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2시에 전쟁나도 12시까지 팔아야 산다”

회령시 장마당 풍경

평안도에 홍수피해가 극심한 것으로 전해진 가운데 북한 주민들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전투”라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7월 중순 두만강을 넘어 중국 옌지(延吉) 모처에 은신 중인 함경북도 명천군 출신 김옥희(56세, 가명)씨는 “장마당에서 국수를 팔며 살아왔다. 100원짜리 한 그릇 팔아야 겨우 30원 남는다”면서 “하루에 30그릇을 팔아야 다음날 장사본전이 나오는데 농촌동원 때문에 낮에 장마당을 못 열게 하고, 요새는 비가 와 장사가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97년 남편을 잃은 김씨에게 남은 것은 두 딸 뿐이다. 직장 다니던 남편을 부양했던 김씨는 배급도 못 받고 국수장사를 하며 근근이 살아왔다고 한다.

3년 전 두 딸 중 큰애가 먼저 중국으로 간 후, 자리를 잡았으니 건너 오라는 기별을 받고 안내자를 따라 두만강을 건넜다. 김씨는 식탁 앞에 펴놓은 쌀밥과 고깃국에 선뜻 숟가락을 대지 못한다. 힘겨웠던 북한 생활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김씨는 “배급은 생각지도 못한다. 간부들이 다 먹고 백성들은 벌지 못하면 꼼짝 못하고 죽게 됐다. 고기는 김정일 생일날 한번 먹어봤다. 장마당엔 물건이 많아도 살 엄두를 못 낸다”고 말했다.

김씨는 요즘 사람들은 모이기만 하면 “내년엔 승냥이가 제 새끼 잡아먹는 해”라며 벌써부터 걱정한다고 한다.

■ 다음은 김씨와 나눈 대화

– 장마철 들어 시장가격은?

장마당 쌀값은 국산 1kg에 1,200원, 중국 쌀은 1,000원이다. 강냉이는 1kg당 400원, 옥수수 국수 1kg은 250원이다. 중국 콩기름 한 병에 2,500원, 강냉이 기름은 2,000~1,800원, 돼지고기는 2,500원이다. 장마당에 감자가 나오면서 쌀 사먹기 보다 감자를 사먹는다. 작년부터 꽃제비가 많이 없어졌는데 요새 갑자기 많아지는 것 같다.

– 꽃제비들을 당국이 관리하지 않는가?

꽃제비들이 수용소에 있겠다고 하질 않는다. 힘센 꽃제비들이 다 뺏어 먹으면 힘이 없는 애들은 수용소를 뛰쳐나와 다시 장마당에 모인다. 요즘 수용소에도 식량이 없어 꽃제비들에게 밥을 잘 못먹인다고 했다. 꽃제비보다 좀 나은 사람들은 나무를 팔고, 약초를 캐고, 석탄을 주어다 팔아 먹고 산다.

– 주민들이 자신이 왜 못사는지 아는가?

미국이 경제봉쇄해서 못산다고 불만인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요새는 알게 모르게 지도자 탓을 많이 한다. 중국이나 남조선이 잘사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당에서는 전쟁 준비한다고 장마당에 사람들이 나가지 못하게 통제하는데, 그럼 뭘 먹고 사나. 요즘 장사꾼들의 구호는 ‘밤 12시에 전쟁 나도, 밤 12시까지 팔아야 한다’는 것이다. 전쟁이라도 일어나 잘 살면 좋겠는데, 일어난다는 전쟁은 안 나고 백성만 들볶는다.

– 공장에 나가는 사람들은 있나?

대도시야 일거리가 있겠지만, 대부분 공장이 안 돌아간다. 젊은 애들은 일감이 없어 빈둥거리며 도둑질할 생각이나 하고… 국가가 젊은 사람들을 다 머저리로 만들었다. 젊은 사람들은 ‘차 달리기’하면서 중국담배와 중국물건들을 날라다 팔아 산다(북에서는 이를 ‘차 달리기’로 부른다). 우리야 밀수할 힘도 없고 돈도 없다. 국수장사밖에 할 짓이 없다.

– 요즘 사람들은 뭘 먹고 사나?

7월부터 햇감자가 나면서 감자에 강냉이를 섞어 죽을 쑤어먹는다. 감자 밭에 도둑들이 침범해 경비를 보는데 허약 걸린(영양실조) 군인들이 민가에 자꾸 내려와 감자를 파가고 행패를 부린다. 한 대 치면 쓰러질 것만 같아 때리지도 못한다. 감자 마대를 지고 가는 군인들을 단속하면 “장군님의 군대가 좀 먹는데, 무슨 말이 많은가”라며 주먹을 휘두른다.

– 주민들이 김정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난 별로 이야기 하고 싶지 않다. 장마당에 나온 주민들은 “장군님은 뭐 하는지, 꽃제비들이 많은 걸 알기나 할까?”라고 말한다. 옛날에는 장군님이라는 존칭을 쓰지 않으면 안됐는데, 요즘 사람들은 존칭어를 쓰지 않는다. 그냥 김정일이라고 부르면 걸릴 것 같아 ‘갸(그애), 그치(그 사람)’라고 표현한다. 예를 들어 “갸 요즘 뭐하나?”는 식으로 부른다.

김씨는 김정일이 군부대만 찾아 다닐 때는 “할일 없어 다닌다”고 비난했고, 요즘은 “물난리에 장군님 어디 갔냐?”며 최근 김정일의 은둔을 비꼬고 있다고 말했다.

김영진 특파원(延吉)hyj@dailynk.com
한영진 기자(평양출신, 2002년 입국)hyj@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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