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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은 무려 30년 동안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다. 1979년부터 공산주의 최강국 소련의 침공에 시달렸으며, 새 천년 벽두(劈頭)에는 ‘테러와의 전쟁’을 시작한 다국적 군(軍)과 탈레반 추종세력 간에 벌어진 일전(一戰)으로 온 나라가 포화에 휩싸였다.
여기에 18개가 넘는 종족간의 지루한 내전(內戰)은 국제사회가 해결할 수 없는 난제처럼 다가왔다. 1990년대 아프가니스탄은 매일 336명이 사망하거나 1400명의 난민이 발생하는 암흑의 나라였다.
‘왕정과 공화정’, ‘친소와 친미’, ‘이슬람 근본주의와 근대국가로의 전환’을 놓고 이전투구(泥田鬪狗)를 벌여왔던 군벌과 종족지도자들은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이 겪는 ‘기아와 빈곤’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살람 알레이쿰, 아프간'(바이북스刊)은 오랜 전쟁을 겪고 있는 아프간의 지난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함께 보여주는 책이다. ‘살람 알레이쿰’이란 말에는 ‘당신 안에 평화가 깃들기를!’이란 뜻이 담겨있다. 제목의 뜻을 알게 되는 순간 저자의 집필 의도가 마음속에 느껴진다.
저자 채수문은 대한민국 육군 중령의 신분으로 아프가니스탄에 첫 발을 내딛었다. 2003년 아프가니스탄 동맹군 연락단장을 시작으로 2004년에는 UN 아프가니스탄대표부 군사고문단장으로 활약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협상의 달인’으로 알려진 저자는 사병화(私兵化) 되어 있던 군벌들의 무기를 수거하고, 대신 이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UN 무기수거 프로젝트’ 수행과정에서 독특한 활약을 보인 인물이다.
군벌 책임자들과 “형님”, “아우”하며 신뢰를 쌓았던 저자의 설득으로 군벌간에 총을 놓고 평화협정을 맺는 진풍경이 이어졌다고 전해진다.
사실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저자의 첫 느낌은 ‘저주’였다. 이탈리아 공군이 제공한 수송기에 앉아 파병지를 향하던 그의 눈에 부서진 탱크의 잔해들과 허물진 흙집에 살고 있던 일반 국민들의 모습이 먼저 들어왔다. 소련과의 전쟁 시절부터 설치된 1천만 개의 지뢰 때문에 매달 100여 명의 현지인들이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는 현지 보고에 그의 마음은 무거웠다.
그가 파병지에 처음 도착했을 때 아프가니스탄은 그야 말로 사람이 살 수 없는 ‘유령의 땅’이었다. 군벌간 내전으로 수도 ‘카불’은 기본적인 도시 기능이 마비됐다. 사람들은 언제 날아올지 모르는 탈레반의 로켓탄과 자살폭탄 테러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을 포기하고 있었다.
외국인과 평화유지군에 대한 탈레반의 테러 위협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외국 군대를 反이슬람주의 침략자로 규정하는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의 안정과 재건을 위해 일하는 외국인과 이들을 지원하는 현지인까지 공격 대상으로 삼았다.
UN 난민고등판무관실의 지방 담당자였던 베티나(29)가 탈레반 추종자에 의해 백주대로에서 총격을 당해 사망했을 당시, 세계 모든 언론이 아프가니스탄의 안정과 평화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표명할 정도였다.
저자가 ‘저주의 땅’에서 ‘평화’에 대한 희망을 발견하게 된 동력은 직접 만나 부딪치며 함께 문제를 극복해 나갔던 현지인들의 웃음에 있었다.
윗마을과 아랫마을 군벌 간의 싸움을 중재했던 일, 새로 부임한 주지사로부터 시민들의 병원을 지켜냈던 일, 임시 천막학교에 모인 어린이들 앞에서 강의하고 박수를 받았던 일, 수도 카불시의 껌팔이 소녀에게 가판대를 만들어주고 그 가족의 생계를 도와줬던 일 등 저자는 몸으로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을 겪으면서 미래에 대해 희망을 느끼기 시작한다.
책 곳곳에 소개되는 저자의 경험담도 흥미롭다. 아프가니스탄 정규군 창설식에서 바라본 카르자이 대통령의 눈물, 유엔보안담당관에게 입수한 한국대사관 테러 위협 정보에 따라 대사관 직원들을 대피시켰던 상황, 한국장교로서 UN 군사고문단장까지 승진했던 일화 등은 독자들에게 하여금 해외에 파병된 한국 군인들의 노력과 위상에 대한 자부심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이제 아프가니스탄은 새롭게 변화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과 UN 평화유지군이 흘린 땀방울의 결실이다. 수도 카불의 시장에는 일찍부터 사람들이 붐비고 거리마다 식당과 여관들이 새롭게 문을 연다. 고층 빌딩에 입주한 은행들은 외국기업의 신규투자를 적극 독려하고 있다.
변화의 바로미터는 ‘여권신장’에도 있다. 탈레반 정권 시절 세계에서 가장 열악하기로 유명했던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 온몸을 뒤덮는 ‘부르카’ 속에 억압되어 있던 여성들의 요구가 하나씩 분출되고 있는 것이다. 30년 만에 국제 미인대회에 참가한 사마드 자이나, 대통령 후보로 나선 마수다 잘랄 등은 아프가티스탄 여권 신장을 상징하는 ‘뉴페이스(new face)’로 통한다.
저자는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한국군 파병 의미에 대해 “우리는 과거에 다른 나라의 도움을 받아 전쟁 피해를 극복했고, 오늘의 평화를 유지하고 있다”며 “우리가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 재건에 참가하는 것은 우리가 받은 도움을 국제사회에 돌려주는 것”으로 해석한다.
2007년 여름, 탈레반의 ‘한국선교단 납치 사건’으로 인해 우리 동의부대와 다산부대가 곧 철수하게 된다. 정부차원의 공식적인 구호활동 중단이 던져주는 안타까움만큼 저자의 노력에 의해 기록된 우리 군(軍)의 활동 성과는 소중하기 그지없다.
급격한 체제붕괴에 따른 ‘북한사회의 혼란과 주민들의 난민화’라는 가설을 무턱대고 부정할 수 없는 한국의 운명을 고려할 때 ‘살람 알레이쿰, 아프간’에서 소개되는 아프가니스탄의 재건 사례는 결코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다. 아프가니스탄 재건 과정에서 겪었던 여러 문제점들이 쉽지 않은 한반도 통일과정을 헤쳐 가야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