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와 농민 사이 ‘알곡 쟁탈전’ 치열”

B 씨는 황해도 OO군 농장원이다. 그는 북한에서 식량난이 심화되던 지난달 초 중국 친척 방문을 나와 기자를 만났다.

B 씨는 전통적으로 곡창지대인 황해도에서도 식량 절대량이 모자란다고 말했다. 90년대 중반 이후 분배가 제대로 안 되고, 농민들이 농장 일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식량 생산량이 감소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수해 피해도 있었지만 자신이 다니던 농장은 그리 심한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식량 생산량 감소 원인에 대해 “이유를 여러 가지로 찾아 볼 수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농민들 자체가 열성을 내지 않는다. 자각적으로 일하는 모양새를 찾을 수가 없다. 열심히 일해도 분배가 없으니 기를 쓰고 일할 이유가 없다. 김일성이 죽기 전 80년대는 정보당 강냉이 수확고가 최고 10t까지도 이야기를 했다. 김일성 죽고 그 이후로는 지금 현재는 정보당 잘해야 3t이다. 자연재해는 핑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황해도에서는 6월이 되면 밀과 보리 수확이 시작한다. 따라서 일시적으로 식량 위기가 완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밀과 보리를 생산하면 미리 20kg 정도를 분배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마저도 가을 수확기에 전체 분배에서 제한다고 말했다.

B 씨는 고난의 행군 이후 10년 동안 배급이 정상화되지 않으면서 북한 농장원들이 스스로 먹고 살 방도를 찾아왔다고 말했다. 그는 황해도 농장원들의 생존 방식을 ‘개인 농사와 국가 알곡 빼내기, 장사’ 세 가지라고 말했다.

그는 개인 분배가 턱 없이 부족하자 농장에서 자체적으로 가족 숫자 기준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을 할당했다고 말했다. 직접 논과 밭을 떼 주는 방식은 아니다. 작물과 작물 사이 고랑이나 논두렁을 지정해주고, 개인이 콩이나 감자를 심을 수 있도록 했다는 설명이다. 농장 분조장이나 반장들은 자신들이 데리고 일할 사람들의 입장을 외면할 수 없다는 것.

“가족 숫자 기준으로 농사 지을 수 있는 땅 할당”

“국가가 1년 농사를 짓고 식량을 겉곡으로 어른은 1인당 280kg을 줘야 하는데 120~130kg 주니까 이걸로 1년을 못산다. 그러니까 농장별로 ‘너는 여기에 콩을 심어 먹으라, 너는 여기에 감자를 심어 먹으라’고 지정해 준다. 황해도 재룡군에서는 이것을 먼저 도입했다. 황해도에서 절반은 이것을 도입했다. 분조 단위로 논두렁에 작물을 심어 나눠 먹기도 한다. 논두렁은 국가에 등록을 안 하니까 농장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초급간부들은 농장원 편의를 봐줄 수밖에 없다”고 그는 설명했다.

개인 농사로 생산한 감자는 수확량이 국가 농장의 2~3배가 된다고 한다. 사실 강냉이 밭고랑 사이에 심는 감자 생산량이 국가 감자 농장 생산량을 앞서는 셈이다. B 씨는 “개인들이 자기 이해관계와 맞는 일이기 때문에 감자 심는 문제는 열성을 많이 부린다. 최고로 열성을 내기 때문에 50kg 이상을 나눠 갖는다. 이것이 한 참 어려운 6월을 넘기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경작하는 텃밭이 올해 식량 위기 해소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B 씨는 집 근처에 가꾸는 텃밭과 산 중턱에 일군 뙈기밭에서 지난해 식량 150kg을 생산했다고 말했다. 그는 “산간 뙈기밭은 산림감독원과 협의를 해서 나무도 일부 심어주고 생산량의 30%를 주기로 하고 농사를 짓는다. 만약 이 약속을 안 지키면 다음해 농사 지을 땅을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B 씨는 이 개인 농사 이외에 주민들의 국가 알곡 빼돌리기를 황해도 주민들의 주요한 생존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몇 해 동안 국가 분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자 농민들의 대응 방식도 좀 더 과격해졌다고 한다.

그는 “가을에 곡식이 익었을 때 추수해서 들어가기 전에 먼저 밭곡식을 먼저 들이친다. 밤마다 나가서 곡식을 거둬서 집으로 뽑아 드린다. 나쁘게 말하면 도둑질인데 사실 이것이 1년 명줄이다. 1년 동안 먹을 강냉이와 쌀을 그렇게 보충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방식으로 농민들이 확보하는 식량은 개인별로 차이가 있지만, 재령평야 같은 곳은 많게는 1t까지 확보하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20kg 쌀 포대 50개에 해당하는 양이다. 그는 이렇게 확보한 쌀로 생활 용품을 구입하고 도시의 친척들에게 보내기도 한다고 말했다.

북한에서 가을이 되면 국가와 농민들 사이에 알곡 쟁탈전이 벌어진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북한 당국은 3년 전부터 인민보안성 정치대학 학생들을 전국적으로 풀어서 식량 회수 작전을 펼치고 있다.

“훔친 식량 뺏기지 않으려 돼지우리에 숨겨”

B 씨는 “몇 년 전만 해도 이렇게 해서 뺏기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많지 않다. 지난해에도 식량을 집에 보관하지 않고 돼지우리 바닥을 파서 묻거나, 땅에 묻고 그 위에 마늘 밭까지 조성해 놓고 식량을 지켰다. 작년 수확기에는 국가를 상대로 주민들이 이득 좀 봤다. 그래서 이렇게 버티고 있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북한에서 고지식한 사람들과 노인들이 이러한 양곡 빼돌리기 경쟁에 뒤쳐질 수밖에 없어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B 씨는 “논밭에서 수확을 하기 전에 밤에 나가서 식량을 채오는 일은 사활적이다. 도둑질 하지 않으면 내가 굶게 되는데 그냥 앉아 있을 사람이 있는가? 어떤 사람들은 먹는 식량보다 파는 식량이 더 많다. 그런데 식량 보관을 잘 못해서 뺏기게 되면 다음해 살기가 그야말로 고역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농촌에서 장사하는 사람은 작업반(50세대) 마다 5명 정도 있다고 말했다. 작업반장들은 이들을 ‘83’이라고 부른다. 이는 김일성이 인민 소비품을 자체 공장이나 작업반에서 부차적으로 생산하라는 지시가 8월 3일 내려왔기 때문에 부쳐진 이름이다. 이들은 대부분 국가에서 농장 단위로 내린 후방사업을 담당하기 위해 농장에서 배정하는 경우가 많다. 당국이 국가적인 건설이나 군대 지원 명목으로 돈과 양식, 필요한 물품을 내라고 할 때 이것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산골을 돌면서 개인들이 많게는 2~3t씩 가지고 있는 강냉이와 콩을 시장에서 사들여간 쌀, 기름, 맛내기, 밀가루 등과 바꿔가는 역할을 한다. 이들은 보통 kg당 50원에서 100원의 이윤을 남긴다. 하루에 15kg 이상은 사고팔아야 옥수수 1kg을 살 수가 있다.

B 씨는 “개인 농사나 도둑질, 장사라도 해서 먹고 사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소수는 이런 요령도 없어 해마다 어려움에 처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춘궁기 때 끼니를 거르거나, 죽으로 연명한다. 궁여지책으로 양식을 비싸게 꿔가서 살아가기도 한다. 다음 해에도 이런 것이 반복되니까 당연히 빚이 늘어 더욱 곤란해지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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