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의 ‘햇볕정권 대북지원의 핵(核)개발 전용 의혹’ 발언이 일파만파(一波萬波)로 확산되고 있다.
야권과 통일 단체를 중심으로 보수 본색을 드러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지만 이 대통령은 이를 정면 돌파하려는 듯 대북정책에 대한 소신 발언을 계속하고 있다.
대북지원의 핵·미사일 개발전용 의혹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과거 정권에서도 정치권의 시시비비(是是非非)가 계속됐지만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교류협력’과 ‘민족공조’라는 무늬를 씌워 일방적 지원을 계속했다.
2006년 10월 북한이 1차 핵실험을 실시한 뒤에도 노무현 정부는 한반도 정세를 안정적으로 관리한다는 명분을, 여권은 미국 책임론을 내세워 남북경협과 금강산 관광, 대북지원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북한은 올해 들어서도 7월 4일까지 총 18발의 미사일 발사와 ‘5·25’ 제2차 핵실험 비용으로 최소 7억 달러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이 심각한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도발을 진행하면서 과거 한국 정부의 무분별한 대북지원이 도마 위에 다시 오른 것이다.
이명박 정권은 출범 후 과거 대북정책과 차별화를 추구하면서 원칙과 유용성을 동시에 강조해왔다. 하지만 북한의 핵·미사일 발사 실험이 실시된 뒤에도 야권은 ‘정부의 대북강경책’이 원인이라며 공세를 취했다.
북한이 유 씨 억류와 개성공단 비용을 수 억 달러 인상해달라고 요구하는 상황에도 야권의 공세가 계속되자 대통령의 인내심에도 한계가 온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유럽을 순방중인 이 대통령은 13일 스웨덴에서 대북지원금의 핵무기 전용 의혹을 제기한 것과 관련, “우리도 북한을 도우려 했는데 결과적으로 북한이 핵무장으로 나왔기 때문에 의혹을 얼마든지 가질 수 있는 문제라고 언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은 “북한 제재에 협력해달라고 하면서 다른 소리를 내면 안 되지 않느냐”며 대북제재 공조의사를 밝혔고, “비료와 식량을 준다고 남북관계가 잘 된다고 보장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앞서 이 대통령은 지난 7일 폴란드에서 뉴스전문채널 ‘유로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지난 10년 간 북한에 막대한 돈을 지원했으나 북한 사회의 개방을 돕는데 사용되지 않고 핵무장하는 데 이용됐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고 말한 것에서 한발 더 나간 것이다.
외교·안보 부처 내에서도 과거 10년간의 대북지원이 북한 정권의 안정과 핵무장에 전용됐을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타산하는 작업들이 진행되고 있다. 때문에 향후 이명박 정부 하에서는 핵개발 전용 가능성이 있는 현금, 현물지원은 철저히 차단될 것으로 보인다.
과거 두 차례의 정상회담으로 북풍(北風) 효과를 톡톡히 누렸던 민주당과 햇볕세력들은 이러한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 “’핵 전용’을 입증할 수 있느냐”며 반발하고 있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대통령이 중도를 표방하고 있지만 수구보수의 본색을 드러낸 것”이라고 했고, 정동영 의원도 “지난 10년간 정부 차원에서 북한에 현금을 준 사실이 없었고, 모래나 광물, 노동력 등 무역결제가 대부분이었다”며 방어에 나섰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한발 더 나아갔다. 대북 식량지원에 나섰던 미국과 대북원조를 했던 중국도 북한의 핵무장을 도운 논리라며 반박에 나섰다.
그러나 햇볕주의자들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대북 현금·현물 지원의 핵·미사일 전용 의혹은 더욱 확산되는 분위기다. 정부는 대북지원 관련 통계를 최근 발표했다.
통일부와 수출입은행 등이 집계한 통계에 따르면,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간 북한에 지원된 현금은 29억222만 달러에 달한다.(김대중 정권 13억3105만 달러, 노무현 정권 15억7117만 달러 추정)
29억222만 달러는 상업적 교역이 18억3900만 달러로 가장 많았고, 금강산·개성관광 대가 5억3890만 달러, 개성공단 임금 4429만 달러, 사회문화교류 지원 4억8003만 달러 등으로 구성됐다.
여기에 현물지원까지 포함하면 그 액수는 69억 달러(약 8조원)을 넘어선다. 정부가 남북협력기금에서 지원한 비료지원과 식량차관 등이 26억7588만 달러, 금강산·개성공단 투자액이 12억2096만 달러, 사회문화교류 등까지 포함하면 총 40억5728만 달러에 달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현금·현물을 모두 계산할 경우 김대중 정부에서는 24억8835만 달러, 노무현 정부에서 44억7115만 달러가 북한에 지원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어느 정도의 규모가 핵·미사일 개발 등에 전용됐는지에 대해서는 확인이 쉽지 않다. 이는 북한 사회의 폐쇄성에 기인한다.
한 대북전문가는 “현금을 얼마나 전용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지난해 북한의 수출입동향을 분석하면 순수 현금흐름은 5억 달러에 불과하다”면서 “그렇다면 미사일 발사 비용 등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비자금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데, 그 비자금 조성에 대북 지원금이 쓰였을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 사회의 폐쇄성에 따라 현금 및 현물 지원 분배의 투명성은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실례로 과거 대규모의 식량지원조차 분배현황이 파악되지 않는다. 정부 당국자는 14일 “지원양의 0.1%도 확인하기 어렵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더구나 최근 핵·미사일 실험 전후 북한 내 경제상황도 거의 변화가 없다. 오히려 이 기간 북한은 ‘선군’을 앞세워 핵·미사일 개발을 강화했고, 이는 국제적 고립을 더욱 심화시켰다. 때문에 남한 내 대북지원이 매우 유용한 핵·미사일 등의 자금으로 쓰였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과거 정권은 북한의 개혁개방을 전제로 한 대북지원이라고 강변했지만 결국 북한은 남한의 지원정책에도 불구하고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에 총력을 기울여온 이상 관련 의혹을 잠재우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탈북자 출신 대북전문가에 따르면 쌀 등의 대북 현물지원의 현금화 과정을 짐작할 수 있다. 그에 따르면 50만 톤의 쌀이 지원될 경우 ①일단 눈속임용 극소수의 분배가 이뤄진다. ②각 당·군 등 소속 무역회사를 대상으로 현금을 각출하고 대가로 쌀을 지급한다. ③무역회사들은 이를 시장에 내다판다.
그에 따르면 현금지원의 군사전용은 더욱 쉽다. 과거 정상회담 대가의 돈을 해외 북한계좌에 송금하면 이는 여러 단계를 거친 후 조선광업무역회사(이하 조광무역) 등을 통해 북한 정권에 유입된다. 이는 김정일의 통치자금으로 유입돼 핵·미사일 개발에 이용된다.
알려졌다시피 조광무역은 노동당 39호실 산하로 미사일 및 관련기술 거래, 대량살상무기(WMD) 확산활동에 개입해 온 회사다.
마카오 소재 북한 기업인 조광무역은 지난 2003년 한국 검찰의 대북 송금 사건 수사당시 국정원이 2000년 남북정상회담 대가로 북한에 1억9천만 달러를 송금하는 통로로 활용했던 곳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이 같은 추론에도 불구하고 대북지원의 핵·미사일 전용을 증명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앞서 살펴봤듯이 해외 송금된 현금도 계좌추적이 쉽지 않고, 현물지원도 모니터링이 용이하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향후 현금·현물 지원의 투명성 확보가 필수적이라는 지적이다. 또한 전용 가능성이 큰 현금이 들어가는 창구인 각종 관광사업과 개성공단, 교류 협력 지원금은 가능한 자제할 필요성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