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어서오세요”

북한의 시장화는 주민들의 언어에도 변화를 부르고 있다. 이제는 종합시장에 매대에서도 “사장님” 소리가 낯설지 않다. 손님의 관심을 끌어 흥정을 시작하자면 “아저씨” “아줌마” 정도로는 안된다.

평안북도 소식통은  27일 데일리NK와의 통화에서 “요즘에는 상인들이 ‘사장님’이라는 표현을 흔하게 사용한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소식통은 “요즘 신의주 채하시장에 나가보면 매대(賣臺) 상인들이 ‘사장님, 여기(로) 오세요’라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부르는 경우가 많다”면서 “옷차림이나 외모로 봐서 돈이 많은 사람같으면 무조건 ‘사장님’이라고 호칭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사장님’이라고 부르면 상대방은 당황스러우면서도 기분이 좋아진다”면서 “‘아저씨’ ‘아줌마’라는 말에는 사람에 대한 등급(等級)이 없지만, ‘사장님’은 상대방을 한 없이 올려주는 표현”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에서 ‘사장님’이라는 말은 1990년대에 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의 대형마트나 백화점에서 중년 남성들에게 호칭되는 ‘사장님’과는 뉘앙스가 다르다. 

북한은 기본적으로 사적(私的) 소유가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회사’가 존재하지 않았다. ‘회사’가 없으니 ‘사장’도 없었다. 

1990년대 식량난 시기 북한 당국이 정책적으로 외화벌이를 앞세우면서 각급 당조직, 군부, 행정단위들이 경쟁적으로 외화벌이 회사를 세웠다. 북한 내수용 국영기업은 모두 ‘0000공장’ 이나 ‘0000기업소’라는 명칭을 쓴다.

그러나 중국의 무역파트너를 고려해서 외화벌이 단위들은 ‘0000무역회사’라는 간판을 달았다. 문자 그대로 ‘회사(會社)’가 등장하니, 그 회사 책임자의 직책은 자연스럽게 ‘사장(社長)’이 된 것이다. 

소식통은 “무역회사들이 생기고 ‘사장’이라는 말이 나왔을 때, 일반 사람은 ‘사장’에 대해 경외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북한의 모든 생산단위에는 당 조직이 있고, 당 조직이 생산단위를 지도한다. 당 조직의 책임자는 기업소의 규모에 따라 ‘책임비서’나 ‘초급당 비서’다. 실제 생산을 담당하는 책임자는 ‘지배인(支配人)’이라 불렀다.

사장은 당 간부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고 아니고 생산 실무 책임자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서도 당 간부도 못하는 일, 지배인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일, 그런 일을 해내는 사람이 바로 ‘사장님’이었다.

 중국인을 비롯한 외국인을 상대하는 사람, 외국을 상대로 돈을 벌어오는 사람, 그가 바로 ‘사장님’이다. 더구나 1990년대면 먹을 것이 없어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던 시절이다. 중국에서 쌀과 돈을 들여오고, 인민들에게 돈벌이 기회를 주고, 국가에 충성자금을 바치는 ‘사장님’은 자연스럽게 존경과 선망의 대상으로 부각됐다.  

결국 ‘사장님’이라는 말 속에는 새로운 직책, 새로운 능력, 새로운 지위라는 주민들의 열망이 반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장님들의 출신성분이 복잡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노동당에 입당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도 사장님이 될 수 있다.  심지어 교화소 출신 사장님도 적지 않다. 중국과 거래를 할 수 있는 인맥, 정보력, 자금동원력, 사업 아이템 등을 갖췄다면 누구나 사장님이 될 수 있다. 북한의 당(黨) 군(軍) 정(政) 모든 간부 집단에서 출신성분이나 전과(前科)에 영향받지 않는 지위는 ‘사장님’이 유일하다. 

소식통은 “중국 무역회사 책임자들과 우리 무역회사 책임자들에게만 붙이던 ‘사장님’을 이제는 일반 돈주들에게도 붙이고 있다”면서 “‘사장님’이라는 표현이야 말로 이 시대 최고존엄을 의미하는 것 아니겠냐”고 웃으며 말했다.

이와 함께 북한 종합시장에서 일반 고객에 대한 존칭어 사용이 늘어나고 있는 점도 주목거리이다.

소식통은 “매대 상인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이 오면 반말로 응대하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요즘에는 50대 상인이 20대 손님에게 ‘(싸게)눅게 줄께요(드릴께요). 좀 사라요’ 이렇게 존댓말을 쓴다”고 전했다.

소식통은 “시장이 커지고 상인들끼리 경쟁이 심해지니까 손님들에 대한 응대가 점점 더 좋아지고 있는 것”이라면서 “사장이라는 말이 앞으로는 시장예의를 지키는 대중언어가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