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노동당이 36년 만에 당대회 소집을 예고함에 노동당의 과거와 현재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북한은 조선공산당의 유래가 1925년 김일성이 만든 조직 ‘타도제국주의 동맹’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정작 노동당의 창건일은 1945년 ‘조선공산당 서북 5도 당책임자 및 열성자대회’를 기념해 10월 10일로 삼고 있다. 1949년부터 10월 10일이 국가명절로 지정됐다.
제1차 당 대회는 북한 정권이 수립되기 전 1946년 8월 소집되여 북조선노동당과 신민당 합당문제와 노동당 강령 및 규약을 결정했다. 1948년 제2차 당 대회에서는 노동당 규약을 개정했는데, 1·2차 당대회에서 채택한 당규약은 당의 이념은 명시하지 않은 채, 독립국가 건설과 인민대중의 정치·경제·문화생활 수준의 향상만을 당의 목표로 제시했다.
정전 이후 1956년 4월에 열린 제3차 당대회에서는 당규약 제1조를 개정하여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당 활동의 최고지침으로 제시하면서 ‘전국적 범위에서 반제·반봉건적 민주혁명의 과업 완수’를 당의 당면 목적으로, 공산주의 사회건설을 최종목적으로 내세웠다.
1961년 9월 제4차 당대회에서는 당의 이념 및 목표에서 큰 변화가 드러나지 않았으나, 1970년 11월 제5차 당대회의 당규약 개정에서는 마르크스·레닌주의와 함께 김일성 주체사상이 당의 지도이념이라는 변화를 보였다. 이른바 ‘8월 종파사건’으로 정적을 모두 제거한 김일성이 사상적인 측면에서 독자행보를 시작한 것이다.
1980년 10월 제6차 당대회에서는 김일성 주체사상만을 당의 유일한 지도이념으로 명문화하고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와 ‘공산주의사회건설’을 당의 최종목표로 내걸었다. 제6차 당대회는 부자세습을 처음으로 공식 선포했으며, 당규약 개정으로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를 정치국으로 바꾸고 상무원회 제도를 신설함으로써 김정일 중심의 권력화를 추진했다.
김일성 시대에는 비교적 정기적으로 당대회가 개최됐다. 노동당 창건 초기만 하더라도 매년 1회 개최되었으며,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도 분기마다 열렸다.
그러나 제3차 당대회 부터서는 4년마다 당대회를 소집하는 것으로 바꾸더니, 제6차 당대회에서 ‘5년마다 개최’로 늘어났다.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역시 이때부터 ‘6개월에 1회 이상 소집’으로 변경했다. 김정일 1인 결정 시스템의 명문화로 복기된다. 당대회를 통해 후계자로 공식 선출된 김정일은 정작 자신은 죽을 때 까지 단 한번도 당대회를 개최하지 않는 바람에 노동당이 김정일의 거수기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내년 5월 제7차 당대회에서는 36년만에 노동당의 실체가 드러난다는 점에서 또 다른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조선노동당 북조선분국’은 창설 초기 4,530명의 당원을 가진 조직으로 출발하였다. 그 후 1946년 8월 조선신민당과의 합당을 계기로 당원 수가 급속히 증가했다. 6.25전쟁 기간 중 전투 패배 책임을 물린 당원에 대한 출당(黜黨)과 당원들의 전사로 인해 전체 당원 규모는 감소했다.
그러나 1952년 11월까지 당원 수는 오히려 45만 명이나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는데, 전쟁 중에 전투 현장에서 즉석으로 입당하는 이른바 ‘화선입당(火線入黨)’이 유행한 탓이다. 특히 신입 당원의 절반 이상이 문맹자로 채워지는 문제는 노동당 내부에서 조차 비판이 제기될 정도였다.
1961년 9월에 개최 된 제4차 당대회 당시 당원 수 1백 3만 여명, 당 세포 수 6만5천 여개로 공식 발표됐다. 그러나1980년 제6차 당대회부터는 전체 당원수를 공개하지 않기 시작했다. 당시 추정은 320만 규모다.
한편, 1990년대 대기근 역시 노동당원에게 큰 타격을 남겼는데, 故 황장엽 노동당 전 비서는 1996년부터 노동당원 50만 명이 아사했다는 증언을 생전에 남겼다. 김정일이 당대회 개최 없이 ‘국방위원장’ 직함을 주로 사용했던 점 역시 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평가됐다. 김정일이 당대회를 개최했 경우 굶어 죽은 당원 규모가 대외에 드러날 수도 있었다.
김정일이 당보다 군을, ‘총비서’보다 ‘국방위원장’ 직함으로 더 선호했던 것들 모두가 이러한 후과에 영향 받은 것 아니냐는 추정을 낳았다.
제7차 당대회 소집은 당내 운영체계 복구라는 측면에서도 관심을 끌고 있다.
김정일이 스스로 당 지도체계를 와해시키면서 노동당의 기능을 무력화시켰던 것과 반대로 김정은은 집권 초반기부터 당조직 정상화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군(軍)에 대한 당의 지위를 정상화시키려는 김정은의 행보는 김정일과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노동당은 내부 조직의 기능과 역할을 ‘지도’의 의미에서 잘 드러난다. 북한의 조선말대사전에서는 “잘 가르쳐 주고 도와주어 일정한 방향으로 이끄는 것 또는 그렇게 하는 일”로 풀이하고 있지만 실제 조식사업 실무에서는 ‘통제와 명령’으로 해석된다.
당의 기층조직은 ‘당세포’이다. 당세포는 당원 5~30명 단위에 조직된다. 당세포를 지도하는 상급은 ‘초급 당위원회’로서 당원 31명 이상의 단위에서 조직된다.
군대 내부에도 단위부대에 당위원회가 설치되며, 군대 내 전체 당조직을 망라하는 ‘조선노동당 조선인민군 위원회’가 당 중앙위원회 직속으로 조직된다. 조선인민군 당위원회의 책임비서가 바로 ‘총정치국장’이다. 군대 내의 당위원회는 당중앙위원회의 비준을 받아 각급 군 부대의 당위원회에 정치간부 및 군사 간부를 위원으로 추천할 수 있다.
한편, 노동당은 당간부의 자질 향상과 효율적인 인력관리를 위해 각급 당위원회에 간부양성 및 재교육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당 교육기관으로는 시 군 당의 부장급 이상이 입학김일성고급당학교가 있으며, 각 도에는 공산대학, 각 군에는 군당학교가 설치되어 있다. 김일성고급당학교에는 1개월부터 5년까지의 다양한 교육과정이 있다.
모든 당간부들은 해마다 정기적으로 각급 재교육기관에서 적어도 한달 이상 교육받는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에는 관리가 제대로 안되고 있다는 소식도 있다.
당의 노선과 정책을 선전하기 위한 보도, 출판 매체로 ‘노동신문사’와 ‘조선노동당출판사’가 있다. 이들은 당원들과 일반주민에 대한 사상교육과 함께 당의 정책관철을 위해 주민들을 조직, 동원하는 기능도 수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