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주민들의 처절한 생존방식

[고난의 강행군]은 지금은 중국에 거주하고 있는 한 탈북자가 98년 가을부터 99년 봄 사이에 북한의 곳곳을 다니면서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한 사실을 바탕으로 쓴 책이다. 가명일 것으로 보이는 권혁이라는 31세의 남자는 부모님을 식량난으로 잃고 시집간 누이마저 중국으로 넘어가 연락이 두절된 상태에서 홀로 살아남아 96년부터 닥치는 대로 장사를 하여 목숨을 부지하였다. 그는 스스로가 체험한 사실을 중심으로 기아와 질병, 추위와 공포에 휩싸인 조선 사람들의 현실을 알리고자 글을 썼다고 한다.

그가 전하고자 했던 북한의 현실은 무엇일까?

우선 이 책은 그 동안의 탈북자들의 증언과는 남다른 면이 있다. 그간 탈북자들은 주로 식량난이 최고조에 달한 95~97년 사이의 상황을 증언하였다. 그러다보니 증언할 수 있는 것이라곤 굶주림에 견디다 못해 이웃의 어린아이를 잡아먹은 이야기며, 끝없이 죽어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등 끔찍한 내용이 주를 이룰 수밖에 없었다. 반면 이 책은 그러한 극한상황을 3년 정도 거친 후 살아남은 북한주민들이 그 속에서 나름대로 생존의 법칙을 터득해가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것이다.

99년의 북한주민들은 살아남는 방법을 온 몸으로 터득해 가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기뻐할 만한 수준의 상황은 아니었다는 것을 책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이 살아가는 방법은 매우 단순한데, 보통사람들은 장사를 위주로, 조그만 권력이라도 있는 사람은(그 권력이라는 것이 매우 하찮은 것일지라도) 그것을 이용해서 장사를 하거나 일반 주민들을 착취해서, 군인들은 갈취를 통해, 특히 상당수의 젊은 여성들은 매춘을 통해서 생존해 간다.

북한주민들은 생존의 대가로 도덕과 가정의 파괴를 감수해야 했다. 심지어 90년대 중반 탈북한 사람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당시만 해도 김정일에 대한 욕이나 비판보다는 그래도 김정일이 곡기를 줄여가며 고난의 행군을 앞장서서 지도하고 있다고 믿는 의견이 다수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말을 믿는 북한주민들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권혁 씨는 이제 북한주민들 대부분은 현재 생존위기의 원인으로 김정일을 지목하고, 때로는 불만사항을 공공연하게 표현한다고 말하고 있다. 식량난 초기에는 어려워도 참고 견디다보면 당과 김정일이 문제를 해결해주리라 기대했지만, 그 결과는 처참한 수백만 명의 아사로 돌아왔다. 생사의 기로에 놓이고 극복하는 방법을 터득해가면서 김정일과 노동당의 주장이 거짓선전임을 깨우쳐 가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가치는 바로 현재 북한주민들의 생활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청진, 회령, 함흥, 평양, 사리원, 해주, 서흥, 원산, 순천, 신의주, 혜산, 등 북한의 각지를 돌아다니며 장사를 하였다. 그 나라를 알려면 시장을 가보라는 말이 있듯이 저자는 북한주민들의 삶의 터전이 되고 있는 장마당의 모습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장마당 풍경

북한의 장마당은 배급체계가 무너지자 이용하는 사람이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이제는 어느 정도 틀이 잡혀가고 있다. 장마당에서 모든 거래는 현금 거래이고 물건들은 외국에서 들여온 것이거나 가내수공제품이다. 물건들의 품목에는 자전거, 물고기, 육고기, 남새류(채소), 당과류, 잎담배, 과일, 천, 중국 신발, 조선 신발, 중국 담배, 중고 옷, 중국 압착솜, 화장품, 세탁비누 등 생활필수품들이 있고, 음식 매대에는 밥, 국수, 빵, 꽈배기, 두부밥, 떡, 순대, 돼지고기 볶음, 물고기 요리, 오징어회, 문어회, 술, 계란, 육고기 요리 등을 가공하여 팔고 있다.

저자가 장사꾼이었던 관계로 이 책에는 장마당에서 판매하는 품목과 가격들이 장마당마다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그리고 유엔에서 지원한 아동용 겨울옷과 설사약, 결핵약을 비롯한 약품들도 판매되는데, 이 지원물자들은 일반주민들에게 내려오기 전에 간부들이 착복하여 장사꾼들을 통해 장마당에서 유통된다.

장마당의 풍경 중 특징적인 것은 장마당 안전원들이 북한주민들을 착취하는 수법이 매우 발전했다는 것과 음식을 덮쳐 먹는 꽃제비들과 소매치기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들 꽃제비들은 손님들이 먹다 남은 국물을 먹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손님들이 음식을 먹는 도중에 음식그릇을 덮쳐 도망가면서 먹거나 잡혀서 매맞는 도중에 음식을 꾸역꾸역 먹는다. 장마당과 역전의 꽃제비들이 비참한 모습으로 도움을 요청해도 먹고살기 힘든 주민들은 도와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점점 무신경해지고 있다.

장사를 하기 위해 이동하기도 힘들다

북한의 장사꾼들은 각 지방을 돌아다닐 때 주로 트럭과 열차를 이용한다. 트럭을 이용할 경우 지나가는 트럭이 있으면 손을 흔들어 세우고 북한 돈으로 300원 내지 500원을 지불하고 탄다. 트럭을 타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군인과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고, 어떤 트럭은 기름대용으로 목탄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시동이 자주 꺼지거나 언덕길을 올라갈 때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열차는 정해진 시간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번 출발하면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데, 자주 있는 것이 아니므로 항상 빽빽이 사람들을 태우고 다닌다. 북한에서 각 지방을 다니려면 통행증이 필요하다. 그래서 열차에는 열차원말고도 안전원들이 항상 탑승하는데, 이들의 부패가 워낙 심해 오히려 통행증이 없어도 돈과 식사, 담배 등을 제공하면 무사히 넘어간다. 어떤 안전원들은 장사를 하는 젊은 여성들을 아예 데리고 다니면서 잠을 자기도 한다.

가족 해체와 비적이 된 군인

북한은 이미 3백만의 아사자로 인해 수많은 가족이 파괴되었다. 저자 역시 가족이 해체된 경우이다. 굳이 아사로 인한 가족의 해체가 아니더라도 아이를 먹일 수 없어 길바닥에 버리는 경우, 아버지가 가출하거나 어머니가 가출하거나 일가족이 뿔뿔이 헤어지는 경우가 매우 많다. 남한도 IMF 사태를 겪을 당시 가족들이 헤어지는 아픔을 겪었지만 북한의 그것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북한은 현재 노동당도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김정일은 군을 중심으로 북한 사회를 통치한다고 공언하고 있다. 선군(先軍)정치라 일컫는 군을 통한 통치는 오히려 군과 북한주민들과의 관계를 극도로 악화시키고 있다. 북한주민들은 군인들을 비적(匪賊)이라 부르는데, 대규모 건설사업이나 협동농장에 군이 진주한 지역에는 특히 원성이 높다. 군인들도 먹어야 살고 일을 할 수 있는데, 배급이 제대로 되지 않자 주민들을 약탈하여 배고픔을 해결하고 심지어 밤길에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어 짐과 주머니를 빼앗는 사례가 많다.

그렇지만 군인들은 살인 등 중한 범죄가 아니라면 안전부에서도 손을 대지 못한다. 예를 들어 장마당에서 음식을 먹고 난 후 “군대가 무슨 돈이 있는가”라며 그냥 가버리거나 아예 돈을 내고 먹으라고 요구하면 “군대가 무슨 강도인가! 인민들의 것을 거저먹고 돈을 주지 않을 군대가 어디 있는가!” 하고 시비를 걸어 놓고는 음식 그릇을 발로 밟아 부숴 놓고 간다. 저자도 장사판에서는 꽤나 이골이 나 있는 편이라고 하는데, 몇 번에 걸친 군인들의 횡포 때문에 끝내는 장사밑천을 몽땅 털리고 몸까지 다쳐 결국은 중국으로 탈북하게 되었다.

희망조차 없는 음울한 사회

이 책이 북한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평양에도 잠깐 들른 적이 있지만 대부분은 지방을 돌아다니며 장사를 하면서 저자가 직접 보고 들은 것을 있는 그대로 적어 놓은 것이다. 특히 고급관리라든지, 평양주민들의 생활은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물론 저자가 직접 보지 않아서이다. 그러나 현재 북한주민들의 평균인(平均人), 보통사람은 남북평양농구대회를 관람하는 2,000명이나 평양에서 어느 정도의 배급을 받을 수 있는 특권층이 아니다. 남한의 언론인들이 북한을 방문하여 북한의 관리들이나 특권층들과 만나고 돌아와서 그것이 북한의 전부인 것처럼 얘기하는 것이 얼마나 편파적인 일인지 이 책은 잘 보여주고 있다.

북한주민들은 각자의 처해진 조건과 능력에 따라 각자의 생존방식을 터득해 가고 있다. 그렇지만 보통의 사회에서는 상상하기조차 힘든 ‘비참한 삶’이 북한주민들에게는 그래도 살만한 ‘일반적인 삶’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설사 이것이 도덕의 파괴와 부정부패, 약육강식의 법칙을 동반한다고 하여 단순히 욕할 수만은 없는 끔찍한 현실인 것이다.

“식량난은 몇 년 만의 노력으로 복구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무너져버린 인간성과 삶의 터전을 다시 회복하는 것은 몇 십 년이 걸려도 모자랄 것입니다”라는 한 탈북자의 말처럼 이들은 식량난과 함께 무너진 사회를 다시 일으킬 한 가닥 희망마저 키울 수 없는 불투명한 미래에 절망하고 있다고 책을 펴낸 편집자는 말하고 있다.

남한의 북한 연구자들 중에는 이제 북한의 식량난은 어느 정도 해결되었고 정상적인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서 본 북한주민들의 삶은 정상적인 생활이라고 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더 이상 개선의 여지도 없고 희망도 없다는 비극적인 사실만 확인시킬 뿐이다. 많은 북한주민들이 “전쟁이라도 나서 해결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할 정도로 그들은 절망적이다.

인간에 대한 애정이 있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The DailyNK 기획실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