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나미’가 인니-아체 분쟁종식 기여

▲ 평화협정 체결한 인니 아체 지역(조선일보)

인도네시아의 아체(Ache) 분쟁이 평화적 해결의 길을 찾았다. 인도네시아 정부와 아체 반군이 15일, 핀란드 헬싱키에서 평화 협정에 조인하며 30여 년간 지속돼온 유혈분쟁 종식에 큰 기틀을 마련했다.

인도네시아(인니)는 그동안 동티모르와 아체(수마트라), 이리안 자야(서파푸아) 등 3개 지역에서 분리독립 분쟁을 겪어왔다. 그중 1999년 10월 동티모르는 분리독립을 승인하였으나 그외 지역은 ‘당근’과 ‘채찍’을 병행하며 분리독립을 철저히 억제해 왔다.

2001년 출범한 메가와티 정부는 아체와 이리안 자야 지역을 특별 자치주로 승격시켰으나(02년 1월) 무장투쟁에 대해서는 강력한 소탕작전을 감행하였던 것이다.

아체 지역은 수마트라 섬의 북부 지역(인구 약 500만명)으로 1511년 이후 포르투갈과 영국, 네덜란드의 지배를 번갈아 받아오던 중 1945년 네덜란드로부터 독립을 쟁취하였다. 그러나 인니 중앙정부는 아체 지역을 ‘아체 특별지구’로 명명하며 인니로 귀속시켰고 51년 강제 합병을 통해 석유와 천연가스 등 경제적 수탈을 노골화하였다.

아체 독립운동, 76년부터 본격적인 무장 투쟁

이에 아체는 1976년 자유아체독립운동(GAM)을 결성, 본격적인 무장투쟁에 나서게 된다. 인니 정부는 자바계 주민을 대거 이주시킴으로써 강경 대응하였고 군사적 잔혹 행위로 약 5만 명의 아체 주민이 희생되었다.

아체 주민들은 석유, 천연가스의 풍부한 부존자원에도 불구하고 인니 전체 평균에도 못 미치는 빈곤 상태에 허덕여오며 분리독립만이 유일한 살 길이라는 인식이 팽배하였다. 그러나 인니는 자원 때문에라도 아체 분리독립을 반대해왔다.

또한, 동티모르 독립 이래 고조되고 있는 소수민족 분리운동에 강력한 제동을 걸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인니는 240여개 종족 국가이면서 500개가 넘는 언어가 상존하고 있다. 세계 최대 회교국가(인구 2억 2천 만명, 세계4위)이지만 부분적으로는 다양한 종교 구성을 포괄하면서 중앙정부의 정치력이 미처 닿지 못하는 1만 7000여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국가다.

역설적이지만 아체와 인니 정부의 평화협상은 2004년 쓰나미로 인해 아체에서 약 13만명이 사망하고 국제사회의 구호물결이 밀려들면서 시작되었다. 아체 지역이 극심한 쓰나미 후유증을 겪자 자유아체독립운동(GAM)이 전격적으로 무장 해제에 동의하고 전면적인 독립 요구를 포기한 것이다.

2002년 평화협정 체결하고도 약속 불이행

한편 인니 정부는 9.11 테러와 2002년 발리 폭탄 테러 이후 대대적인 대테러 소탕작전을 펼쳤으며 미국은 재정 지원의 조건을 걸어 아체 반군과의 평화협상을 종용하였던 것이다.

이번 인니가 평화협정을 통해 약속한 주요 내용은 GAM의 정당 건설 등 정치 참여 보장, 아체 천연자원 수입의 70%를 아체에 배분, 2주 내 정치범 석방, 평화협정 국제감시위원단 구성(유럽연합, 아세안의 평화 유지군과 비무장 감시요원) 등을 담고 있다.

이로써 GAM은 9월 15일부터 3개월에 걸쳐 무장을 해제하고 인니 정부는 정부군 규모를 4만명에서 1만 4,700명으로 줄이며 이후 감시위원단과 지역 경찰에 알리지 않은 채 1개 소대 이상의 병력을 이동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 아체와 인니는 2002년 12월에 이미 평화협정을 체결한 바 있다. 세계는 환영하였고 수십년 ‘핏빛 역사’의 종식을 기리는 사람들의 가슴은 희망에 부풀었다. 그러나 그것은 채 5개월도 흐르기 전에 와장창 깨어지고 말았다.

뿌리깊은 불신은 아전인수 해석을 초래하였고 정부측이 협정에 따른 병력 삭감을 이행하지 않는 가운데 반군측도 무장 해제를 거부함으로써 상황은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았던 것이다. 특히 힘들게 도달한 결실이 깨어진 여파는 더욱 혹독했다. 다시 재개된 전투로 순식간에 3,000 여명이 죽고, 인니 정부는 계엄을 선포하며 긴장이 격화되었다.

쓰나미 재앙, 평화협정 계기로 작용

이와 같은 시련을 딛고 약 2년 만에 다시 평화적 해결의 길을 찾았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일이다. 아체의 전격적인 양보와 인니의 적극적인 선회는 매우 현실적이며 합리적인 선택이다. 사태의 역사적 본말을 따져 당위를 가리기 이전에 적어도 더 이상의 유혈 분쟁은 서로에게 어떤 도움도 되지 못한다. 앞으로 중요한 것은 이 현명한 결단을 현실화하는 것이다.

이번 인니-아체 평화협정의 숨은 공신은 마르티 아티사리 전 핀란드 대통령이다. 1994년부터 6년간 대통령에 재임한 그는 1970년대에 외교관으로 아프리카 곳곳의 유혈분쟁 현장을 누볐다.

그는 현재 비정부기구(NGO)인 위기관리기구(CMI)를 만들어 50여 분쟁현장에서 대화와 평화를 외치고 있다. 그의 숨은 노력은 참으로 뜻깊다. 헬싱키에서 맺어진 이번 인니-아체 평화협정이 헛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이종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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