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사람들이 공장에서 주패나 치고 있으니…

이번 조선방문은 내가 계획한 마지막 북한 방문이다. 이번 방문을 마치고 나면 북한에 큰 변화가 올 때까지 더 이상 찾지 않을 것이다.

조선에 처음 간 것은 지금부터 4년 전 2003년 겨울이다. 그 이전에는 우리 집안도 형편이 어려워 조선(북한)에 있는 친척들을 도와줄 엄두도 내지 못했다. 부모님들은 간혹 식량을 구하기 위해 찾아온 친척에게 쌀바가지 몇 번 퍼준 것이 전부라고 나에게 말하셨다.

나는 돈을 벌기 위해 결혼하자 마자 아내와 함께 홍콩으로 가서 주유소에서 일했다. 주유소를 전전하며 14년 동안 악착같이 돈을 모아 지금은 고향 창바이에 돌아와 주유소를 하나 마련했다. 지금은 중국도 차가 많아져 주요소 일도 잘된다.

생활에 좀 여유가 찾아오니 북한에 있는 친척들에게 도움이 못 된 것이 내내 걸렸다. 이참에 친척도 보고 주위 사람들이 ‘이상한 나라’ 취급하는 북한에도 가보고 싶은 호기심이 생겼다.

2003년 아내와 함께 식량과 의류, 생필품을 챙겨서 함경북도 00시로 찾아갔다. 친척 사는 동네는 한 마디로 한심하기 그지 없었다. 생긴 거며 먹을 것이며 가재도구며 뭐 변변한 게 없었다. 내 아내는 처음 조선에 간 이후로는 다시는 그곳에 가지 않겠다고 한다. 다녀온 후 마음이 너무 안 좋다는 것이었다.

난 그 이후로도 한 해에 두 번 정도는 친척을 찾아갔다. 꾸준히 장사 밑천을 대줘 이제는 제 힘으로도 먹고 살 수 있을 정도가 됐다. 내가 북한에 더 이상 안 가려는 이유도 친천들이 어느 정도 먹고 살 형편이 됐기 때문이다.

처음 북한을 방문할 때는 친척들이 너무도 힘들게 살아서 생계에 보탤 물건들을 가지고 갔다. 다음부터는 옷이며 TV며 그릇에 이르기까지 살람살이를 구하는 대로 가져다주었다.

작년부터는 장사가 될 만한 물건들을 가지고 나갔다. 내가 돈을 벌자는 것은 아니었다. 삼촌과 조카들이 이 물건으로 장사를 하면 좋을 것 같아서였다. 주로 옷을 만드는 천과 그릇을 가지고 갔다.

그런데 문제는 세관이었다. 북한 세관의 횡포는 워낙 유명하지만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실체를 알 수가 없다.

중국산 옷이나 맛내기(미원)도 한 두개 이상은 불허 대상이었다. 무슨 규정이 그리도 많은지 규정대로 따지면 가지고 갈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자동차로 물건을 잔뜩 실어가는데 나만 보따리 한 두 개 이상 안 된다는 것이었다. 싸움도 해보고 사정도 해 보았지만 막무가내였다.

그때 세관에서 검사를 받고 있던 한 사람이 나에게 슬그머니 “세관원들에게 빨리 인사를 하라”고 귀뜸을 해주었다. 빨리 뇌물을 주라는 뜻이었다. 세관원들과 인사를 한 뒤로는 거칠 것이 없었다.

자주 만나다 보니 그 사람들(세관원들)이 다음에 올 땐 사오라는 물품 목록까지 알려준다.

이번에 갈 땐 양말 600켤레와 최근 유행하는 방한복(오리털 잠바) 5벌을 가져다 주었다. 중국 양말은 싸서 600켤레라고 해도 얼마 되지 않는다.

세관 검사실에서 “이것은 당신들 몫이다. 그리고 이것은 내가 친척에게 가지고 가겠다”고 하면 대충 눈으로 확인하고 보내준다.

나는 늘 조선의 영도(중국 사람들이 간부들을 부르는 말)들의 위세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조선 사람들은 어떤 일이 있든 영도들 앞에서 의견을 내지 못한다. 명절이면 의무적으로 그들에게 뇌물을 바쳐야 한다. 한마디로 조선은 영도들을 위한 세상이다.

또 국가에 대해서도 조금도 나쁜 말을 못한다. 국가나 김정일 영도자에 대해 나쁘게 이야기 했다가 들키면 그날로 감옥에 간다고 한다.

우리 삼촌이나 조카들도 내 앞에서 국가를 욕하지 않는다. 그러나 반대로 한 번도 국가를 칭찬하는 소리를 못 들어 봤다. 그러나 집에 온 친구들끼리는 국가정책에 대해 많이 욕하는 것 같았다.

특히 국가에 납부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서 자기들끼리 불만이 오가는 것 같았다. 휘발유, 장갑, 옷, 심지어 세수비누나 칫솔, 치약, 된장이나 김치 같은 것도 납부해야 한다고 한다. 북한 당국이 그것을 어떻게 쓸지 궁금했다.

“왜 그런 걸 바쳐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친척이 인민군대에 보내는 것이라고 했다. 아마 군대는 국가에서 공급하지 않고 주민들이 모두 먹여 살리는 것 같았다.

조선은 매주 일요일만 휴식일인데 말이 휴식이지 일요일도 계속 나가서 일을 한다. 일요일에는 철도지원, 도로닦기(도로정리작업) 일들을 해야 한다.

여름이면 항상 새벽 5시에 인민반장이 종을 울린다. 그러면 매 집에서 한 사람씩 나가서 식전 작업이라는 걸 30분 정도 하고 돌아온다. 새벽에 무슨 일인가 싶어 물어보니 쓰레기장 정리, 강하천 정리, 철도 자갈 모으기, 모래 파기 같은 일을 한다고 한다. 이번에 갔을 땐 겨울이여서 그런지 식전 작업이 없었다.

조선은 아침 8시부터 직장에서 일을 시작한다. 퇴근시간은 늘 다르다. 빨리 오는 날은 3시면 온다. 늦게 오는 날에는 6시도 넘어서 대중이 없다. 말을 들어 보니 직장에서도 할 일이 없으니깐 주패(노름)치기나 하고, 술이나 마신다고 한다. 그렇게라도 시간을 채우면 된다고 했다.

주민 대부분이 배가 고픈 나라에서 노동자라는 사람들이 직장에서 주패나 치고 있다니 얼마나 한심한 노릇인지 모른다.

직장에서도 그렇고 집에 와서도 그렇고 할 일은 아무것도 없는데 나라에서는 사람들을 계속 모여라 헤쳐라 해서 정신이 없다. 도대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조선 영도들은 사람들을 편안하게 놔두면 사고가 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세금이 없는 나라라고 하는데 내 생각에는 세금을 안내도 될 것 같았다. 필요한 것은 물건으로 국가가 다 거두어 가니 이것이 세금이 아니고 뭐겠는가.(계속)

강정민(가명)/중국 조선족·창바이 거주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