둘 카디르 칸 박사는 지난해 자체 조사과정에서 “그 당시 3개의 핵장치를 직접 목격했다”고 밝힌 바 있다. 또 우라늄 농축을 위한 원심분리기 설계 기술과 소수의 원심분리기 완제품을 북한에 넘겼으며, 원심분리기 제조에 필요한 설비의 ‘쇼핑목록’도 함께 제공했다고 진술했다.

”북핵 정책 우선순위 정하고 남북관계 조절해가야”

북한은 이미 핵 문제와 관련하여 국제적으로 신뢰할 수 없는 대상이 됐다. 한반도 비핵화 선언, NPT 가입, 제네바 합의, 남북기본합의서 등 국제사회와 약속을 계속해서 어기고 있다. 그런데 한국 정부만은 김정일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곧이 곧대로 해석하고 있다. 한 두 번의 이벤트에 한 국가의 존립을 좌우할 수 있는 정책이 요동쳐서는 안된다.

이정훈 연세대 교수는 “한∙미 양국은 지난 4월에 당면한 목표는 6자회담 재개가 아니라 실질적인 북핵 해결이라는 로드맵을 공동으로 합의한 바 있다”면서 “한국 정부는 핵 불용을 최우선의 원칙으로 내세워 대북 지원 및 관계 개선 여부를 결정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6.15 정상회담 이후 북한을 자극하거나 북한을 부정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행위는 철저하게 차단해왔다. 결국 이러한 대북 유화정책은 북한 핵 보유 성명으로 이어졌다. 남한의 햇볕정책은 북한 핵 보유 의지 앞에 무기력하기만 했다.

참여정부에 들어서 북핵 위기 국면에도 한국 정부는 당근만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북한의 오판 가능성만 높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제재도 압박도 없는 상황에서 핵을 포기할 동기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상을 주고 핵을 고집하면 벌을 주는 것이 당연하다. 또한 시간만 끄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는 다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시켜야 한다.

북한을 상대할 때는 원칙적 대응만이 정책 실패를 최소화 할 수 있다. 굳건한 한∙미 공조 아래 핵 포기를 강제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가동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다. 우리는 지금 매우 중요한 시점에 와 있다.

신주현 기자 shin@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