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음력설 ‘3일 휴식’ 지시…’우리민족끼리’ 차원

▲ 북한잡지에 소개된 윳놀이 풍경

민족최대의 명절인 음력설이 왔다. 설을 쇠러 귀향 길에 오른 차량들이 도로를 꽉 메우고, 상점마다 부모와 친척에게 드릴 선물세트를 마련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북한도 2003년부터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음력설에 3일 동안 쉰다고 한다. 2000년 탈북한 기자는 그 이후의 설풍경에 대해 잘 모른다.

그러나 북한 선전매체들이 “음력설을 양력설보다 더 크게 쇠게 하라”는 김정일의 지시를 소개해 북한의 음력설이 옛모습을 다시 찾는 듯하다. 봉건주의, 복고주의를 뿌리채 뽑는다고 민족명절까지 없앴던 북한당국이 다시 복귀시킨 배경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남한과 교류가 활발해진 2000년 이후 북한당국은 남한의 민속명절과 궤를 맞추려는 일련의 움직임이 나타났다. 북한이 내놓은 ‘우리민족끼리’에 목적을 둔 것이다.

음력설도 봉건 잔재

북한에서 설, 단오, 추석 등 민속명절이 사라진 것은 1967년 7월 “봉건잔재를 뿌리뽑아야 한다”는 김일성의 지시가 내려진 이후부터다. 민족최대의 명절은 민속명절 대신 김일성ㆍ김정일의 생일로 바뀌었다.

당시 민속명절을 폐지한 동기는 대략 이러했다. 1967년 당 제4기 15차 전원회의에서 부수상 겸 노동당 조직비서였던 박금철, 선전비서 김도만이 숙청되었다. 그후 “그 자들이 뿌려놓은 지방주의, 복고주의를 뿌리빼야 한다”며 민속명절 폐지는 물론 봉건의상, 병풍, 팔찌 등 패물들까지 회수했다.

이유는 ▲당의유일사상체계와 인연이 없다. 즉 지방주의, 족벌주의 등 종파의 온상으로 된다 ▲ 관혼상제(冠婚喪祭)를 간소화 해야 한다. 음식마련에 드는 비용과 시간 낭비다 ▲ 민속명절이 종교•미신행위에 귀착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설날이 오면 나이 든 사람들은 달력을 바라보며 “설에 제 지내고, 추석에 산에 가는 건 대대로 내려온 민족전통인데…” 하며 서운함을 드러내곤 했다.

그후 1989년부터 음력설과 단오, 추석을 ‘3대 민속명절’로 규정하고 쇠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그러나 그냥 하루 휴식일로 여겼을 뿐, 별로 명절 의미를 부여하지 못했다.

주민들은 명절을 어떻게 쇠나?

‘음력설을 잘 쇠게 하라’는 것은 김정일의 방침이다. 이를 관철하기 위해 북한당국은 집체적으로 명절 분위기를 세운다. 중앙TV와 방송은 ‘음력설은 우리민족의 전통명절’이라며 음력설의 유래와 풍속에 대해 소개한다.

그래도 명절분위기가 서는 것은 평양시다. 북한도 설을 쇤다는 것을 내외에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직장과 각 단체들에서 조직적으로 모여 예술공연과 민속놀이, 민속경기를 벌인다. 평양시 학생들은 학교별로 모여 대동강과 통일거리에서 연놀이와 팽이치기를 한다. 그러나 자연스러운 분위기는 아니다.

가족들끼리는 대동강 유보도 걷기, 기념촬영 등 다채로운 활동을 한다. 지방에서는 직장별로 씨름, 밧줄 당기기와 같은 경기를 진행한다. 우승한 단위에는 상으로 돼지나 염소와 같은 짐승들을 준다. 경기에서 우승한 단체는 상으로 받은 가축을 끌고가 단체식사용으로 처분한다.

가족들의 명절분위기는 사뭇 자연스럽다. 아이들이 아침에 부모님과 친척들에게 세배를 한다. 세뱃돈 주는 풍습이 사라졌다가, 요즘은 ‘공부를 잘하라’며 쌈짓돈을 털어 보태주기도 한다. 보통 남자들은 장기를 두고, 여성들은 윳놀이를 한다.

그러나 일반 주민들이 쇠는 명절은 과거와 별로 차이가 없다.

2005년 5월에 남한에 입국한 임현수(가명, 25세)씨는 “음력설에는 명절공급은 하지 않는다. 명절날 아침에 두부국이나 끓여먹고 친구네 집에서 장기를 두지 않으면, 전깃불이 오면 TV시청을 한다”고 말했다.

지금은 2.16일(김정일 생일)과 4.15일(김일성 생일)에만 술 1병씩 주고 음력설에는 공급이 없다고 한다. 각자 갖고 있는 것 만큼 쇠고, 일반 주민들은 장마당과 산에 올라가 나무를 하는 등 명절의 의미를 갖지 않는다고 한다.

한영진기자 (평양출신 2002년 입국) hyj@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