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이 양강도 삼지연군을 방문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8일 전했다. 북한 당국은 이곳이 김일성 혁명활동 ‘성지(聖地)’이자 김정일 탄생지 백두산 밀영(密營)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일성·김정일 우상화를 통해 ‘혈통계승’ ‘삼대에 이은 백두정신’을 강조함으로써 김정은 체제 안정성을 공고히 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통신에 따르면, 이번 방문에서 김정은은 “우리 장군님(김정일)께서 한평생 높이 추켜드시였던 혁명의 붉은 기를 절대로 놓지 말고 장군님의 염원대로 이 땅에 부강번영하는 인민의 낙원, 사회주의 강대국을 반드시 일떠세우자”고 말했다.
또 김정은은 눈이 내리는 가운데 김정일 동상을 바라보며 “장군님(김정일)과 눈물 속에 영결하던 날에도 눈이 내렸지”라며 “이 땅에서 어떤 기적이 창조되는가를 (김정일이) 보시였으면 얼마나 좋겠는가”하고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주민들을 대상으로 체제의 정당성과 충성심 고취를 유도하기 위해 선대(先代)의 향수가 묻어 있는 삼지연군의 공간적 속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데일리NK에 “현재 김정은이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상징 조작’을 통해 피지배자들의 철저한 복종을 이끌어 내고 정치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 뿐”이라고 말했다. 북한에서 김씨 일가의 독재체제가 구축된 이후 이른바 ‘백두혈통’은 김정은의 권력 유지를 위한 사상적 기반이고, 김정은은 이를 강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지적이다.
오 연구위원은 이어 “피통치자가 정치권력을 무조건적으로 신성시하고 장엄하며 칭찬할 만한 것으로 느끼고 예찬하는 비합리적인 상황’을 구축하기 위해 다양한 상징조작(국가적 영웅 이야기, 국가기념일, 국기, 제복) 등의 형식을 활용하고 있다”면서 “체제 안정성을 담보해야 하기 때문에 김정은 입장에서는 양강도와 삼지연군은 실제 상황과는 별개로 북한에서 잘 사는 지역이 돼야 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 고위 탈북민은 “양강도를 포함한 자강도 등의 국경 지역은 북한에서 상당히 낙후된 곳이다. 이 시점에 양강도를 특별히 부각시킬 이유가 없다”면서 “우상화 작업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백두혈통을 강조하는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정은의 삼지연군 방문과 관련, 당의 중요한 정책 결정 혹은 선언이 임박해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과거 김정은이 장성택 숙청을 앞두고 백두산혁명전적지를 방문했던 것처럼, 중대한 정치적 결단에 앞서 ‘백두혈통의 발원지’인 삼지연군 현지지도를 강행했다는 지적이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과거 장성택을 처형하기 전에 김정은이 삼지연군에 다녀왔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면서 “신년사에서 나올 중요한 내용 혹은 향후 김정은의 결정이 백두산 정신에 따른 결과물이라는 것을 각인시키기 위해 삼지연군을 방문할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한 안 소장은 “장성택의 처형을 목격했던 북한 군부와 지도 계층에게 김정은의 삼지연군 방문은 일종의 공포일 것”이라면서 “과거의 사실을 상기시키며 체제 결속을 위한 행보일 수 있다”도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