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말리아, 제2의 아프카니스탄 되나?

▲ 이슬람근본주의 세력이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를 장악했다. 지난 93년 10월 모가디슈에서 반군 군벌 아이디드를 체포하려다 블랙 호크 헬기 2대가 격추되고 부대원 18명이 숨진 사건을 소재로 만들어진 영화 ‘블랙 호크 다운’의 한 장면 ⓒ제리브룩하이머

아프리카 중동부에 위치한 소말리아가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에 의해 장악되었다.

이슬람법정연합(UIC)을 표방한 이 세력은 최근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 대한 집중 군사 공격을 감행해 그동안 수도를 장악하고 있던 군벌 연합세력을 몰아냈다.

이로써 소말리아 정국은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이 주도한 채 주요 군벌 세력과 부족 원로들의 합의로 성립한 수도 남부의 과도 정부, 이미 독립을 선언한 북부 소말리랜드 간의 세력 다툼으로 치닫게 됐다.

이곳에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이 부상해 수도를 장악하자 미국 등 국제 사회는 소말리아가 이슬람 테러 조직 알카에다의 새로운 근거지가 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소말리아에서 새로운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 세력이 정국을 장악한 것은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이 정권을 잡은 셈이라는 것.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및 이라크 공격 이후 아프리카는 이미 새로운 이슬람 근본주의 테러 세력의 근거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특히 소말리아는 오사마 빈 라덴이 숨어 들것이라는 풍문 속에서 더욱 요주의 관심 대상이 됐다.

아프리카가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의 새로운 근거지로 거론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첫째, 무엇보다 그것은 이슬람이라는 종교적 배경과 관련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세계 이슬람 인구는 11억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이슬람 인구는 아라비아 반도를 중심으로 동으로 중앙아시아 및 서아시아까지, 서로는 아프리카 북부까지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분포해 있다.

아프리카 어린이 인구 30% 이슬람화 경향

아프리카 지역은 북부의 알제리, 리비아, 이집트, 수단 등 큰 국가들이 모두 이슬람 국가이며 그 근거지를 바탕으로 남아프리카로 교세가 급속하게 확대되고 있다. 아프리카 총 인구(약 9억명)의 약 3분의 1이 이슬람 인구화 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 이슬람 인구가 모두 정치 세력화 된 관계로 이슬람 정권도 많을 뿐아니라 이슬람이 주도적으로 정치적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는 실정이다.

두 번째 근거는 아프리카의 분쟁과 관련된다.

세계 5대양 6대주 중에서 아프리카는 분쟁이 가장 많은 지역이다. 전투에서 죽고, 굶어 죽고, 인종 학살에 의해 죽어 가는 아프리카 사람들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다. 그래서 아프리카는 세계에서 가장 비극적인 현장이라 할 만하다.

이 지역 분쟁 원인들은 기본적으로 부족 간의 파벌 다툼인 경우가 많다. 여기에 이웃 국가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고 설켜 있다. 분쟁의 몸살을 앓는 나라들에는 중앙집권체제가 제대로 서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민간 군사 조직이 발달해 군벌이 난립하고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곤 한다.

이러한 아프리카의 분쟁은 과거 식민지 잔재와 결부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아프리카 사람들에겐 자연히 과거 식민지 종주국에 대한 역사적 분노가 함께 자리하게 된다. 실제로 분쟁의 주체 세력들은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에 대한 투쟁을 주요한 슬로건으로 내세운다.

이 지역이 반 세계화 성향을 띠는 주요원인으로 지목되는 부분이다. 자신들의 투쟁은 종국적으로 제국주의를 완전히 청산하고 확고부동한 주권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자신들만이 그 진정한 적자가 될 수 있다는 논리다.

경제적 빈곤이 분쟁 주요 원인

셋째, 극심한 경제적 빈곤을 들 수 있다. 굶주림과 저발전의 정체는 아프리카 민중들의 척박한 삶으로 드러난다. 아프리카의 빈곤은 세계가 안고 있는 소위 ‘남북 문제’의 대표적 사례가 된다. 유럽을 중심으로 한 북위 30도 이북의 선진 국가들의 윤택한 삶은 적도 및 남반구의 가난한 아프리카에 비하면 천국에 가깝다. 반대로 남반부는 지옥에 가깝다는 말이다.

요약하면 이슬람이라는 종교적 배경, 수많은 분쟁과 그에 결부된 식민지 경험의 역사적 잔재, 빈곤과 저발전의 악순환 등이 결부되어 아프리카는 기독교적 배경을 지닌 서구 선진 국가들에 거대한 적성 지역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알카에다와 같은 테러 세력이 아프리카에 새로운 근거지를 확보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아프리카의 절망은 9.11 테러에서 보여 졌던 것처럼 선진 국가에 대한 극단적 분노와 적대 의식으로 비화되고, 또다시 그 어떤 비극적 모습으로 표출될 지 알 수 없다.

소말리아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소말리아의 근대 역사는 워낙에 복잡하기 때문에 한 줄기로 요약 정리하기는 매우 곤란한 측면이 있다. 소말리아에 이슬람이 침투한 것은 약 10세기 경이다. 아프리카 북부의 다른 지역과 마찮가지로 아라비아 반도의 이슬람교도는 이즈음 아프리카로 대거 진출, 각지에 토후국을 건설하였다.

소말리아는 한때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를 받았으며 19세기에 접어들 무렵에는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에 의해 분할 지배를 받았다. 2차 세계 대전을 거치며 식민지 지배에 변화가 찾아 왔으며 1960년 마침내 소말리아는 통합 독립 공화국을 수립했다.

이후 소말리아 공화국은 안정적인 근대주권국가 건설의 길로 나아가지 못했다. 대외적으로는 에티오피아와의 분쟁과 대내적으로 부족 간의 세력 다툼이 표면화되면서 정세는 계속 불안정하였다.

‘3대 군벌’ 분쟁으로 엄청난 희생 야기

1969년 군부의 무혈쿠데타가 성공하여 군참모장 바레가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바레 군사 정권은 대(大)소말리아주의 정책을 지속함으로써 에티오피아를 비롯한 주변국과의 충돌을 반복하였다. 대내적으로도 자기 부족 중심의 독재 정치를 실시함으로써 부족 간의 갈등을 키우게 되었다.

냉전 시기 친소 정책과 친미 정책을 반복하던 중 탈냉전과 함께 미국의 지원이 소홀해진 틈을 타 소말리아 민족운동(SNM), 통일 소말리아 회의(USC), 소말리아 통일운동(SPM) 등 반정부 연합세력은 바레 정권 타도의 공세를 강화하였다. 결국 1991년 USC가 수도를 장악하여 정권을 무너뜨렸으며 SNM은 북부에 독립 소말리아 공화국을 따로 수립하였다.

문제는 정권 축출에 성공한 USC가 3대 군벌로 분열하여 이후 극심한 내전을 치르게 된 것이다. 3대 군벌은 엄청난 희생자를 야기하였으며 1998년에 이르러 극적으로 정전에 합의하였다. 그러나 이후 소말리아의 정국은 중앙 군벌 연합에 대한 군소 군벌들의 투쟁 양상으로 전개되어 여전히 전투가 끊이지 않았다.

한편 2000년 소말리아의 부족 원로들은 회의를 갖고 과도 의회를 구성하고 새로운 정부를 탄생시켰다. 군사력은 없었으나 도덕적 권위에 의존한 전체 부족 원로들의 합의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강력한 군사력을 확보한 중앙 군벌은 물론 주요 군벌들이 새 정부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 세력이 갑자기 부상하여 일거에 중앙 군벌 연합을 분쇄하며 정세를 장악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소말리아가 국제 사회의 관심으로 부상한 것은 1992년이다. 내전이 격화되던 1991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발생한 가뭄 사태로 인해 인구의 절반이 넘는 약 420만명이 기아에 직면하자 유엔은 소말리아 활동(UNOSMO)을 결의하게 된다. 유엔은 평화유지군을 파견함으로써 소말리아 주민의 대량 아사를 막을 수 있었다.

1993년 유엔은 2차 UNOSMO를 파견 소말리아 평화를 위해 진력하였다. 그러나 평화유지군이 군벌 세력의 공격을 받아 살해 되는 등 희생자가 속출하였다. 결국 소말리아 내전의 해결이 어렵다고 본 유엔은 2차 UNOSMO를 실패로 규정하고 모든 활동을 중단, 철수하게 되었다.

평화유지군, 성과 없이 철군 결정

특히 소말리아는 미국의 ‘소말리아 악몽’으로 유명하다. 미국은 1993년 평화유지군을 공격, 살해한 군벌 아이디드를 생포하기 위한 작전을 감행한다. 그러나 작전에 투입된 전투 헬리꼽터 ‘블랙 호크’ 슈퍼 61과 슈퍼 64가 어이없이 격추되면서 상황은 완전히 반전되었다.

이 전투에서 미군은 18명이 죽고 79명이 다쳤으며, 소말리아 군인과 민간인 1,000여 명이 사망했다. 당시 소말리아 군인들과 주민들이 살해된 미국의 시체를 끌고 다니며 환호하는 모습이 여론에 공개되어 미국인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으며 그 충격으로 미국은 소말리아에서 전격 철수를 단행하게 된다.

극심한 분쟁 지역 소말리아가 아프리카의 아프가니스탄이 되는 것이 어쩌면 필연적 과정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아프카니스탄의 불행이 소말리아에 그대로 재현된다면 소말리아 민중에게 그것은 또 다른 불행의 시작이 될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이종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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