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라이트의 세상읽기

1987년의 6.29 선언과 1990년대 초의 소련권 붕괴는 한반도 정치에 엄청난 충격을 던져 주었다. 그것은 한마디로 2개의 시대조류의 종언을 의미했으며, 그것을 대체할 새로운 조류를 요청하는 사태였다. 역사의 무대에서 ‘과거’로 넘어가기 시작한 2개의 시대조류란 물론 스탈린주의적 전체주의와 권위주의적 통치원리를 말한다.

권위주의적 근대화 모델은 국민소득 70달러의 한국을 반세기도 못 되는 기간에 세계 10대 교역국으로 끌어 올렸다. 그러나 경제규모와 시민사회가 확대되면서 권위주의 방식으로는 더 이상 선진화되고 세계화되는 한국의 정치와 경제를 운영하기 어렵게 되었다. 6․29 민주화 조치의 의미는 바로 “이제 그런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는 고백인 셈이었다.

스탈린적 볼셰비즘과 전체주의는 무자비한 공업화를 추구하다가 이른바 ‘명령경제(command economy)’와 ‘수용소(gulag) 군도’의 모순 때문에 74년 만에 ‘빈곤 사회주의’의 막을 내렸다. 그렇다면 한반도의 새로운 선택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그 대답을 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는 ‘작지만 알뜰한 정부, 자유화된 큰 시장, 성숙한 시민사회’ 또는 ‘자유주의적 선진화’에서 찾고 있다.

김일성-김정일의 수령 독재와 아류 스탈린주의는 ‘주민 300만 명 아사(餓死)’와 ‘요덕 수용소’로 귀결되었다. 이에 비한다면 유신시대와 신군부 시대를 거치며 온갖 진통을 겪기는 했지만, 대한민국 58년사는 비약적인 성공의 역사였다. 이 역사적인 실증을 보더라도 김일성-김정일 모델은 폐기의 대상이고, 한국의 모델은 업그레이드의 대상이다. 결국 한반도의 미래는 보다 업그레이드된 선진한국이 이끌어 나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한반도 프로젝트 4단계

그러나 그 막중한 소임을 담지한 한국은 지금 불행하게도 김일성-김정일을 추종하던 구좌파 386세대의 반미연북(反美聯北), 좌파적 국가주의, 하향평준화, 홍위병 포퓰리즘, 시장 적대적 정책에 의해 뒤흔들리고 있다. 이래서 우리의 새로운 한반도 프로젝트는 순서상 (1)한국 우파의 업그레이드 (2)구좌파 퇴출(정권교체) (3)자유주의 선진화 (4)북한 주민의 행복추구 지원으로 정리해도 무방할 것이다.

신지호 박사의 글 모음도 전체적으로 그 같은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가 대표로 있는 자유주의연대 등 뉴라이트 그룹들은 1년 반 전에 발족한 이래 일관되게 그러한 청사진을 제시해 왔으며, 그들의 새로운 한반도 프로젝트가 표출하고 있는 담론들은 많은 목마른 국민들의 공감을 샀다. ‘좌파는 진보, 우파는 수구’라는 도식적인 선전선동에 주눅 들고 위축되었던 ‘비좌파’ 진영으로서는 참으로 오랜만에 공세적이고 진취적이며 청신(淸新)한 우파 담론과 우파 운동가들의 출현을 반겼던 것이다.

그들이 추구하는 한국 우파의 업그레이드는 산업화 세력의 성공사례와 공적을 충분히 인정하면서, 그러나 이제는 한국 우파의 바통(baton)도 새로운 발상과 새로운 세대의 손으로 넘겨져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발상이란 물론 21세기 지식정보화 시대에 맞는 ‘디지털 사고’이며, 그것을 그들 뉴라이트 그룹들은 통틀어서 ‘자유주의, 자유화, 애국적 세계주의’라는 키워드들로 표출하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세대란 40대 이하의 젊은 층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무조건 “모든 나이 먹은 사람들은 구보수다”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젊은 구보수도 있을 수 있고, 나이 먹은 뉴라이트도 있다는 것이다.

신지호 박사는 이 글들을 통해 자신의 위상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1980년대에 이른바 ‘민중민주(PD)’ 계열 운동가로서 ‘노동계급의 혁명’을 꿈꾸다가 1990년대 초에 이르러 그는 <고백>, <당신은 아직도 혁명을 꿈꾸는가?> 라는 글을 발표하고 전면적인 전향을 선언했다. 그러면서 그는 19~20세기에 갇혀있는 한국의 이념지형을 ’21세기적 자유’의 대안으로 전환하려는 새로운 이론적 실천적 작업에 투신했다.

그는 유신 및 신군부의 대안을 ‘위수김동’ ‘친지김동’에서 찾으려 한 주사파, 그리고 주사파가 기승하는 한 “우파 국민이 우리를 찍어 줄 수밖에 더 있겠느냐?”하며 느긋해 하는 한나라당 ‘영남 기득권’이 서로 적대적 공생관계와 독과점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한, 2007년에도 우파 승리의 기회는 보장되기 어렵다고 본다. 그래서 그는 2007년 대선을 반드시 ‘올드레프트 대 뉴라이트’의 대결구도로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자기 희생과 용기 없는 일부 ‘보수’는 문제

실제로 2002년에 좌파정권을 탄생시켰던 40대와 20대는 최근 오른쪽으로 돌아서고 있지만, 그들이 2007년에 한나라당으로 고스란히 이동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한나라당과 우파가 스스로 혁신하지 않을 경우 2007년에 또다시 “옛날 세력을 복귀시킬 수는 없다”는 선택을 할 확률이 높다. 그 누군가가 범좌파의 통합대표로 나서서 “나는 중도적 진보다. 이런 나를 찍을 것인가, 한나라당 등 왕년의 구권력을 되살릴 것인가?”라고 물었을 때, 젊은 유권자들은 아마도 틀림없이 ‘범진보’ 후보를 찍을 것이다.

이럼에도, 일부 ‘보수’는 아직도 여러 가지 퇴영적인 모습들을 보여 주고 있다. 우선 재벌들은 어떠한가? 대기업이 정치권력 앞에서 약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물론 이해할 만하다. 정치권력이 기업에 대한 모든 규제 권한을 쥐고 있고, 재벌기업일수록 약점을 많이 잡혀 있는 까닭이다. 그래서 그들은 누가 약점을 들이대기만 하면 막대한 헌납금을 내놓고, 좌파 단체들의 공갈 협박에 뒷돈과 ‘후원금’을 낼 수밖에 없다. 재벌은 결국 자본주의의 견인차이자 최대 수혜자이면서도 그 체제를 지키는 역할을 하기는커녕, 이제는 좌파, 심지어는 김정일 눈 밖에도 나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는 만년 기회주의자들의 경우다. 이들은 자유당 정권, 박정희 정권, 전두환 정권을 통해 항상 혜택을 누리며 양지에만 있었던 사람과 집단들이다. 그들은 모든 이득을 보았으면서도 자녀의 국방 의무 등 노블레스 오블리제는 실천하지 않으려는 자들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지금의 좌파 세상에서는 또 ‘나도 개혁적 보수’라고 말하면서 교묘하게 끼어드는 얌체족이다.

또 하나의 부류는 한나라당 ‘기득권파’처럼 웰빙 체질에 절어 ‘정권교체 여하 간에 내 낭탁’에 더 몰두하는 소승적 안일분자들이다. 이들은 항상 무임승차를 꾀하며 남이 대신 싸워 주기를 바라면서, 자기 한 몸을 던져야만 정권과 나라를 되찾을 수 있다는 영원한 철칙을 알지도 못할 뿐더러, 그럴 용기도 용의도 없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이비 보수로는 수십 년 간 내공을 쌓아 온 좌파를 이기기는 고사하고,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직장에 나가 무역고를 한 단계 높이기 위해 비지땀을 흘린 일선 산업전사들과 최전방에서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킨 국립 현충원 장병들과 열사들의 희생을 헛되이 할까 걱정이다. 우파 혁신이란 바로 이런 ‘얌체, 안일’의 손에서 보수의 명찰을 거두어들이고, 그 대신 전투적, 진취적 신우파의 리더십을 확립하자는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자유주의는 그것이 갖는 역사적 공로와 사상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빨리 전통주의와 급진주의, 유신론적 근본주의와 무신론적 근본주의, 파시즘과 볼셰비즘 사이에서 부당하게 무시당하곤 했다. 특히 한반도에서 자유주의는 성리학, 식민주의, 혁명적 민족주의, 사회주의, 권위주의, 개발독재, 수령 독재에 밀려 한 번도 제대로 햇볕을 쐰 적이 없다. 그러나 북한의 김정일 수령 독재와 남한의 좌파 국가주의가 판을 치는 지금의 한반도에서 자유주의는 비로소 처음 강력한 대항력이자 유효한 대안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한반도에서 자유주의는 이제 시작

모든 사상이 그러하지만 자유주의도 영원하고 유일무이한 진리일 수는 없다. 그리고 자유주의 스스로도 영원하고 유일무이한 진리임을 자처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자유주의는 전통사회에서 근대사회로 넘어가는 데는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불가결한 이정표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도 적잖은 사람들이 자유주의가 내세우는 ‘개인’, ‘자율’, ‘개방’, ‘자발적 책임의식’, ‘근대성(modernity)’의 가치를 제대로 한 번 소화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그저 타성적으로 “자유주의는 지났다”고 말해 온 것이 지금까지의 우리 주변의 웃지 못 할 정치적, 사상적 풍토였다. 그러나 자유주의는 지난 것이 아니라 한반도에서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천황제적 수령 독재, 전체주의, 집단주의, 국가통제, 획일주의, 관료주의, 국수주의, 쇄국주의, 감정적 민족주의의 폐쇄성으로부터 북한을 해방시키고 대한민국을 업그레이드 시키지 않고서는 우리는 결코 한반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발전을 이룩할 수 없다. 그리고 이 시대적 작업의 강력한 견인차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 늦었지만 이제 막 찾아오기 시작한 자유주의의 몫일 것이다. 이것만이 유일한 대안은 아니겠지만, 자유주의는 적어도 우리 사상사의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를 메울 불가결한 요소가 아닐 수 없다.

자유주의 이론가, 논객, 운동가인 신지호 박사가 이 책에서 하고자 한 말들은 바로 그것이다. 많은 독자들이 읽고 한반도의 발전된 미래를 위해 함께 고민할 수 있기 바란다.

류근일/ 본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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