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도 국제형사재판소(I C C) 제소 가능할까?

국제형사재판소(ICC)가 4일 현직 국가원수로는 최초로 수단의 오마르 알 바사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함에 따라 반(反)인륜적 범죄를 자행하고 있는 독재통치자들에 대한 처벌하라는 국제적 여론이 확산될 전망이다.

지금까지 보스니아계 무슬림 20만명을 학살한 ‘발칸의 도살자’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슬라비아 대통령 등 4명의 전직 국가지도자가 반인륜 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국제재판장에 선 바 있다.

또한 최근에는 1970년대 캄보디아에서 170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크메르 루주 핵심인사들에 대한 전범재판이 시작되는 등 국제 전범들에 대한 심판이 속도를 더하는 추세이다.

국내외 인권 전문가들은 바시르 대통령이 다르푸르 사태와 관련해 기소된 경우와 같이 북한 정치범수용소에서 자행되는 반인륜적 행위의 당사자인 김정일도 ICC에 제소가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와 관련 하태경 열린북한방송 대표는 최근 발간된 ‘시대정신’(2009년 봄호)에 게재한 ‘국제법을 통한 북한인권개선 전략’이란 논문을 통해 북한 인권문제에 국제사법 체계가 개입할 명분이 충분히 있다고 지적했다.

하 대표는 “지난 2002년 ‘로마협정’에 의해 설립된 ICC는 당사국의 국내 사법체계에 의한 재판권 행사에 보충적 관할권만을 갖지만 해당국의 사법체계가 독립적이고 공정하게 운용되지 않는다면 개입할 명분이 충분히 있다”고 주장했다.

하 대표에 따르면 북한인권범죄 중 이론적으로 ICC가 관할 가능한 건은 납북자, 국군포로 문제와 정치범 수용소 문제 등이다.

◆납북자, 국군포로 문제=ICC는 로마규정을 비준한 국가 내에서 범죄를 일으킨 경우에 기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국, 일본은 로마규정을 비준한 국가이기 때문에 한국의 납북자, 국군포로, 일본의 납치자는 기소 근거가 된다.

납북자의 경우 로마규정 제7조 1항 (i) 강제실종에 해당하고, 국군포로의 경우도 정치범 수용소에 있었거나 고문을 받았다면 반인도 범죄요건에 충족된다. 그러나 납북자, 국군포로문제가 기소요건을 충족하더라도 누가 기소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는다.

원론적으로 ICC 기소 주체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준국 정부, ICC 검사관(Prosecutor) 세 주체가 있다. 그런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김정일을 기소하는 것은 중국, 러시아의 반대가 예상돼 힘들고, 한국, 일본 정부가 기소하는 것은 대북관계에서 큰 정치적 부담을 져야 한다.

ICC 검사관이 직접 기소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 경우 문제는 ICC 검사를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 인데, 이를 위해 국제적으로 북한인권에 대한 여론을 적극적으로 환기 시킬 필요가 있다.

◆정치범수용소 문제=정치범수용소는 로마규정의 제7조 ‘반인도적 범죄’에 해당한다. 수용소에 끌려가는 사람들이 겪는 ‘강제실종’ ‘강제 추방 또는 이주’ ‘신체적 자유의 심각한 박탈’ ‘고문’ ‘강간’ 등이 모두 반인도 범죄에 해당한다.

그런데 정치범수용소는 북한 안에서 발생한 문제이고 북한은 로마규정 가입국이 아니기 때문에 ICC가 재판 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는 범죄요건 중 a(가입국 영토 내 발생한 범죄)와 b(가입국 국민에 범죄가 발생한 경우)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범 수용소 문제를 ICC에 기소할 수 있는 유일한 경우는 ICC 관할권 요건 c(특정 범죄에 대해 재판소가 관할권을 인정하는 경우)를 적용하는 것이다.

즉 로마규정에 정식으로 가입하고 있지는 않으나 특정한 범죄에 대하여 재판소의 관할권을 인정하는 선언을 한 경우이다. 이는 ICC 검사관이 사안의 심각성을 인정하고 직접 기소하는 경우를 말한다. 이럴 경우는 정치범수용소도 ICC에 기소될 수 있다.

◆평화에 대한 위협=ICC에 기소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경우는 바로 안전보장이사회가 어떤 범죄에 대하여 유엔 헌장 7장의 ‘평화에 대한 위협’이라고 판단한 경우다.

일반적으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a)광범위한 인도주의 및 인권문제 b)상당수 난민의 발생 c)마약 밀매 등 심각한 국경 문제 d)정부 조직과 무장단체 또는 무장한 민족단체와의 분쟁 e)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의 전복 등 다섯 가지 조건 중 세개 이상을 충족시킨 경우 ‘평화에 대한 위협’으로 판단하고 문제해결에 관여한 바 있다.

원칙적으로 볼 때 북한은 대량아사를 초래한 식량정책, 정치범에 대한 처우(a), 약 10년동안 북한 주민 40만명 가량의탈북(b), 마약 제조 및 밀매, 위폐 제조 및 돈세탁(c) 등 세 가지 요건에 해당한다.

최근 10년간 탈북자가 줄고 마약밀매도 줄어든 상황에서 ‘평화에 대한 위협’으로 북한을 제소할 명분은 10년전에 비해 약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이 계속해서 유엔 총회의 북한인권결의안을 거부할 경우 유엔 내부에서 안전보장이사회로 북한 문제를 넘기자는 주장이 강화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