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식량지원, 조바심 낼 필요 없다”

이명박 정부가 대북 식량지원에 대한 ‘先요청 後지원’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가운데, 북측 대남사업 관계자들이 ‘주면 받지만 지원을 요청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남북간 줄다리기’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대북 전문가들에 따르면 북측의 통일전선부와 민족화해협의회 등 대남 관계자들은 “남측에서 식량을 준다면 안 받을 이유야 없지만, 절대 먼저 요청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고 18일 ‘연합뉴스’가 보도했다.

현재 우리 정부는 ‘先요청 後지원’라는 원칙을 거듭 밝히고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18일 “우리 정부는 ‘북에서 요청하면 검토하겠다’는 원칙에 변화가 없다”며 “대북 식량지원을 위해서는 ‘북측의 요청’이 기본 조건”이라고 밝혔다.

이에 반해 미국 정부가 17일 북한에 대한 50만t의 식량지원 계획을 공식 발표하고 이를 북한 매체들이 신속히 전하는 등 핵신고 문제의 타결을 계기로 미국의 대북식량지원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북한은 17일 미 국무부의 대북 식량지원 계획 발표 후 12시간만에 조선중앙통신의 첫 보도를 시작으로 대남방송인 평양방송, 대내 라디오 방송인 중앙방송과 중앙TV방송을 통해 이 사실을 신속히 알렸다.

특히 미국의 식량제공에 대해 북한 매체들이 공개적으로 ‘식량해결에 도움 될 것’ ‘(미북간)이해와 신뢰가 증진될 것’이라고 거론해 미국측에 대한 사의를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대미 관계 개선을 위한 북한의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또한 북한 당국의 이러한 움직임은 극심한 식량난에 시달리는 주민들에게 곧 식량이 도착한다는 ‘희망’을 주고, 북미관계가 북한 주도로 진척되고 있다는 점을 북한내부에 과시하는 효과를 노리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는 달리 북한은 우리 정부에 대해서는 고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북한의 이충복 민화협 부위원장은 최근 방북했던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에게 “남측 최고당국자가 6.15 공동선언을 이행하겠다고 선언하면 경색 국면이 풀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정일이 직접 서명한 합의문을 이명박 정부가 존중하는 입장을 보여야 경색국면의 남북관계가 해빙될 수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처럼 미북간 관계개선 움직임과는 달리 남·북한이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전문가들은 새정부가 대북 식량지원에 원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북한이 고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먼저 고개 숙일 필요는 없다는 지적이다.

유호열 고려대 교수는 ‘데일리엔케이’와의 통화에서 “우리정부는 조만간 재개될 북핵 6자회담의 진전 상황 등을 지켜보고 움직여야 한다”며 “미국이 대북 식량지원에 나서니 ‘우리도 한다’는 식의 조바심은 대북정책의 원칙도 훼손하고 북측에 끌려가게 된다”고 지적했다.

유 교수는 “이명박 정부가 공개적으로 먼저 북측에 손 내밀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북측도 당장 중국과 교류 중이고 미국으로부터 식량이 들어오기 때문에 다급해 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북한이 6·15, 10·4 선언 이행을 요구하는 것에 대해 “김정일이 사인한 문서에 대한 존중을 받겠다는 의지인 동시에 경제적 이득도 고려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우리 정부는 유연하게 대응하면서도 ‘요청하면 지원한다’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충고했다.

송대성 세종연구소 안보연구원도 “이명박 정부가 실용과 생산성, 국민의 합의 등을 대북관계의 원칙으로 밝힌 만큼 북측의 성의있는 답변을 기다려야 한다”면서 “우리 정부가 남북관계에 조바심을 내 먼저 나선다면 원칙을 스스로 허물게 된다”고 강조했다.

송 연구원은 특히 “북측의 고자세가 변화하지 않는 조건에서 대북지원을 재개할 경우 북한은 남한 정부를 더욱 우습게 알 것”이라며 “분배의 투명성, 제도적인 시스템이 보장되는 조건에서 지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북한은 미국의 식량지원으로 다급한 불을 일단 껐다”면서 “북한 입장에서는 우리 측이 제기하고 있는 ‘요청이 있으면’이라는 단서를 ‘전제조건’으로 인식, 불쾌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윤 교수는 이어 “북한은 우리 측이 조만간 식량지원을 재개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을 것”이라면서 “우리 측도 식량지원을 북핵문제나 남북관계에 ‘지렛대’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윤 교수는 끝으로 “북한 측이 요구한 6·15공동선언 등에 대한 이행 요청 등에는 우리 정부가 답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