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왜 ‘정전협정일’을 ‘전승기념일’로 둔갑시켰을까?

북한은 6.25전쟁을 ‘승리한 전쟁’이라고 규정한다.

김일성은 53년 7월 27일자 지시문(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명령 제470호)에서 “미제무력침략자들과 그 주구 리승만괴뢰도당을 반대하는 조선인민의 정의의 조국해방전쟁은 우리의 승리로 끝났다”고 주장했다.

이후 북한은 정전협정 조인일(7월 27일)을 ‘조국해방전쟁승리의 날’로 정해 10대 국가 명절의 하나로 기념하고 있다. 주민들은 이날을 ‘전승기념일’이라고 부른다.

북한은 6.25전쟁을 ‘승리한 전쟁’으로 선전하는데 주력해왔다. 김일성이 선제 무력침공을 했다가 한반도 전역의 공산화에 실패했다면 그 책임은 바로 김일성에게 돌아간다. 그러나 미제의 침략을 격퇴했다면 이를 승리한 전쟁이라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대략 세가지 정도의 논리가 제시되고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김일성의 업적 찬양이다.

먼저 6.25전쟁 자체가 미제와 남조선 괴뢰도당이 일으킨 침략전쟁인 만큼 적(敵)들로부터 조국을 수호하는데 성공했으므로 ‘승리한 전쟁’이라는 논리다.

북한에서 ‘헌법’보다 더 높은 사회적 규정성을 가지고 있는 ‘김일성전집’ 제12권에는 6.25전쟁을 북한이 침략당한 전쟁으로 기록하고 있다.

1950년 전쟁발발당시 김일성이 내각비상회의에서 발표한 연설 <결정적인 반공격으로 무력침범자들을 소탕하자>을 통해 남측의 침략을 강력히 규탄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연설에는 “매국역적 리승만도당의 괴뢰군대는 오늘 이른 새벽 38도선전역에 걸쳐 공화국북반부를 반대하는 불의의 무력침공을 개시하였습니다.(중략) 미제의 직접적인 조종하에 리승만괴뢰도당은 이미 오래전부터 공화국 북반부를 침공하기 위한 준비를 진행하여 왔습니다.(중략)

공화국정부는 동족상쟁의 류혈을 방지하고 조국을 평화적으로 통일하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다하여 왔습니다.(중략) 우리 인민군대는 적들의 침공을 좌절시키고 즉시 결정적인 반공격전을 개시하여 무력침범자들을 소탕하여야 하겠습니다.(중략)”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

둘째로 북한은 국가가 창건된 지 1년도 채 안되는 신생 국가였지만 수(數)적으로 우세한 적과 맞서 조국을 사수했기 때문에 ‘승리한 전쟁’이라고 강조한다.

북한은 우리 민족이 36년간 일제에게 예속되어 식민지 약소 국가의 슬픔을 안고 살다가 해방 후 약 5년간 김일성의 영도 아래 행복한 생활을 누렸다고 주장한다.

이런 경험을 통해 우리 민족은 조국의 귀중함을 깨닫게 되었고, 불멸의 항일 투쟁으로 광복을 이룩한 김일성의 영도를 목숨 걸고 따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김일성의 영도 아래 미제와 남조선 괴뢰도당과 싸워 이길 수 있었다고 선전한다.

셋째로 북한은 이 전쟁을 통해 100여년의 전쟁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의 콧대를 여지없이 꺾어 놓은 전쟁이므로 ‘승리한 전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은 인민군대가 창건된 지 3년(1948년 2월 8일 창건) 밖에 안됐지만 일본 제국주의를 물리친 김일성의 뛰어난 영도력과 전략전술, 그리고 김일성을 믿고 굳게 뭉친 군인들과 인민들이 있어 미제와 16개 추종국가(유엔 참전국)의 군대를 물리치고 조국을 지켰다고 주장한다.

특히 자신들의 수적, 물적 우세를 믿고 북한을 얕보고 침략한 미국이 마침내 백기를 들고 정전협정 조인장에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자랑한다.

한국에서는 6.25전쟁을 상징하는 가장 대중적인 표현으로 ‘동족상잔의 비극’이란 말을 쓴다. 남쪽은 유엔의 참전으로 북한의 남침을 물리쳤지만, 이 전쟁을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될 민족의 ‘비극’이라고 명한다.

그러나 북쪽은 남침의 좌절을 ‘승리’로 규정하며 김일성의 업적을 축하하는 날로 기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