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 탕” 북한군 초병이 쏜 두발의 총격에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 씨가 피격된지 오는 11일이면 만 1년이 된다.
정부는 사건 바로 다음날(7월 12일) 진상이 규명될 때까지 금강산 관광을 중단하기로 하고 북한에 우리 당국자의 현장 방문을 허용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북한은 ‘남측 책임론’을 펴면서 우리 측 요구를 거부하고 오히려 사과를 요구하는 역공을 폈다.
이후 정부는 독자적으로 사건 진상 조사에 착수해 피격 시점과 장소 등에서 북측의 주장과 다른 점을 발견, 북측을 압박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24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 회의에서 박 씨 사건을 적극적으로 제기하는 등 국제사회의 관심을 환기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은 8월3일 A4 용지 3장 분량의 ‘금강산 지구 군부대 대변인’ 특별 담화를 통해 우리의 현장조사 요구를 재차 거부하는 한편 금강산에 체류하는 불필요한 남측 인원을 모두 추방하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남북간 대화의 통로가 단절된 상태에서 북한의 일방적인 대남공세가 지속되면서 박씨 사건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으로 남아 있다.
◆조속한 관광 재개는 어려울 듯=당초 정부는 박 씨 사건과 남북관계 전반을 분리 대응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박 씨 사건의 여파는 금강산 관광 문제로 제한한다는 것이었다.
박 씨 문제도 결국 남북대화를 통해 해결돼야 하고 이 사건으로 남북관계가 전면적으로 경색되는 것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 창구를 봉쇄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피격 당일 국회 시정연설 전에 박씨 소식을 보고 받았지만 대북 대화제의 내용을 연설문에서 빼지 않았다.
정부의 이 같은 적극적인 대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개성공단 유 씨 납치 문제 등으로 남북관계는 악화일로로 치달았고 금강산 피격사건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금강산 관광 사업자인 현대아산도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지난해 7월 금강산 관광에 이어 11월28일 개성관광마저 중단된 이후 현대아산의 매출 손실은 금강산관광 1412억 9900만원, 개성관광 123억 7900만원 등 모두 1536억 7800만원에 이른다.
지난해 10월 이후에는 직원 월급도 못 주다가 최근에야 겨우 지급했을 정도다. 이 때문에 현대 아산은 사운을 걸고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분위기다.
조건식 현대아산 사장은 7일 “많은 사람이 금강산 관광 재개 등 남북 경협 사업의 지속적인 추진에 대해 비관적으로 보고 있지만, 단 1%의 가능성이 있다 해도 우리의 노력을 멈춰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정은 현대 아산 회장도 최근 열린 직원 단합대회에서 “단 한사람의 관광객만 있어도 금강산 관광은 계속한다”고 말했다.
현대 측은 강제억류 된 유 씨 문제가 전향적으로 해결될 경우 박왕자 씨 사건도 남북 당국간 정치적 해결을 볼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유 씨 문제 해결에 총력을 기울이는 한편 박 씨 사건의 해법 마련에도 골몰하고 있다.
◆北 대남 ‘고자세’ 한 풀 꺾여야 실마리 찾을 듯=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북한의 대남 ‘고자세’다.
그동안 북한은 남한의 태도가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남북 대화 중단이나 무력 시위 등의 조치를 반복해왔다. 지난 햇볕 정권 하에서도 2 차례의 ‘서해도발’을 감행해왔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대남 공세와 함께 남한 내 친북단체를 동원해 반정부 투쟁을 선도하고 있다.
실제 금강산 피살사건 직후 우리 정부가 관광 중단 조치를 내리자 북한은 사업자인 명승지종합개발지도국을 내세워 “우리에 대한 도전”이고 “참을 수 없는 모독”이라며 남측의 사과를 요구했다. 그리고 “남측 관광객을 받지 않겠다”는 적반하장식 태도를 보였다.
북한 입장에서 금강산 관광은 ‘장군님이 베푼 은혜’에 해당한다. 때문에 우리 측의 관광 중단 선언은 김정일에 대한 모독이고 도전인 셈이다. 무결점 사회주의를 강변해온 북한이 박 씨 사건을 사과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전망이다.
그러나 북한도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 달러 고갈 현상에 직면하게 됐다. 현대아산이 1998년 금강산 관광을 시작한 이래 관광 대가로 지급한 금액은 1999년 2억600만 달러를 시작으로 올해 6월까지 총 4억8천657만1천360달러에 달한다.
달러가 아쉬운 북한이 남측의 조사단을 수용하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 짓고 전격적인 관광재개에 합의할 수 있다는 기대가 있다. 그러나 후계 작업을 앞두고 내외적인 긴장 고조 조치를 해온 북한이 쉽게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