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 공개로 정치권에서 서해 북방한계선(NLL)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북한은 회의록 공개 사흘 만인 27일 NLL에 대해 미국조차 불법성을 인정한 ‘유령선’이라는 기존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북한은 이날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대변인을 통해 정상회담 회의록 공개와 관련, “최고 존엄에 대한 우롱이고 대화 상대방에 대한 엄중한 도발”이라고 비난한 뒤, “서해 해상 경계선 문제는 10·4선언에 그의 평화적 해결방도가 합리적으로 밝혀져 있으며 그것이 성실히 이행됐더라면 오늘날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이 10·4선언을 언급하며 NLL을 다시 들고 나온 것은 이번 대화록 공개를 NLL 논란 재점화의 불씨 사용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북한은 NLL 재설정을 요구하며 끊임없이 무력화를 시도해왔다. 1·2차 연평해전은 물론,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도발도 이 같은 의도가 내포됐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정전협정을 통해 한반도에서 지상은 군사분계선이 있지만, 해상은 NLL이 실질적인 군사분계선 역할을 해왔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의 부속합의서 제11조에는 ‘남과 북의 불가침 경계선과 구역은 1953년 7월 27일자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에 규정된 군사분계선과 지금까지 쌍방이 관할하여온 구역으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쌍방이 관할하여온 구역’은 NLL밖에 없다.
김관진 국방부장관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서해 북방한계선은 60년간 관할해온 관할수역이고 이미 영토선 개념으로 굳어져 있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진무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데일리NK에 “북한의 성명은 정치권에서 회의록의 ‘NLL’ 논란이 커지고 있으니 이를 부각시켜 남남갈등을 유발시키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면서 “북측은 NLL 문제만 나오면 유리한 쪽으로 끌고 가려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천안함 등과 같은 문제를 새로운 각도로 돌리기 위해 10·4선언을 언급하며 NLL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위원은 이어 “정상회담 전에 당시 몇몇 인사들이 NLL은 ‘불법선’이라고 노 전 대통령에게 부채질한 것이 결정적이었다”면서 “이 때문에 영토선을 지켜야 한다는 국방부와 다른 견해를 가진 통일부 등과의 논란이 심했었다”고 지적했다.
정상회담 회의록에서 고(故) 노무현 전(前) 대통령은 NLL에 대해 “NLL이라는 것이 이상하게 생겨 가지고 무슨 괴물처럼 함부로 못 건드리는 물건이 돼 있다”, “(NLL은) 국제법적 근거도 없고, 논리적 근거도 분명치 않은 것”이라는 부정적인 의견을 나타냈다.
노 전 대통령의 NLL 발언은 그해 11월 27~29일 ’10·4 선언’에 따라 공동어로·평화수역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평양에서 열린 국방장관 회담에도 영향을 미쳤다.
당시 북측 단장인 김일철 인민무력부장은 “남측이 불법적 북방한계선을 유지하려는 입장에 매달리는 것은 남북 정상 간 약속을 지키지 않으려는 것”이라며 “정상 간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했다. 한 발 더 나아가 “노무현 대통령에게 전화해 물어보라”며 우리 측을 압박하기도 했다.
우리 측 수석 대표였던 김장수 당시 국방장관은 1953년 설정된 NLL은 정전 당시부터 지금까지 남북 간 해상 경계선으로 유지됐고,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에도 현재 관할 구역을 인정한다고 돼 있다며 맞선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