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최근 매체를 통한 대남 비방 공세를 계속하면서 ‘6∙15공동선언’과 ‘10∙4남북정상선언’을 이행을 거듭 촉구하고 나서는 것은 북한 체제의 특성, 경제적 실익, 남북관계의 주도성 등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북한은 지난 달 말 통일부 업무보고 등을 통해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가 공식화된 때부터 6∙15, 10∙4선언 이행을 집중적으로 강조했다. 최근에도 이 대통령의 상주 남북연락사무소 설치 제안을 거부할 때 두 선언에 대한 입장을 먼저 밝힐 것을 주문했다.
지난 26일 북한은 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을 통해 “6∙15, 10∙4선언에 대한 입장을 바로 가져야 할 것”이라고 했고, 29일에는 “6∙15, 10∙4선언은 결코 정치적 흥정물이 될 수 없으며 일개 정상배(政商輩)가 부정한다고 그 민족사적 의의가 훼손될 수도 없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북한이 두 선언의 이행을 강조하는 것은 우선 북한의 체제 특성과 무관하지 않다. 우선 북한 최고지도자인 김정일이 1, 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직접 서명한 합의문이라는 점이다.
박영호 통일연구원 ‘데일리엔케이’와의 통화에서 “북한 입장에서 보면 6∙15, 10∙4선언을 김정일의 치적으로 선전해왔기 때문에 ‘장군님이 만든 것을 왜 안 지키냐’고 강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북정보통인 정형근 한나라당 최고위원도 30일 “6∙15와 10∙4 선언은 김정일 시대의 합의문인데 이명박 정부가 인정하지 않는 것은 김정일을 인정하지 않고 대화도 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북측은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이 된다”고 말했다.
또한 북한이 이처럼 두 선언의 이행을 강조하는 것은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로도 해석된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 전부터 남북관계를 주도하겠다며 연락사무소 설치까지 제안하자, 두 선언 이행을 강조하면서 ‘역공세’를 취하고 있는 셈이다.
전성훈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명박 정부가 연락사무소 설치를 제안한 것을 두고 ‘대화할 의사가 있는 것 같다’고 인식, ‘우리 식’ 대화를 이끌어 가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라며 “특히, ‘비핵∙개방3000’구상에 대해 ‘전임 정권의 약속부터 지켜라’는 식으로 반대의사를 표명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북한은 남북관계에 있어서는 철저하게 ‘우리민족끼리’를 강조하고 있다. 북측은 미국의 핵전략에 맞서 억지력을 갖기 위해 핵을 보유하고 있다고 강조하며 남북관계와 분리해 핵문제를 접근하고 있다. 따라서 ‘비핵’을 전제조건으로 내세우는 남한정부에 강한 거부반응을 보이면서 화해협력을 강조한 두 선언을 강조하는 것이다.
또한 두 선언에 따른 경제적 실익도 고려된 측면이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두 선언은 북한의 고립화로 경제난을 일부 극복할 수 있는 원천이 될 수 있지만 이명박 정부가 이를 부정하면서 북한으로선 난처한 상황이 돼버렸다.
이에 대해 박 연구위원은 “두 선언은 북한에 상당히 유리한 협상이었다”며 “당장의 실익이 기대되는 두 선언 이행을 촉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북한의 반발이 거세지면서 우리 정부는 6·15, 10·4선언에 대한 검토 입장을 밝히고 있다. 북핵문제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발표 후 경색국면인 남북관계의 해법 찾기에 나선 셈이다.
김하중 통일부장관은 28일 “6·15선언, 10·4선언에 이행되지 못한 것도 많다”면서 “우리로서는 앞으로 현실을 바탕으로 해서 상호 존중의 정신 아래 남북간 협의를 통해 실천 가능한 이행방안을 검토해 나가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부 당국자는 “남북대화와 협의하자는 메시지를 또 한 번 던진 것”이라며 “10∙4선언 이행을 말로만 할게 아니라 실제 대화에 북한이 나와 따질 것은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