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이 1972년 낚시질을 하면서 ‘김일성 주의(주체사상)’ 이론을 구상했다고 선전하고 있는 ‘무포 혁명사적지’가 지난 3일에 발생한 산불로 전소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내부소식통은 27일 ‘데일리엔케이’와 통화에서 “지난 3일 오후 1시경에 ‘무포 혁명사적지’가 산불로 완전히 불타버렸다”며 “이번 산불은 사적지와 가까운 곳에서 농사준비를 하던 사람들이 지난해 농사짓고 버린 마른 감자줄기에 불을 지르면서 발생했다”고 전했다.
‘무포 혁명사적지’는 양강도 삼지연군 무봉구에 위치하고 있으며 김일성이 생전에 산천어 낚시를 즐겼고, 1972년 김정일이 그곳에서 낚시질을 하면서 ‘김일성 주의’ 이론을 구상했다는 ‘무포 낚시터’와 김일성이 빨치산 활동을 하며 숙영했다는 ‘무포 숙영지’가 있다.
소식통에 따르면 ‘무포 혁명사적지’에는 사적지 관리인들을 비롯해 몇 안 되는 사람들이 살고 있고, 사적지 주변은 무장한 보안원(경찰)들이 24시간 경비근무를 서는 등 경계가 엄한 것으로 전해졌다.
소식통은 그러나 “산불이 발생하자 무봉노동자구와 삼지연 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동원돼 진화 작업에 나섰으나 밤9시경에 비가 내려서야 다행히 산불을 끌 수 있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화재 때문에 양강도 도당이 5일 긴급대책회의를 열고, 도 안의 모든 공장기업소 노동자들을 총 동원해 화재 현장 정리와 주변 나무심기와 복구 작업을 할 데 대한 지시를 내렸다”면서 “8일부터 삼지연군과 혜산시 공장, 기업소들에서 인원들을 뽑아 무포사적지에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현지에 보내는 동원인원들에게는 군량미로 보관 중이던 ‘대한민국’ 지원 쌀과 강냉이(옥수수)를 공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소식통은 “지난 3월 27일 삼지연군에서 군내 간부들의 ‘사상투쟁회의’가 있었다”면서 “이 회의에서 군당 조직부 신소처리과장, 선전부장, 선전부 연구실부부장과 선전부, 민방위부 지도원이 해임 철직(撤職) 됐다”고 말했다.
사건의 발단은 선전부 연구실 부부장의 아들이 동무들과 함께 한 학생을 집단 구타해 병원에 입원하게 만드는 사건이 발생했고, 이에 피해 학생 학부모가 군당에 찾아가 연구실 부부장에게 사과와 피해보상을 요구했지만 ‘어데라고 함부로 찾아다니고 하는가? 다 너의 아들이 똑똑지 못해 그렇게 됐다’고 큰 소리를 치면서부터 시작됐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분노한 피해자의 학부모는 즉시 삼지연에 와있던 중앙당 과장을 찾아가 ‘연구실 부부장의 아들이 한국영화 CD 수십 장을 가지고 학급동무들을 모아놓고 밤늦게까지 시청했다’고 신고했고, 다른 간부들의 자녀들도 이런 현상이 많다는 것을 증언했다.
특히 이 학부모는 신고를 접수한 중앙당 과장이 사건을 숨기지 못하도록 중앙당과 도당, 양강도에 주둔하고 있는 비사그루빠(비사회주의 검열그룹)에 동시에 신고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치면서 중앙당 과장이 사건을 축소하지 않고 관련자들에게 엄격한 징계를 내릴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사건이 중앙당에 보고되면서 중앙검찰소와 비사그루빠 검열대가 삼지연에 대한 집중적인 조사를 벌였고, 상당수의 간부들이 한국영화 CD를 소장하고 있거나 시청했다는 증거를 확보했다. 이 중 해임된 5명의 군당 간부 자녀들은 동무들에게 한국영화 CD를 내돌려 집단으로 시청하게 한 혐의를 받았다.
소식통은 “당의 목소리를 전달해야 할 선전부 간부들이 먼저 앞장서 한국영화들을 봤다”며 “선전부장과 연구실 부부장, 선전부 지도원이 해임, 철직되면서 군당 선전부를 몽땅 물갈이 했다”고 말했다.
소식통은 “해임된 군당 간부들은 모두 출당돼 포태협동농장과 리명수림산에 쫒겨갔다”면서 “한국영화 알판(CD)을 돌린 죄로 삼지연 학생소년궁전 지도원이던 선전부장의 딸과 삼지연 답사숙영소 계산원인 신소과장의 딸은 17세가 넘어 ‘노동단련대’ 처벌을 받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