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김정일 건강 이상설로 인해 세간의 관심이 북한 후계구도에 집중되고 있다.
국내 언론들은 북한이 앞으로 국방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집단지도체제’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김정일 유고시 국방위원회 중심의 ‘집단지도체제’ 가능성은 매우 낮은 편이다.
국방위원회는 사회주의 헌법 제103조에서 그 역할과 기능이 다음과 같이 규정돼 있다.
“국가의 전반적 무력과 국방건설 사업을 지도하며, 국방 부문 중앙기관을 내오거나 없애고, 중요 군사간부들을 해임 또는 임명, 군사 칭호를 제정하며 장령(장성)이상의 군사칭호를 수여한다. 또한 북한의 전시상태와 동원령을 선포하고 국방위원장은 일체의 무력, 즉 인민무력부 산하의 정규군을 비롯하여 로농적위대, 교도대, 붉은청년근위대 등을 지휘 통솔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국방위원회의 이런 막강한 권력 때문에 김정일 유고시 집단지도체제를 이끌 수 있는 유력한 집단으로 주목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기능에도 불구하고 과연 김정일 유고시 권한을 행사하게 될지는 의문이다.
우선 김정일의 유고 또는 사망의 경우, 즉 김정일이 없는 국방위원회가 북한 권력구조에서 어떤 지위에 계속 있을지가 문제다.
국방위원회가 군 간부들의 선발, 임명권을 갖고 있다고 하지만 국방위원회 위원들은 형식적으로 최고인민회의에서 선출한다. 하지만 최고인민회의는 이미 노동당이 미리 작성해서 김정일의 승인을 받은 문건을 무조건 가결하는 형식상의 최고헌법회의에 지나지 않는다. 최고인민회의가 당의 ‘거수기’라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 만큼 김정일 유고시 국방위원들의 선출 권한은 노동당 조직지도부가 주도하게 된다. 지금도 당 조직지도부에서 차기 국방위원 명단을 작성하여 사전에 김정일에게 올리면, 김정일이 수표(결재)하여 최고인민회의에 내려보내면 최고인민회의에서 거수기 노릇을 해서 결정한다.
이같은 사실은 현 김정일 체제의 ‘기초 중의 기초’에 해당한다. 이런 사실을 모르면 향후 김정일 체제의 향방을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또 국방위원회는 따로 청사나 사무실을 갖고 활동하는 상설조직이 아니다. 하부 조직체계도 갖고 있지 않다. 각 위원들은 불의의 상황이나 전략적 대응이 필요할 때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일정한 장소에 모여 의제를 논한다. 여기에서 결정해서 내각, 최고인민회의에 전달할 뿐이다. 즉 김정일 지시에 따라 모여라 하면 모이고, 흩어져라 하면 흩어지는 것이다. 국방위원회 회의도 김정일이 정기적으로 제대로 소집하는지 조차 사실상 의문이다.
이와 관련, 북한 대외보험총국에 근무하다 2004년 탈북한 김광진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데일리엔케이와의 통화에서 “이번 9.9절 행사 때 김정일에게 올린 ‘충성편지’ 순위도 노동당이 제일 먼저 거명되었다”면서 “김정일이 없는 국방위원회는 아무런 존재가치도 없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인민보안성(경찰) 중요 부서에서 근무한 전경식(가명) 씨는 “장성택이 당 행정부장이 된 후 지난해부터 인민보안성이 군관(장교)들도 감시하고 있다”며 “국방위원회 위원들도 결코 감시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군 간부들이 두세 명 모여 토론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다음으로,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와 국방위원회 사이의 지위와 역할에 관한 문제가 있다.
국방위원회 주요 구성원인 조명록(군 총정치국장)이나 김영춘(국방위 부위원장) 등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들이다. 국방위원회가 국가기관인 국가보위부나 인민보안성도 관할하고 있지만, 실제 권한은 노동당 조직지도부(김정일)와 행정부(장성택)가 모든 간부 인사권과 운영권을 갖는다.
또 앞으로 발생할지 모를 급변사태와 관련, 중요하게 관찰해야 할 포인트인 호위총국(김정일 경호부대)이 국방위원회가 아닌 당 중앙군사위원회에 소속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국방위원회는 실제 권한 행사보다 김정일의 명령을 대행하는 기구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북한에 유명무실한 최고인민회의가 있듯이 국가기관과 의회에 대하여 김정일의 지시와 명령를 행정적으로 하달하는 기구로서 국방위원회가 존재한다고 보면 될 것이다. 김정일이 없는 국방위원회가 아무 의미없는 존재가 될 것이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국방위원회가 김정일 유고시 권력의 핵심이 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가 김정일 가족중 아무도 국방위원회에 개입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장성택이나 김정남, 김정철 등 가계(家係) 인물들은 국방위원회와 거리가 있으며, 권력 공백사태시 이들은 노동당 직책에서 군부의 권한을 최소화할 것으로 관측된다. 결국 김정일 없는 국방위원회는 빈 껍데기가 될 가능성이 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