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인민의 시체로 이룬 김정일 공화국”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누군가의 친구라는 사실 하나 때문에 어딘가로 끌려가 인간 이하의 취급을 당하면 어떤 느낌이 들까?

‘나는 성혜림의 친구였다’의 저자인 탈북여성 김영순 씨는 성혜림(김정일의 첫번째 부인 역할)의 친구라는 이유 단 하나만으로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 온 가족이 끌려가 아버지, 어머니와 큰 아들을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게 된 모진 운명을 지닌 여인이다.

친 오빠가 북한 인민군 창군 멤버였기 때문에 김 씨는 북한에서 일명 ‘핵심 계층’에 속해 남들보단 풍족한 생활을 누리고 살았다. 그러나 당시 김일성이 종파사건을 일으켜 수령 독재를 반대하는 인사와 그 가족의 10촌까지 수용소로 쫓아버리는 모습을 보고 분노를 느끼게 된다.

김 씨의 어머니는 당시의 상황을 “창수(저자의 오빠)는 그 때(6·25 전쟁) 잘 죽었다. 사나이답게 나라를 위해 죽었기에 다행이지, 살았더라면 술 담배도 못하는 그 어진 게 무슨 종파엔가에라도 걸렸으면 어떡할 뻔 했나? 우리 식구도 두메산골로 끌려갔을 게야”라며 한탄했다.

우리는 한 사람의 일대기를 보며 그 사람이 살았던 사회적 분위기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김 씨의 이 책을 통해 필자를 포함해 많은 독자들이 북한의 실상은 북한이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인민의 낙원’이 아니라 실제로는 ‘인민의 시체로 이룬 김정일의 공화국’이라는 사실이라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정치범 수용소에 대해 그는 “‘반혁명분자는 3대를 멸살시켜야 한다’는 김일성의 지시에 따라 세워졌다”며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은 자신의 죄명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15호 수용소 입구에 정신병자 수용소는 전국적으로 김부자에 대해서 말한 정신병자(?)들이 여기에 끌려 와서 결국은 다 죽었다”고 증언했다.

이어 “어쩌다 쥐를 잡아 먹는 날은 특식을 먹은 날인 만큼 먹을 것이 없고 배고픔을 못 이겨 독버섯, 독미나리를 캐 먹고 죽은 사람도 많았다”고 덧붙였다.

1990년대 북한의 식량 부족으로 인한 집단 아사 사태와 관련하여 김 씨는 ‘시체로 메워지는 북한 땅’이라고 상기, “쓰레기 더미에서 복어 내장을 주워 먹고 죽은 형제, 주린 창자에 살구씨를 주워 먹고 죽은 어린이가 생겼다”며 길가에는 굶주린 노인들이 맥없이 누워 있고 대량 아사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그는 평양보위부장이 1999년에 ‘지금 통계에 의하면 북조선 인구가 1천 8백만 명이야’라고 말한 것을 언급하며 “3백만이 굶어 죽고 정치범 20만 수감, 탈북자와 국제 고아를 다 빼면 1천 8백만 명이 맞을 수 있겠다”고 자조적으로 말했다.

친구(성혜림) 하나를 알았다는 것으로 전 가족이 요덕수용소에 끌려가 참혹한 세월을 보내야 했던 김 씨는 탈북해 북한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됐을 때 수용소의 처절하고도 절망적인 날들이 떠올라 주저앉고 싶었지만 지금은 “믿음도 인간의 소망도 사랑도 없는 북한을 반드시 구원해야 한다”는 절박한 희망을 갖게 됐다고 한다.

끝으로 그는 “세계의 자유민주주의 인사들, 그리고 평화를 사랑하는 지구상의 모든 인사들, 우리 국민들이 하나로 뭉쳐 북한에서 이름 없이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 현재에도 갇혀 있는 사람들을 위해 노력해 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북한의 실상을 조금이나마 가감 없이 전하고 싶어 수기를 썼다는 저자의 말대로 아직도 자유와 풍요는 존재하지 않고 굶주림과 억압을 당하고 있는 북한 주민들에게 조금이라도 희망의 빛이 비춰 지기를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