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대북제재 공식화는 친북인사 물갈이 때문”

러시아가 유엔 안보리 대북결의 이행에 소극적인 입장에서 급선회, 결의 이행을 공식화 하자 그 배경을 두고 국제사회의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30일 유엔 안보리가 채택한 북핵 관련 대북 제재결의 1718호의 이행을 위한 대통령령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러시아 연방 내 모든 정부기관과 기업들은 북한에 전차와 헬기, 전투기 등을 수출할 수 없고 핵무기 개발에 사용될 소지가 있는 어떠한 물질도 북한으로 반입이 금지된다. 5만루블(1950달러) 이상의 귀금속이나 시계 같은 사치품도 금수대상에 포함됐다.

러시아가 그동안 대량살상무기(WMD) 비확산에 주도적으로 역할을 해왔고, 한반도 비핵화에 대해서도 분명한 입장을 밝혀온 만큼 이번 결의안 서명은 새삼스러운 정책이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이처럼 명문화 된 결의안의 실효적 조치를 대통령령으로 발효한 것은 대북압박용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한걸음 나가 국내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유엔 대북제재에 동참한 것은 북한을 압박하고 국제사회에서 뿐만 아니라 한반도 내에서 영향력을 키워내기 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이번 결의안 참여가 향후 러시아의 대북정책 기조가 근본적으로 변화되는 시발점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러, 대북정책 기조 바뀌나?= 러시아는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결의 이행에 대해 미일과 달리 일관되게 외교적인 북핵 해결을 촉구해 왔다. 물론 자체 대북결의안을 안보리에 제출한 바 있지만, 통과된 결의안을 이행하겠다는 명시적인 입장은 발표하지 않았다.

이지수 명지대 교수는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김정일을 황당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핵 등 북한 문제에 확실한 입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북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외무성과 국방성의 간부들이 북한과 전통적으로 친분이 있어 근본적인 대북정책에 변화를 줄 수 없었다는 것이 이 교수의 설명. 러시아의 대북정책 변화는 인적 물갈이에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김일성대 연수 등을 통해 북한 간부들과 관계를 맺어 왔고 일부는 북한과 외교 활동을 하면서 친분이 두터운 사람들도 많았다. 이번과 같이 유엔 대북제재에 동참한다는 것은 외무성과 국방성의 간부들이 물갈이가 되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앞으로 러시아의 대북정책은 근본적인 변화를 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러, 북핵 문제에 더 깊숙히 개입할 의도? =이번 조치가 러시아의 한반도 영향력을 높이는 차원에서 북핵 문제 등을 직접 챙기겠다는 의도라는 지적도 있다.

그동안 북한은 경제적으로 대중 의존도가 절대적으로 높아 러시아와의 ‘밀월’을 과시해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하려는 전술을 취한 바 있다. 최근 2∙13합의 이후에는 북핵을 지렛대로 미국과 실질적인 관계 개선에 나서는 모습을 보여 러시아를 긴장시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국책연구기관 A 교수는 “쉽게 말해 러시아는 그동안 북한의 태도에 대해 기분이 나빴다”며 “북한이 중국을 견제하려는 차원에서 러시아의 역할을 중시했으나 최근 이 구도가 깨지면서 북핵문제 관련해 러시아의 입지가 좁아졌다”고 분석했다.

이어 그는 “북한이 중국을 우선하고 (북핵문제 관련해) 미국과의 대화를 하면서 러시아의 한반도 내에서의 영향력이 낮아지고 있다”면서 “러시아는 대북 제재 동참을 통해 북한으로 하여금 러시아의 존재감을 높이고 영향력을 키워 내려는 전략을 펼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다만 “러시아의 대북정책이 근본적으로는 변화되지 않을 것”이라면서 “시베리아횡단철도(TSR) 등 북한과의 현안 문제 등을 논의하면서 러시아는 북한에 대해 자신의 지렛대를 높이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러, 한반도 경제공동체 걸림돌 북핵 용납 안해 =러시아는 한반도 경제 공동체 건설에 많은 관심을 보여왔다.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한반도종단철도(TKR)를 비롯해 에너지 개발 문제 등 자국의 경제 발전차원에서 한반도 안보 안정을 중시해왔다.

또한, 북한 핵실험과 미사일 실험 등으로 극동지역의 안보가 실질적으로 위협받고 있다는 문제 의식도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이 지역의 안정을 지속적으로 위협하는 북한 핵문제를 더 이상 간과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대북제재에 동참했다는 것이다.

레오니드 슬루츠키 러시아 하원 국제문제위원회 부위원장이 이날 “북한의 이런(핵개발 정책) 정책은 용인될 수 없으며, 역내 안보에도 위협을 제기하고 있다”고 비판한 것에서도 이러한 시각을 읽을 수 있다.

특히 러시아는 낙후된 극동지역 개발과 북한 내 경제적 이권 확보 등을 위해 남북러 3각 경제협력에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8일 방한한 블라드미르 라크마닌 러시아 본부대사는 한국국제교류재단이 주최한 세미나에서 동북아시아 지역의 경제 협력을 강조하면서 “극동지역 국가들간의 경제 및 안보 협력은 북핵 문제 해결뿐 아니라 극동지역 안정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스베트라나 수슬리나 모스크바국제관계대학 교수도 “러시아는 이미 시장경제 국가가 됐고 이런 추세는 더욱 강화될 것”이라며 “아울러 러시아는 동북아지역 통합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라며 적극적인 조정 역할을 강조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