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건설質’ 강조하면서 ‘속도전’ 포기못하는 이유?

북한이 연일 건설 분야에서의 질(質) 확보를 강조하면서도 지난 5월 평양 고층 아파트 붕괴 원인으로 지적됐던 ‘속도전’를 지속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는 북한 식(式) 속도전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김정은 시대 새롭게 등장한 ‘조선속도’을 관철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노동신문은 지난달 30일 ‘릉라도 5월1일 경기장’ 관련 군민궐기모임에서 보고자와 토론자들이 “어머니당의 인민관, 후대관을 심장에 새기고 군민협동작전의 위력으로 ‘조선속도’ 창조의 불길을 더욱 세차게 지펴올릴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신문은 또 ‘조선속도’를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생겨난 ‘시대어’라면서  “마식령속도에 이어 연이어 창조되고 있는 속도로 한 개 지역, 한 개 부문에 국한된 속도가 아니라 마땅히 조선의 이름으로 불리울 수 있는 새로운 속도”라고 소개했다.



▲북한 노동신문은 지난달 24일 평양 위성과학자거리건설장의 모습을 게재했다. 건설장에는 ‘위성과학자거리건설을 당창건 기념일 전으로 무조건 끝내자’는 구호가 적혀있다. / 사진=노동신문 캡처

20일자 신문에 따르면 김정은은 특히 평양 위성과학자거리를 현지지도하며 “건설에서 첫째도 둘째도 질(質) 보장에 선차적인 관심을 돌려야 한다”면서 “천년책임 만년보증의 구호 밑에 건축물을 백점, 만점까리로 완성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면서 김정은은 “당창건 기념일(10.10)까지 완공하는 것은 당에서 과학자들과 한 약속”이라면서 모든 단위에서 대상별, 단계별 공사 과제를 일정대로 밀고 나가 공기(工期)를 맞출 것으로 독려, ‘속도전’에 대한 강조도 빼놓지 않았다.

지난 5월 평양시 평천구역 아파트 붕괴 사건 후 김정은은 “만사를 제쳐놓고 구조현장에 나가 구조현장을 지휘, 피해가 빨리 가시도록 하라”고 지시했다고 북한 매체가 일제히 전했다. 김정은이 ‘건설에서의 질’을 강조하면서 건설 사고에 대비하는 듯 보였지만, 붕괴의 일차적 원인이라 할 수 있는 ‘속도전’은 연일 강조하는 모순을 보이고 있다. 



▲북한 노동신문은 지난 5월 18일 평양시 평천구역의 살림집(주택) 붕괴 소식과 당 간부가 주민들 앞에서 고개 숙여 사과하는 사진을 공개했다. / 사진=노동신문 캡처

북한 당국이 ‘건설의 질’을 강조하면서도 김정은 시대의 ‘시대어’인 ‘조선속도’를 계속 내세움에 따라 제2의 평천구역 아파트 붕괴 사건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정은이 눈에 보이는 성과만 강조하면 할수록 부실공사로 이어져 심각한 붕괴사고는 필연적이라는 것.

탈북자들은 이런 상황을 북한 당국이 모르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럼에도 건설자재가 부족한 북한의 현실에서 김정은이 ‘질’과 ‘속도전’을 강조하는 모순된 행태를 보이는 것은 리더십 강화와 업적 쌓기에 대한 조급함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고위 탈북자는 1일 데일리NK에 “속도전은 김일성 때부터 북한식 사회주의체제의 우월성을 선전하기 위한 선전물”이라며 “붕괴사고가 또 발생한다고 해도 김정은 시대 새롭게 등장한 ‘조선속도’를 포기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민심을 확보하고 체제 안정화를 위해서라도 주민들을 위한 성과를 어떤식으로든 보여줘야 하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북한에서는 대규모 건설이 진행되는 데 필요한 철근이나 시멘트 등의 자재가 제때 공급되지 않고 공급되더라도 간부들이 먼저 나서서 뒤로 빼돌리기 때문에 ‘건설의 질’ 보장은 애당초 불가능하다는 것이 탈북자들의 지적이다. 

건설부분을 담당했던 한 탈북자는 “이전에도 건설 문제를 강조해왔는데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북한의 열악한 경제상황 때문”이라면서 “북한에서 경제상황이 개선되지 않는 한 건설에서의 질은 보장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노동자들은 식량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기 때문에 자재를 팔아서 식생활을 스스로 보장한다”면서 “북한 당국은 빨리빨리 하라고 독촉하기 때문에 밑에 있는 사람들은 시멘트가 굳기도 전에 위에 구조물을 올려 건물에 금이 가는 일이 많다”고 증언했다.

한편 평천구역 아파트 붕괴사고 발생 닷새만에 최부일 인민보안부장(우리의 경찰청장)은 이례적으로 현장을 찾아 피해 가족과 평양 시민 앞에서 “이 죄는 무엇으로도 보상할 수 없으며 용서받을 수 없다”며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그러나 사과한 지 한 달 만인 지난달 18일 ‘김정일 당사업 시작 기념 중앙보고대회’에서 주석단에 올랐다. 이는 부실공사에 대한 책임자 처벌 등 더 이상의 후속조치 없이 넘어가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